지난 전시

Fashion_Show

전시명: Fashion_Show

전시기간: 2008.08.02 - 2008.08.31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곽이브, 로와정, 박수진, 박태동, 사성비, 이승아, 이충우, 정재철

전시내용:


몸과 세계가 만나는 매개 지대로서의 패션과 미술


이선영 (미술평론가)


  패션에는 예술적 속성이, 예술에는 패션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패션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말은 동어 반복에 가깝다. 모란 미술관의 기획 전시인 'Fashion Show' 는 패션과 예술이라는 두 가지 항의 기계적인 만남이 아니라, 내재적으로 만나는 지점을 향한다. 이 전시의 작품들은 몸과 세계가 만나는 매개 지대로서의 패션과 예술을 주목한다. 패션은 추위와 더위, 그리고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단순한 기능주의를 넘어서, 차이의 체계 속에서 순환하는 스타일이고, 예술은 패션 못지않게 유행을 타며 고가의 상품이기도 하다. 패션은 몸의 연장이다. 그것은 몸의 특성을 강화시켜주기도 하고 은폐하기도 한다. 또한 패션은 타자와의 소통 통로, 즉 미디어가 된다. 몸과 미디어는 정보혁명을 통해 매체화 된 현실 속에서 현대미술이 지향하는 핵심적인 주제이다. 패션과 예술이라는 화두를 통해 모인 이 전시의 작품들은 현대의 패션쇼가 종종 그러하듯이, 실제 입고 나갈만한 옷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형적인 의미의 조각이나 회화라고 할 수도 없다.

  패션과 미술의 매개지대가 되는 몸은 무엇인가가 걸쳐지는 고정되고 단단한 유기체가 아니라, 그들이 제작한 기이한 옷들 못지않은 가변적인 형태로 파악된다. 현대 예술에서 몸은 서사의 중심이 되며, 의미가 각인되는 장소이다. 패션과 예술은 경계 지어진 형태를 넘어서 상징적 장으로 확장되며, 기호가 교환되는 광대한 영역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발견한다.그 영역은 자연이라는 백지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권력이 새겨진 담론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진다. 패션과 예술을 매개하는 몸은 생물학이나 기능주의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와 사회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후자로 중심 이동된 패션 또는 예술에서 상품은 주요 한 현상이다. 예술이든 패션이든,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유행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대중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정체성의 표현과 밀접하게 관련된 소유 또는 소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반면, 이 비합리적인 동기가 유통되는 체계는 고도로 합리화 되어 있다.

  사성비가 고안한 다양한 무늬가 박힌 패션 소품 가방, 모자, 드레스, 신발은 완벽한 세트를 이룬다. 그자체로 완벽한 체계를 이루는 것들과 비교한다면, 이를 착용하는 인간은 희미한 옷걸이처럼 보인다. 이승아는 포장용 코사지나 풍선같은 장식물의 표면을 강조한다. 이들의 작품은 과도한 장식과 광택이 두드러지면서, 그 내부에 있어야 할 알맹이를 모호하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무엇인가를 싸고 있는 표피가 그 자체로 자율화 되는 것이다. 반짝거림에 대한 물신 숭배는 박태동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금속의 은빛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매료된 작가는 그러한 사물들만을 그러모아 작품을 만든다. 본질보다는 체계가 두드러지는 이들 세 작가의 작품에서 패션과 예술을 관통하는 물신적 특성이 감지된다. 그럴듯한 형식을 갖춘 것들은 수집 품목이 되어 일련의 사물들로 축적된다. 장 보드리야르는 [사물의 체계]에서 일련의 것들을 수집하는 것은 외부세계를 지배하는 초보적인 방식, 즉 배치, 분류, 조작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또한 유희이며 소유이다.

  곽이브와 이충우의 작품은 반짝거리는 새로움 보다는 고대적 축제나 제의의 세계와 더욱 가깝다. 옷들을 잘라 기워 만든 곽이브의 [얼굴에 옷 입히기] 시리즈는 가면들을 떠오르게 한다. 우스꽝스럽거나 위협적으로 보이는 그의 패션은 마치 비밀 결사 조직의 표시처럼 보인다. 그것은 집단 구성원 간의 유대를 상징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드러내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차원의 세계와 교류하기 위한 변신의 도구인 가면은 마술과 같은 속성을 가지면서 원시주의로부터 현대의 하위문화를 관통하는 패션의 영원한 원천이 되어준다. 이충우의 옷은 마치 옛무덤에서 나온 부장품 같이 장중한 형태를 가진다. 책을 찢어서 만든 새끼줄을 꼬아 만든 옷은 그 재료가 암시하듯 텍스트성을 강조한다. 텍스트처럼 짜여진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옷은 옷의 재료인 책처럼 여러 가지 기원을 가진 것들이 상호적으로 엮여 의미가 구축되는 과정을 강조한다. 네트워크와 비유될 수 있는 텍스트는 연속적인 결합을 통해 확장된다.

  텍스트는 바르트가 지적하듯, 복수 언어적이고 무한한 구조를 가지며, 선행 언설들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문화의 모든 것과 관련된다. 텍스트로서의 예술작품은 단선적인 논리와 의미, 또는 근본적인 원리나 본질, 실체가 아닌 열려 있는 구조를 향한다. 정재철의 플래카드로 만든 옷이나 모자는 사물의 쓰임새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에 따라 극히 가변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는 광고나 구호 등을 적어 내걸리고 폐기되는 현수막이 다른 나라에서 또 다른 용도로 쓰이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물질적 생산력이란 측면에서 더욱 진보한 사회에서 상징적인 기호로 쓰였다가 일회용 쓰레기로 직행하는 물건이,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생활필수품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지상에 일회용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그들은 실크로드 주변의 소수 민족들이다. 그들의 삶에 강한 현실성을 부여하는 종교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으로 보면 이국적이거나 부조리할 뿐이다. 그러나 한번 쓰고 버리는 물건들로 가득한 물질문명에 대한 그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호를 전용하여 만들어진 사물은 다시 예술품이 된다. 정재철의 작품에서 기호는 사물이 되고, 사물은 (예술적)기호가 되어 새롭게 읽혀진다. 로와정(노윤희, 정현석)의 작품에서 패션은 타자와 접속하고 소통하는 긴밀한 매체이다. 그들의 작품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붙어있는 옷으로 엮여 있다. 각각의 개체는 구획 지어진 경계로 자족적인 소우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향해 열려 있고 합체가 되어 모호한 실루엣을 가진 표면을 이룬다. 이상하게 맞붙은 옷은 내부와 외부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없는 통로들이 뚫려있다. 맞붙은 옷을 통해 개체들은 횡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둘이 하나가 된 것은 아니고, 단지 접합되어 있다. 두 작가가 성을 하나씩 뽑아 새로이 만들어진 주체가 이상한 이름이 되어버렸듯이, 종합이 아닌 접합은 불완전한 상태를 예시한다. 그것은 몸의 위계적 조직을 와해시키고 보다 유연한 것으로 만든다. 로와정의 작품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관 없는 몸의 개념처럼, 다수성으로 가득 찬 몸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의 몸을 탈자연화 시키고, 그것을 타자의 몸과 다른 사물들의 흐름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킨다. 조직화 및 구조화에 반대되는 몸인 기관 없는 몸은 성층화 되기 이전의 가득 찬 달걀로 비교될 수 있다. 그것은 계층화되고 규제되고 배치되고 기능화 된 몸으로부터 벗어나 생산, 순환, 욕망의 강화를 위한 장이 된다. 이 전시의 작품들에서 패션과 미술이라는 코드는 몸을 매개로 얽혀있다. 패션은 몸의 확장이지만, 몸은 외부로 확장되는 전초 기지로서의 핵심이나 실체를 상실한다. 몸은 패션만큼이나 가변적이고 임의적이다. 패션은 몸이 되고 몸은 패션이 되며, 이러한 상호적인 얽힘에서 새로운 의미의 예술이 생산된다. 몸, 패션, 예술은 그 각각의 단일성과 고유성이나 존재들 사이에 위계질서를 잃고 앎과 권력과 욕망이 착종된 모호한 표면으로 흡수 또는 수렴된다. 여기에서 '되기becoming'는 모든 본질적인 ‘이다'와 대조항을 이루는 과정이나 흐름을 말한다. 그것은 예측 불가능한 탈주의 선들을 만들고, 패션이라는 화두가 혼입된 예술은 또 다른 출구를 제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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