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시

김세일 KIM SE IL

전시명: 모란미술관기획초대전_김세일 KIM SE IL

전시기간: 2008.09.24 - 2008.09.29

전시장소: 모란갤러리

참여작가: 김세일

전시내용: 

'존재의 집, 무한 증식되는 망 구조물'


고충환_미술평론


  김세일의 전작을 보면 그 근저에는 항상 자연의 본성을 닮으려는 심성이 작동되고 있는 것 같다. 나무라는 소재로부터 그 본성을 끄집어내려는 의지가 읽힌다. 나뭇결과 나이테, 옹이와 뒤틀린 형태 등 경우에 따라선 작가의 의지에 반할 수도 있는 나무의 본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이를 적극 끌어안음으로써 독특한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사람형상은 현대의 자장 속으로 불려나온 장승같고 꼭두각시인형 같다. 사람의 형상을 덧입었으되 여전히 나무의 본성을 간직한, 나무속에서 막 걸어 나온, 나무와 사람 사이에서 이들의 본성을 절반씩 건네받은 형상 같다. 흡사 만들다 만 것 같은 이런 형상은 이로 인해서 오히려 더 많은 암시를 향해 열려있게 된다.

  이후의 작업인 무쇠주물을 이용한 사람형상 역시 만들다 만 것 같은, 빚다가 만 듯한 어눌함으로 사람의 형상이 덧입혀져 있다. 이때 무쇠 그대로의 물성과 표면질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여차하면 현재 진행 중인 녹과 더불어 시간 속으로 산화되고 해체될 것 같은 아스라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작가의 작업은 철사를 엮어 망 구조를 만드는 현재의 작업으로 전환케 된다. 그 이전에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단지 스카치테이프를 덧붙여 나가는 방식으로 사람을 형상화한 작업을 잠시 선보인 적이 있는데, 이때의 사람형상은 마치 미라 같고 고치 같고 허물 같고 껍질처럼 보인다. 이로써 이전의 형상 작업을 지지하던 요소들, 그러니까 재료의 본성과 물성 그리고 무엇보다 양감이 사라지게 된다. 이 작업을 계기로 김세일의 작업에서 그 안이 텅 빈 표면과, 그 안을 들여다보게끔 유도하는 빛과 투과성, 안과 밖이 실제론 막혀있으면서도 시각적으론 서로 내통하는 소위 탈경계의 인식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게 되고, 이에 따라 작가의 조각이 눈에 띄게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현대조각에서의 새로운 양상들, 이를테면 부드러운 조각, 움직이는 조각, 공기나 수면에 뜨는 조각 등의 소위 탈조각의 제경향성들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처음의 망 구조물 작업은 물질감이 비교적 확연히 느껴지는 것으로서, 그만큼 거칠고 질박한 느낌을 준다. 그러던 것이 점차 물질감이 박탈됨에 따라 느낌 또한 상대적으로 하늘거리는 듯한 가벼움으로 다가온다. 망을 이루는 선의 종류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올이 굵고 거친 느낌의 철선을 소재로 한 것에서는 마구 엉켜있는 뿌리 다발이 연상되면서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가녀린 철사가 들어있는 색색의 비닐 끈을 소재로 한 망구조물에서는 알록달록한 색채가 어우러진 팝적인 분위기와 함께 장식적이고 경쾌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처럼 여러 종류의 철선을 소재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주요 재료로는 아무래도 구리선과 스테인리스 스틸선일 것이다. 거의 가녀린 실 같은 구리선이나 스테인리스 선들로써 작가는 조각과 비조각 혹은 탈조각의 경계에 위치할 법한 망구조물을 형상화하는 한편, 이로써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을 재고케 하는 작가만의 특유의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공간을 점유한 채 그 실체적 존재감을 간직한다는 점에서는 전통적인 조각과의 최소한의 연관성이 유지된다. 그러나 이를 드러내는 방식이 그 존재감을 박탈하면서 드러내는 이율배반적이고 암시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선 탈조각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대략적인 프로세스를 보면, 가녀린 철선과 철선을 엮어 비정형의 망(일종의 작은 공간이나 방)들이 중첩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든다. 엄청난 양의 시간과 노동력이 요구되는 이 작업은 말하자면 유기적인 반복이나, 그 이면에 일정한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 반복으로 부를 만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제작과정에서도 그렇거니와 완성된 후에도 그 형태나 크기가 어슷비슷하게 보일 뿐, 사실은 똑같은 형태의 망들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작가는 압축된 상태의 구조물을 일단 전시장에 갖고 와서 부풀리는데, 이때 그 펴는 정도나 양상에 따라 매번 다른 구조물로 변신하는 것이다. 더불어 거대한 공처럼 부풀려진 구조물로부터 구조물의 중간으로 갈수록 망들이 더 많이 겹쳐 보이는 탓에 밀도감이 높은 반면, 구조물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밀도감이 희박해 보이는 시각적 변화마저도 감지된다. 더욱이 이 작업에서는 완성이라거나 완결된 지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크기나 쾌적한 형태가 조성되는 순간에 작업을 중단할 수 있다. 따라서 사실상 무한증식구조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이로써 김세일의 망 구조물 작업은 여러 면에서 조각이나 조형물과 관련된 전통적인 관념과는 구별되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조형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통적인 조각에서의 매스를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실체감마저도 희박해 보인다. 경우에 따라선 물질감이나 실체감을 될수록 최소화하고 순수한 암시력만으로 존재하려는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실체감이 희박한 만큼이나 암시력의 비중이 현저해지는 인상을 주며, 이로써 거의 순수한 환영, 순수한 일루전을 대면하고 있는 것 같은 일말의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자아낸다. 더욱이 구조물의 표면에서 반짝이는 빛의 편린들이 이런 비현실적인 느낌에다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빛에는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판타지는 조형물 이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경우에 따라선 조형물 자체의 희박한 실체감에 비해 오히려 그림자의 실체감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데, 이로써 이른바 조형물과 그림자, 실재와 허상과의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김세일의 작업은 경계와 구조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꿔놓고 있다. 이를테면 지금까지의 경계와 구조에 대한 인식이 결정적이고 닫힌 체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작가의 작업에서는 안과 밖이 따로 없고 겉과 속이 서로 통하는 소위 통(通)구조로써 비결정적이고 열린 체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망과 망들이 연접돼 무한 증식되는 구조적인 특성이 마치 인연의 계기를 암시하는 듯한, 특히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에 기인한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더불어 인터넷상의 가상현실 속의 익명적인 주체들이 서로 만나는 소위 네트워크의 질료적 형상을 보는 것도 같다. 

  그리고 작가는 구조물에다 각종 오브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일상에서 채집한 오브제를 기점으로 철선을 엮어나가다 보면 종국에는 그 오브제가 구조물 속에 갇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작가는 이렇게 연출된 상황을 말 그대로 불가촉(不可觸) 상황이라 일컫는다. 이 일련의 작업들은 이처럼 만질 수 없는 오브제와 함께 일종의 유사풍경으로 정의할 만한 한 지점을 예시해주고 있다. 이때 어떤 종류의 오브제를 차용하느냐에 따라서 전시공간에 다양한 풍경의 전망이 열리게 된다. 예컨대 망 속에 갇힌 은빛 물고기 떼가 전시공간을 바다로 바꿔놓는가 하면, 각종 포유류 미니어처가 점유한 구조물은 전시장을 초원으로 탈바꿈시킨다. 조류의 모형이 매달린 구조물이 공간을 하늘로 전이시키는가 하면. 부처 소상이 내재된 구조물은 물리적 공간을 마음이라는 심리적이고 관념적인 공간으로 전치시켜놓기도 한다. 아마도 불가촉 상황이란 그저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비가시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세계의, 사물의 대상의 본질이 열리는 차원)을 아우르는 존재론적 개념인 듯하다.

  김세일은 근작에서 수제비처럼 잘고 얇게 빚어 만든 지점토 조각을 철선 구조물과 함께 엮어 놓는다. 텅 빈 망 구조물이나 그 안에 오브제를 차용한 망 작업에 이어 새롭게 시도된 이 작업은 얼핏 보기에 흡사 허공에 매달려 있는 고치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빛을 은근하게 투과시키는 반투명성으로 인해 시적이고 몽상적이며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사실 이 느낌은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작가의 여타의 작업들에서도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지배적인 정조가 아닐까 싶다.

  집채만큼 크지만 사실은 실처럼 가녀린 망 구조물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작가의 작업은 조각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재고하게 하며, 경계에 대한 종래의 인식을 흔들어 놓는다. 가시화할 수 없는 공간이나, 다만 암시적인 형태로만 존재하는 공간을 가시화함으로써 안과 밖, 겉과 속 있음과 없음, 실체와 일루전이 사실은 서로 통하는 것임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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