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명: 최만린 드로잉 Choi Man Lin Drawing
전시기간: 2011.05.07 - 2011.06.12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최만린
전시내용:
최만린의 드로잉에 대한 미학적 소고
임성훈 | 미학, 모란미술관 학예실장
I. 들어가는 말
한 작가의 예술세계와 예술정신의 정수를 파악하는데 있어 드로잉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작업의 결과로서 드러난 작품에서 읽어내기 쉽지 않은 부분이 드로잉에는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드로잉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독백이며, 내밀한 언어로 쓴 일기와도 같은 것이다. 드로잉은 작가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성찰이며 동시에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응축한 작품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드로잉은 한 작가의 작업 정신을 드러내는 형이상학이다. 그러기에 한 작가의 작업과 작품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그의 드로잉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드로잉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으레 드로잉을 밑그림 정도로만 치부했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 작가의 작업 과정에서 드로잉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서구의 경우 이미 상식에 해당한다. 예컨대, 20세기 후반기의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젊은시절부터 드로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작가이다. 요셉 보이스가 40년간 작업해 온 드로잉을 전시했던, 그 유명한 <비밀스런 사람을 위한 아일랜드의 은둔 지역(The Secret Block For a Secret Person in Ireland)>은 그의 예술 세계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왜 현대미술의 대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게 해준다. 요셉 보이스는 한 인터뷰에서 "나에게 이러한 드로잉 작업을 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에게 드로잉은 다른 종류의 소위 말하는 현실보다 더 현실에 가깝다. 나는 지금 드로잉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추구했던 것이 물음표 속에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언급은 드로잉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을 드러내며, 동시에 예술의 물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쟁 이후 국내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활동한 첫번째 세대에 속하는 최만린은 드로잉이 갖는 이러한 중요성을 일찍이 몸으로 체득한 작가이다. 지난 50년간 지속된 작가의 700여점에 이르는 드로잉 작품은 자신의 축적된 작업 정신의 발로(發露)이며, 예술적 정체성(正體性)을 찾아내려 했던 조형적 흔적이다. 그러기에 그의 드로잉은 널리 알려진 그의 조각 작품을 접할 때와는 또 다른 예술적 숨결과 울림을 느끼고 들을 수 있게 한다. 이 소고(小考)에서 그의 드로잉에 내재된 작업세계를 폭넓게 조망하기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전체적인 조망을 위해서는 다양한 맥락과 관점에서 그리고 분석적 차원뿐만 아니라 정신적 차원에서도 섬세한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2)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필자는 이 소고(小考)에서 최만린의 드로잉 작품을 관통하는 예술적 정신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 미학적 관점, 즉 “본질을 사유하는 드로잉”, “드로잉과 추상 개념", "비우고 차는 드로잉 미학' 등을 통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II. 본질을 사유하는 드로잉
최만린의 드로잉은 본질을 사유하는 드로잉이다. 이와 관련하여 II장에서는 그의 드로잉 작품에 나타난 특징을 '정직한 드로잉', '양식(style)에서 자유로운 드로잉', '보잘 것 없는 것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드로잉', '자연과 생명, 그 근원에 대한 관조' 등과 같은 관점에서 논구할 것이다.
1. 정직한 드로잉
최만린의 드로잉, 특히 초기 드로잉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가식이나 과장이 없는 순수하고 담백한 표현성이다. 그의 드로잉은 '정직한 드로잉'이다. 이러한 '정직한 드로잉' 정신은 초기에서 최근의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초기의 인체 드로잉을 보더라도 조형적 기법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감성이 더 부각되어 있다. 이는 그의 드로잉이 세련된 묘사나 기술적인 기법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심상(心象)을 그대로 담아낸 것임을 말해준다.3)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감성적인 측면만이 강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드로잉은 이성과 감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사이의 긴장감과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드로잉에는 이성이 감성화되어 있기도 하고, 또한 감성이 이성화되어 있기도 하다.
'정직한 드로잉'은 서구의 드로잉 기법을 단순히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 작가 스스로 드로잉의 길을 만들어가면서 이루어낸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기법이 아니라 마음 하나로 걸어간 길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었겠지만, 그는 자신의 드로잉을 찾아 나서고, 만들어가며 열어갔던 것이다. 드로잉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재했던 당시 드로잉이 갖는 조형적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이에 따라 독자적이고 실험적인 드로잉을 시도했던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섬세한 표현력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리성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다소 어색한 조형성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점 또한 '정직한 드로잉'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초기의 ‘정직한 드로잉'은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기에 50년대의 드로잉 전체에서 드러나는 어두운 느낌은 그 시대의 암울한 상황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투사된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만린의 드로잉은 시대적 상황을 예술적 형식미로 꾸미거나 장식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드로잉은 "흔적”으로 남아 있는 드로잉이다. 예컨대, <이브(Eve)> 조각과 관련된 그의 드로잉 흔적5)은 작품이 단순한 조형적 형태가 아니라 사유가 형태화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6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드로잉은 그 형태상의 측면에서 많은 변용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러한 '정직한 드로잉' 작업 태도는 그대로 지속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수직이 강조된 70년대 초의 몇몇 드로잉6)의 경우, 초기의 순박하고 질박한 '정직함'에 비해 일종의 논리적 '정직함'이 두드러진다. '정직한 드로잉'의 또 다른 면모는 그가 드로잉을 위한 드로잉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의 작품과 관련된 드로잉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도 드로잉으로 정신을 담을 필연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태(胎) 연작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드로잉이 없는 이유에 대해 필자가 작가에게 물었을 때, 그는 <태(胎)〉 연작 자체가 곧 드로잉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에게 드로잉은 단순히 작업 제작을 위해 마련한 밑그림이 아니라 정신에 대한 정직한 자기표현이다.
2. 양식(style)에서 자유로운 드로잉
최만린의 드로잉은 양식에 얽매이지 않은 드로잉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작가의 조각이나 드로잉에서 본격적인 조형성이 감지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두고 그의 작품이 유형화된 양식의 단계로 접어든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후의 드로잉에서도 뚜렷한 양식(style)을 선보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드로잉에 양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관습적인 틀이나 정형화된 일반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리처드월하임 (Richard Wollheim)이 언급하는 개인 양식(individual style)의 관점에서 본다면, 최만린의 드로잉도 양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월하임은 일반 양식과 개인 양식을 구분한다. 월하임에 따르면, 일반 양식은 관습이나 학습에 따라 형성된 양식인 반면, 개인 양식은 작가 개인의 특성이 충분히 반영된 창조성과 예술성에 토대를 둔 양식이다. 개인 양식은 확정되고 고정된 틀로 존재하는 양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작가의 고유한 양식인 셈이다.7) 월하임이 개인 양식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은 특성을 최만린의 드로잉에서 읽어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드로잉은 초지일관하게 작가 자신의 고유한 정신을 담아낸 드로잉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예술 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드로잉, 그것이 최만린 드로잉 정신의 핵심이다. 일반 양식에 얽매이거나 의존하는 드로잉이란 단지 세련된 묘사나 정형화된 기교로 남을 뿐이다. 자신의 고유한 개인 양식을 갖지 못한 드로잉은 자유로운 예술정신에 대한 이율배반의 드로잉이다. 드로잉이 자유로운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관습적인 양식에 머물고 만다면, 그 작업의 결과는 어떠한 예술적 혹은 조형적 긴장감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바둑격언 중에 정석을 배우고 나면 정석을 잊어버리라는 말이 있다. 정석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석에만 얽매이면 바둑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없다는 말이다. 최만린은 정석을 배우고 또한 그것을 버리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조각과 드로잉에서 실천하고 있다.8)
3. 보잘 것 없는 것의 숭고함
최만린의 초기 <이브> 드로잉 연작9)은 '보잘 것 없는 것의 숭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흔히 1960년대 이전의 그의 조각과 드로잉은 습작기로 분류된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한 숭고 미학의 관점에서 볼 경우, 그 조형적 완성도가 충분한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완성도란 초기드로잉에서 이미 조형성과 정신의 문제가 깊이 통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러니 이를 두고 마치 기법이나 형태에서 조형적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만린의 초기 드로잉에 나타난 숭고미는 조형적 격식에서 벗어난 자연스러움, 소박함 그리고 원초성에서 유래한다. 그의 드로잉은 무엇을 그려내기보다는 생각을 붙잡아 두려는 어떤 절박한 마음의 표현이다. 생각을 그리는 드로잉에서 재료의 선택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주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종이 위에 드로잉 작업을 해왔다. 서구 드로잉의 기준에서 보자면, 기법이나 형태면에서 대단하지도 않으며, 또한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드로잉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저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드로잉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보잘 것 없는 드로잉에 깃든 숭고의 미학, 이것이 최만린 드로잉이 제시하고 있는 미학이다. 인간 스스로의 초라함을 느끼고, 이를 고양과 상승의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 바로 여기에 숭고의 계기가 있다. 여체를 표현한 초기 드로잉10)에서 에로틱한 특징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체 드로잉은 남성의 억압적인 시선으로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없다. 드로잉에 표현된 여체는 근원성과 원초성에 대한 숭고한 재현이기 때문이다.
<이브> 드로잉을 보자. '이브'는 꽃을 안고 있다. 화려하게치장된 꽃이 아니라 가시로 만들어진 꽃이다. 가시 꽃을 안고 있는 '이브'는 보잘 것 없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기에 에로티시즘이나 유미주의와는 거리가 먼 조형성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비애와 고통이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지는 않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한 실존적 자각으로 처절함을 넘어서 관조하는 한 인간의 상황이 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브> 조각과 이와 연관된 드로잉에는 숭고미가 현현되고 있다. 숭고란 인간이 가장 초라한 순간에도 높은 것을 향해 고양되고 상승되는 감정을 느낄 때 생겨난다. 실상 숭고란 대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11) <이브>는 '이브'라는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마음이 갖는 인간의 숭고성을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숭고의 미학은 60년대 초반의 <이브> 드로잉 연작에서 보다 추상적인 형태로 지속된다.
4. 자연과 생명, 그 근원에 대한 관조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최만린은 자연과 생명을 주제로 삼아 작업해 온 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서구의 조형적 기법만으로 이러한 주제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일찍이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 미술 기법으로 자연과 생명을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것의 근원에 대한 관조를 재현해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만린은 이러한 조형적 아포리아(aporia)를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또한 이를 자신의 예술에 있어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최만린의 조각과 드로잉은 실존주의나 앵포르멜(Informel) 계열에 속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측면이 그의 예술의 정수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1960년대 초의 <이브> 드로잉 연작을 보자. 이 드로잉들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1965년 작 <이브(65-8)〉를 심층적으로 고찰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브(65-8)>와 관련된 드로잉 연작에서 그는 인간 본질에 대한 상념과 실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나타난 형식이나 형태만을 취해 단지 앵포르멜이나 실존주의로 분류하는 것은 도식적이며 결코 적절하지 않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드로잉이 조각 제작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연습용 밑그림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드로잉과 완결된 작품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드로잉은 결과인 작품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이와 더불어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동양철학에 바탕을 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근원에 대한 물음이 드로잉 연작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자연과 생명 그리고 그 근원을 모색하는 작가에게 단지 물성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물성그 자체가 아니라 자유로운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12) 드로잉 <D-60-45>을 보자. 여기에는 "primitive", "oriental", "dynamics" 등과 같은 단어가 적혀있다.13) 이 세 단어로 집약되는 그의 드로잉 미학은 초기에서부터 최근에 이르는 드로잉에서 일관되게 표명되어 왔다. 여기에는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원초적 조형성의 힘, 그리고 이러한 힘이 동양적 사유에 토대를 둘 때 가능한 것이고, 이에 따라 자연과 생명이 표현될 수 있다는 작가의 근본 생각이 들어 있다고 하겠다.14)
III. 최만린의 드로잉과 추상 개념
1965년 이후 전개되는 최만린의 드로잉은 추상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그의 추상 드로잉은 동양적 사유와 그에 따른 조형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단지 서구 현대미술에 나타난 추상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그 맥락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연구가 필요하다. III장에서는 그의 추상 드로잉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관점, 즉 '추상 드로잉-사유하는 드로잉', '추상 드로잉과 비움의 미학', '조형 미학에 나타난 공간개념' 등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할 것이다.
1. 추상 드로잉 - 사유하는 드로잉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 15)에서 '추상'은 20세기 서구의 미술사에서 전개된 추상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그 맥락을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추상' 개념을 가장 넓은 의미, 넓은 의미 그리고 좁은 의미의 추상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16)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본 추상 개념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의 본질과 그 핵심을 이끌어내어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사시대에 제작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도 얼마든지 훌륭한 추상조각 작품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실상 <뷜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추상의 본래적인 의미, 그러니까 자연미와 소박미를 갖춘 원초적 추상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형식이나 표현력에 있어서도 20세기의 추상 조각에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17) 최만린의 드로잉에 나타난 추상은 바로 가장 넓은 의미에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추상 조각으로 볼 때 생각되는 그러한 추상 개념이다.
단순함과 소박함 그리고 한국적인 선의 미학이 강조된 최만린의 드로잉은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정신의 산물이다. 세련된 기교에 치우친 감각성이라든지 단지 형태 그 자체를 추상적으로 이끌어낸 드로잉이 아니다. 원초적, 동양적 사유에 바탕을 둔 드로잉이기 때문이다. 물론 형식적 조형미가 돋보이기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절제되어 있다. 최만린의 드로잉에는 무엇보다 인위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강조된다.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지나가듯이, 그렇듯 자연의 본성에 따른 추상 드로잉이다. 지성이나 이성 이전의 직관이 강조된 드로잉, 그것이 최만린의 드로잉의 본질을 이룬다. 그러기에 최만린의 드로잉은 실상 드로잉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드로잉이기도 하다. 1965년에서 최근에 이르는 드로잉, 즉 〈천(天)>부터 <O>에 이르는 드로잉들도 이러한 기본적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명의 근원을 추상 드로잉에 담아내려는 그의 조형적 의지가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그의 드로잉에 나타난 추상 개념은 이러한 예술 정신에 대한 조형적 "흔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은 동양적 사유 그리고 한국적 조형성에 뿌리를 둔 드로잉이다. 그의 드로잉에서 중요한 것은 근본성이다. 근본에 대한 이해 없이 현상을 드러내는 것은 조형적 장식이나 치장에 불과한 재현이다. 송의 등춘(春)은 『화계(繼)』에서 형태에 치중한 작가들의 그림을 비판하면서 “비록 그림이라고 불리지만 진정한 그림이 아니니, 단지 그 형체만 전할 뿐 그 느낌을 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18) 최만린의 드로잉은 조형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의 근본적인 정신을 찾아 나선 드로잉이다. 그러기에 세련된 기법이나 묘사 혹은 실험적 표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필(毛筆)을 사용한 그의 드로잉을 보라.19) 여기에는 자유로운 정신이 현현되어 있다. 생략의 미, 소박한 선의 흐름으로 특징되는 절제된 조형성,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국적인 단순함의 미학을 보여준다.20)
2. 추상 드로잉과 비움의 미학
최만린의 드로잉에 나타난 정신은 상당히 일관되지만, 형태상의 변화도 읽어낼 수 있다. 가장 극적인 예로 1965년 이후 인체 드로잉에서 추상 드로잉으로 전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추상 드로잉은 대상의 본질을 단지 형식적인 측면에서 추출해 조형적으로 재현한 드로잉이 아니다. 오히려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움으로써 획득된 드로잉이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한 재료는 연필, 펜, 콘테 등이 아니라 주로 모필이다. 실상 모필은 단순한 생략이나 대상에서 본질을 추출해서 형상화하는 기법에서는 그리 적절하지 않겠지만, 생명의 고양과 상승을 근원적인 힘으로 이끌어내고 표현하는 데에는 가장 적합한 재료이다. 모필로 표현된 자유로운 드로잉, 여기에는 어떤 조형적 매력을 발산하려는 어떠한 기교도 보이지 않는다.
<이브> 연작이 보여 준 조형적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길을 떠나는 것, 그것이 한 작가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조형성을 비우는 길을 택했다. 모든 것이 버려졌고 비워졌다. 이러한 비움의 미학을 두고 최만린이 이전 작업의 조형성에 한계를 체감하고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실상 그리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추상 드로잉은 자연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사유의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의 추상 드로잉은 단지 새로운 기법이나 묘사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비움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3. 최만린의 조형미학에 나타난 공간 개념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은 사유하는 드로잉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충일함을 담지하고 있다. 생명은 사물의 근본 원리이며, 모든 사물에 침투되어 있다. 최만린은 자신의 조각과 드로잉에서 이러한 생명을 일관되게 조형적으로 모색해 왔다. 그런데 생명을 조형적으로 드러낼 때, 공간이 늘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만린의 조형미학에 나타난 공간은 어떠한 공간인가? 그의 드로잉을 통해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직관적인 마음의 공간이 강조되고 있음을 확연하게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칸트의 공간론과 맞닿아 있다. 주지하다시피 칸트는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에서 공간을 단지 개념이나 대상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직관하는 마음(순수 직관 혹은 직관 형식)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칸트의 공간론과 최만린의 조형 미학에 나타난 공간 개념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예컨대, 칸트의 공간론은 생명과 관련된 공간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공간이 물리적인 관점에서 파악되지않고, 직관이자 동시에 마음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공간 이해는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에 나타난 조형미학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IV. '비우고 차는' 드로잉 미학
최만린의 드로잉은 비우고 채우는 드로잉 미학을 보여준다. IV장에서는 그의 드로잉 미학을 중심으로 '조형적 정체성 모색'과 '비움과채움의 미학'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1. 조형적 정체성 모색
최만린은 한국 전쟁 이후 국내에서 교육을 받은 첫 세대에 속하는 작가로 서구의 조형적 기법을 체득했다. 그렇지만 조각과 드로잉이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그는 서구의 세련된 조형적 기법에 감탄하고 수용하기에 급급한 작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세련된 묘사나 기법에서 벗어나 자신의 조형적 정체성을 찾아나서는데 주력한 작가였다. 최만린은 자연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하고, 공간을 마음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적 조형성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해 온 한국 작가이다.21)
최만린의 조형적 정체성(identity)에 대한 모색은 1980년대 이후 인위적인 조형적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에서 정점에 달한다. 특히 <점(點)> 연작과 <O> 연작 드로잉은 생명을 근원적으로 표방하면서도 여전히 습관처럼 남아 있던 서구적 조형성을 냉엄하게 반성한 결과로 비롯된 것일 터이다. 조형적인 것,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경계를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만린은 그 어찌할 수 없는 경계(혹은 한계)를 자신의 고유한 사유의 언어로 깊이 성찰하고 있다. 후기 드로잉은 경계에서 자유로운, 시작도 끝도 없는 여운을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드로잉은 단지 수렴과 발산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한에 대한 동경이다.
2. 비움과 채움의 미학
1980년대 말에서 시작된 <O> 연작 드로잉22)은 그가 모색해 온 조형적 정체성의 한 매듭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O> 연작 드로잉은 그의 조형세계와 정신세계가 합일되는 형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O>는 어떤 방법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작가의 고백이다. 모든 것이 버려지고 비워진 상태, 그것이 <O> 드로잉 연작에 표현되어 있다. 실상 <O>의 의미는 개념이나 논리적으로 파악될 수 없다. <O>는 무엇을 상징하는 기호도 아니며 그렇다고 거창한 이념을 담고 있는 단어도 아니다. <O>는 버려지고 비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어 있기만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O>는 비어있으면서 동시에 차 있다. <O> 연작 드로잉에는 유(有)와 무(無)가 공존한다. 비움과 채움의 미학, 그것이 <O>에 나타난 미학이다.
<O> 연작 드로잉에는 선과 좌표가 그러져 있다. 이것은 자유로운 무질서에 대한 질서, 곧 현실을 지시하는 것일까? 그렇게 볼 이유는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은 질서와 무질서 양자 중 어느 하나로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다. 질서와 무질서는 서로 다르면서도 상호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 무질서 안에 질서가 있고, 질서 안에 또한 무질서가 있는 법이다.23) 인간은 이상적이고 초현실적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 현실에서 그리고 그 현실이 부여한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최만린의 드로잉에 나타난 선과 좌표는 자연스러운 무질서에 대한 현실적 질서의 확인에 해당하는 조형적 표식이다. 최만린은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이상만을 추구한 작가가 아니다. <이브>에서 <O>에 이르는 그의 드로잉은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로 나아갔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O>에 나타난 자연스러움과 엄격함, 곧 무질서와 질서 사이의 조형성은 비움과 채움의 미학이 가져온 순수한 결과이다.
V. 나가는 말
최만린의 드로잉은 지난 50년간 다양한 형태의 변용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형태의 변화가 있지만, 그 본질마저 바뀐 것은 아니다. 그의 드로잉에는 일관되게 인간, 자연, 생명 그리고 한국적 조형성에 대한 물음이 근저에 항상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작가로서 이러한 일관된 조형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실상 서구의 조형 기법을 적당하게 활용해서 작업하려는 유혹이 얼마나 많은가? 그의 조각과 드로잉이 보여주고 있듯이, 최만린은 시류에 편승하거나 휩쓸리지 않은 채 고독한 길을 걸어 왔다. "임선생, 걸을 때 발자국을 의식하면서 걷습니까?" 작년 가을 어느 날 최만린 작가가 필자에게 한 말이다. 울림이 큰 말이었다. 이번 전시와 도록에서 선보이는 700여점의 드로잉은 그 발자국들이다.
1) Joseph Beuys, The Secret Block For a Secret Person in Ireland, hrsg. von Heiner Bastian, (Martin-Gropius Berlin/Kunsthalle Tübungen), München 1988. p. 48. “It was very important for me to have done these drawings - for me they are closer to reality than other kinds fo so-called reality. Looking through them now I can see that my researches are most clearly expressed in question marks."
2) 최만린의 드로잉 작품을 시기별로 분류하고 그 형태나 기법에 관해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이 의도하는 바는 아니다. 이 글은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 미술사나미술비평의 관점보다는 그의 드로잉을 관통하는 예술적 정신에 대한 미학적 관점을 서술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3) 최만린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은사인 김종영이 자신의 초기 드로잉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영향은 기법적인 측면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때, 최만린의 드로잉은 이후 김종영의 드로잉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최만린과 김종영의 드로잉에 관한 비교 연구는 이 책에 실린 김이순의 논문을 참고할 것.
4) 최만린이 전통적인 드로잉 기법에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초기의 인체 드로잉만 보더라도 그가 드로잉 기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D-56-1〉, 〈D-56-12〉, 〈D-56-15> 등을 참고할 것).
5) <D-56-8>, <D-56-9>, <D-56-11> 등을 참고할 것.
6) <D-73-3>, <D-73-5>, <D-73-13>, <D-73-15>, <D-73-20>, <D-77-4>, <77-5> 등을 참고할 것.
7) 리처드 월하임(Richard Wollheim)은 양식 개념에 관해서는 그의 저서 Painting as an Art(1984)와 논문 “Pictorial Style: Two Views"(1977), “Style in Painting”(1995) 등을 참고할 것. 월하임의 일반 양식과 개인 양식의 구분에 관한 자세한 논의로는 조진근, '예술로서의 회화 - 리처드 월하임의 회화론 연구』, (2008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특히 pp. 43-53을 참고하시오.
8) 최만린의 50년대 드로잉을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조형적 기본에 충실했던가를 알 수 있다. 최만린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학부시절부터 해부학과 인체 모델링에 관한 공부를 철저하게 했었지만, 기법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조형성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수련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일관되게 조형적 기법 그 자체에 매몰되는 것을 항상 경계한 작가였던 것이다.
9) <D-56-8>, <D-56-9>,<D-56-11>, <-57-23(2)>, <D-57-64>, <D-58-11>, <D-58-15> 등을 참고할 것.
10) <D-56-1>, <D-56-12>, <D-56-15>, <D-57-21>, <D-57-40>, <D-58-7>, <D-58-18> 등을 참고할 것.
11) 이러한 필자의 진술은 18세기 독일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숭고론에 따른 것이다. 칸트는 자신의 세번째 비판서인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의 '숭고의 분석학'에서 숭고가 대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이로부터 우리가 곧 알 수 있는 바는, 우리가 자연의 많은 대상들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옳을 수 있지만, 여느 자연 대상을 숭고하다고 부른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 우리는 그 대상이 마음속에서 만날 수 있는 숭고함을 현시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 이상을 말할 수 없다." (칸트, 판단력비판,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B76)
12) 필자와의 대화에서 최만린은 자신의 드로잉에서 정신과 생명력을 강조하고 싶었고, 이런 이유로 당시에 유행했던 물성에 치우친 작업과는 다른 길을 걷고자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즉, 물성이란 개념이 주는 제약에서 벗어나 정신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것이 그에게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13) 직역하면 "원시적", "동양적", "역동성"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최만린의 예술 전체를 조망해 볼 때, “원초성”, “동양적(혹은 한국적) 사유", 그리고 “(조형적 긴장성"정도로 의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14) 최만린은 예술과 정신 사이에 내재한 "긴장감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긴장감은 지난 50년간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추구되어 왔다.
15) 최만린의 근본적인 관심사는 서구의 드로잉 기법을 통해 조형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의 본질을 그려내는 데 있었고, 이 점은여러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 추상 드로잉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최만린의 드로잉은 1958년부터 점차 추상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1960년대 초반을 거쳐 1965년 이후 본격적인 추상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추상 드로잉이 시작되기 이전의 드로잉에서도 추상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16) 가장 넓은 의미에서 추상은 예술의 역사에 걸쳐 늘 있어왔다. 원시 예술, 이집트 예술, 중세예술 그리고 현대 예술에서 추상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확인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20세기 현대 예술이 추상예술이라고 말해도 그리 무리가 없을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 20세기 초, 중엽에 나타난 예술 운동으로서의 추상예술(예컨대, 회화의 경우 칸딘스키, 몬드리안 등 그리고 조각의 경우 브랑쿠지, 쟈코메티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 언급했다시피 최만린의 조각과 드로잉에 나타난“추상" 개념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이해되는 추상에 가깝다.
17) 최만린은 필자에게 <뷜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그가 추구하는 조형성의 궁극을 보여준다.
18) 김백균, 매체의 관점으로 본 '시서화일률(詩書畵一律)'론」 (『미학 제 48집, 2006) p.20에서 재인용.
19) 초기 드로잉과는 달리 모필을 사용하여 그린 본격적인 추상 드로잉 작업, 즉 〈천(天)〉, 〈지(地)〉, 〈현(玄)〉, 〈황(黃)〉과 관련된 예로 <D-65-27>, <D-65-29>, <D-65-36>, <D-66-6>, <D-66-10>, <D-66-14>, <D-66-18>, <D-66-27>, <D-66-29>, <D-67-3>, <D-67-6>, <D-67-23>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0) 이런 점에서 최만린의 드로잉은 미니멀리즘(Minimalism)과는 다른 단순성을 보여준다.
21) 최만린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1970년대 초반의 미국 체류 기간이 서구의 새로운 조형적 기법에 눈을 뜨게 되는 시기였다기보다는 자신의 조형적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심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22) 예컨대, <D-89-1>, <D-89-2>, <D-89-3>, <D-89-10>, <D-89-1>, <D-89-3>, <D-89-4>, <D-90-2>, <D-90-5>, <D-95-2> 등을 참고할 것.
23) 2004년의 드로잉 <D-2004-1>, <D-2004-3> 등에서도 이러한 점이 확인된다. 붓으로 형태를 그리고 다시 거기에 연필로 그린 드로잉은 자유로운 무질서의 경지에 대한 현실적 확인성을 보여준다.
전시명: 최만린 드로잉 Choi Man Lin Drawing
전시기간: 2011.05.07 - 2011.06.12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최만린
전시내용:
최만린의 드로잉에 대한 미학적 소고
임성훈 | 미학, 모란미술관 학예실장
I. 들어가는 말
한 작가의 예술세계와 예술정신의 정수를 파악하는데 있어 드로잉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작업의 결과로서 드러난 작품에서 읽어내기 쉽지 않은 부분이 드로잉에는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드로잉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독백이며, 내밀한 언어로 쓴 일기와도 같은 것이다. 드로잉은 작가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성찰이며 동시에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응축한 작품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드로잉은 한 작가의 작업 정신을 드러내는 형이상학이다. 그러기에 한 작가의 작업과 작품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그의 드로잉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드로잉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으레 드로잉을 밑그림 정도로만 치부했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 작가의 작업 과정에서 드로잉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서구의 경우 이미 상식에 해당한다. 예컨대, 20세기 후반기의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젊은시절부터 드로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작가이다. 요셉 보이스가 40년간 작업해 온 드로잉을 전시했던, 그 유명한 <비밀스런 사람을 위한 아일랜드의 은둔 지역(The Secret Block For a Secret Person in Ireland)>은 그의 예술 세계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왜 현대미술의 대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게 해준다. 요셉 보이스는 한 인터뷰에서 "나에게 이러한 드로잉 작업을 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에게 드로잉은 다른 종류의 소위 말하는 현실보다 더 현실에 가깝다. 나는 지금 드로잉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추구했던 것이 물음표 속에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언급은 드로잉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을 드러내며, 동시에 예술의 물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쟁 이후 국내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활동한 첫번째 세대에 속하는 최만린은 드로잉이 갖는 이러한 중요성을 일찍이 몸으로 체득한 작가이다. 지난 50년간 지속된 작가의 700여점에 이르는 드로잉 작품은 자신의 축적된 작업 정신의 발로(發露)이며, 예술적 정체성(正體性)을 찾아내려 했던 조형적 흔적이다. 그러기에 그의 드로잉은 널리 알려진 그의 조각 작품을 접할 때와는 또 다른 예술적 숨결과 울림을 느끼고 들을 수 있게 한다. 이 소고(小考)에서 그의 드로잉에 내재된 작업세계를 폭넓게 조망하기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전체적인 조망을 위해서는 다양한 맥락과 관점에서 그리고 분석적 차원뿐만 아니라 정신적 차원에서도 섬세한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2)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필자는 이 소고(小考)에서 최만린의 드로잉 작품을 관통하는 예술적 정신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 미학적 관점, 즉 “본질을 사유하는 드로잉”, “드로잉과 추상 개념", "비우고 차는 드로잉 미학' 등을 통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II. 본질을 사유하는 드로잉
최만린의 드로잉은 본질을 사유하는 드로잉이다. 이와 관련하여 II장에서는 그의 드로잉 작품에 나타난 특징을 '정직한 드로잉', '양식(style)에서 자유로운 드로잉', '보잘 것 없는 것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드로잉', '자연과 생명, 그 근원에 대한 관조' 등과 같은 관점에서 논구할 것이다.
1. 정직한 드로잉
최만린의 드로잉, 특히 초기 드로잉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가식이나 과장이 없는 순수하고 담백한 표현성이다. 그의 드로잉은 '정직한 드로잉'이다. 이러한 '정직한 드로잉' 정신은 초기에서 최근의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초기의 인체 드로잉을 보더라도 조형적 기법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감성이 더 부각되어 있다. 이는 그의 드로잉이 세련된 묘사나 기술적인 기법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심상(心象)을 그대로 담아낸 것임을 말해준다.3)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감성적인 측면만이 강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드로잉은 이성과 감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사이의 긴장감과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드로잉에는 이성이 감성화되어 있기도 하고, 또한 감성이 이성화되어 있기도 하다.
'정직한 드로잉'은 서구의 드로잉 기법을 단순히 답습하는 것에서 벗어나 작가 스스로 드로잉의 길을 만들어가면서 이루어낸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기법이 아니라 마음 하나로 걸어간 길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었겠지만, 그는 자신의 드로잉을 찾아 나서고, 만들어가며 열어갔던 것이다. 드로잉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재했던 당시 드로잉이 갖는 조형적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이에 따라 독자적이고 실험적인 드로잉을 시도했던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섬세한 표현력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리성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다소 어색한 조형성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점 또한 '정직한 드로잉'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초기의 ‘정직한 드로잉'은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기에 50년대의 드로잉 전체에서 드러나는 어두운 느낌은 그 시대의 암울한 상황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투사된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만린의 드로잉은 시대적 상황을 예술적 형식미로 꾸미거나 장식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드로잉은 "흔적”으로 남아 있는 드로잉이다. 예컨대, <이브(Eve)> 조각과 관련된 그의 드로잉 흔적5)은 작품이 단순한 조형적 형태가 아니라 사유가 형태화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6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드로잉은 그 형태상의 측면에서 많은 변용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러한 '정직한 드로잉' 작업 태도는 그대로 지속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수직이 강조된 70년대 초의 몇몇 드로잉6)의 경우, 초기의 순박하고 질박한 '정직함'에 비해 일종의 논리적 '정직함'이 두드러진다. '정직한 드로잉'의 또 다른 면모는 그가 드로잉을 위한 드로잉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의 작품과 관련된 드로잉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도 드로잉으로 정신을 담을 필연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태(胎) 연작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드로잉이 없는 이유에 대해 필자가 작가에게 물었을 때, 그는 <태(胎)〉 연작 자체가 곧 드로잉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에게 드로잉은 단순히 작업 제작을 위해 마련한 밑그림이 아니라 정신에 대한 정직한 자기표현이다.
2. 양식(style)에서 자유로운 드로잉
최만린의 드로잉은 양식에 얽매이지 않은 드로잉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작가의 조각이나 드로잉에서 본격적인 조형성이 감지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두고 그의 작품이 유형화된 양식의 단계로 접어든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후의 드로잉에서도 뚜렷한 양식(style)을 선보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드로잉에 양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관습적인 틀이나 정형화된 일반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리처드월하임 (Richard Wollheim)이 언급하는 개인 양식(individual style)의 관점에서 본다면, 최만린의 드로잉도 양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월하임은 일반 양식과 개인 양식을 구분한다. 월하임에 따르면, 일반 양식은 관습이나 학습에 따라 형성된 양식인 반면, 개인 양식은 작가 개인의 특성이 충분히 반영된 창조성과 예술성에 토대를 둔 양식이다. 개인 양식은 확정되고 고정된 틀로 존재하는 양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작가의 고유한 양식인 셈이다.7) 월하임이 개인 양식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은 특성을 최만린의 드로잉에서 읽어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드로잉은 초지일관하게 작가 자신의 고유한 정신을 담아낸 드로잉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예술 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드로잉, 그것이 최만린 드로잉 정신의 핵심이다. 일반 양식에 얽매이거나 의존하는 드로잉이란 단지 세련된 묘사나 정형화된 기교로 남을 뿐이다. 자신의 고유한 개인 양식을 갖지 못한 드로잉은 자유로운 예술정신에 대한 이율배반의 드로잉이다. 드로잉이 자유로운 정신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관습적인 양식에 머물고 만다면, 그 작업의 결과는 어떠한 예술적 혹은 조형적 긴장감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바둑격언 중에 정석을 배우고 나면 정석을 잊어버리라는 말이 있다. 정석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석에만 얽매이면 바둑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없다는 말이다. 최만린은 정석을 배우고 또한 그것을 버리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조각과 드로잉에서 실천하고 있다.8)
3. 보잘 것 없는 것의 숭고함
최만린의 초기 <이브> 드로잉 연작9)은 '보잘 것 없는 것의 숭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흔히 1960년대 이전의 그의 조각과 드로잉은 습작기로 분류된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한 숭고 미학의 관점에서 볼 경우, 그 조형적 완성도가 충분한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완성도란 초기드로잉에서 이미 조형성과 정신의 문제가 깊이 통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러니 이를 두고 마치 기법이나 형태에서 조형적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만린의 초기 드로잉에 나타난 숭고미는 조형적 격식에서 벗어난 자연스러움, 소박함 그리고 원초성에서 유래한다. 그의 드로잉은 무엇을 그려내기보다는 생각을 붙잡아 두려는 어떤 절박한 마음의 표현이다. 생각을 그리는 드로잉에서 재료의 선택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주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종이 위에 드로잉 작업을 해왔다. 서구 드로잉의 기준에서 보자면, 기법이나 형태면에서 대단하지도 않으며, 또한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드로잉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저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드로잉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보잘 것 없는 드로잉에 깃든 숭고의 미학, 이것이 최만린 드로잉이 제시하고 있는 미학이다. 인간 스스로의 초라함을 느끼고, 이를 고양과 상승의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 바로 여기에 숭고의 계기가 있다. 여체를 표현한 초기 드로잉10)에서 에로틱한 특징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체 드로잉은 남성의 억압적인 시선으로 그려진 것으로 볼 수 없다. 드로잉에 표현된 여체는 근원성과 원초성에 대한 숭고한 재현이기 때문이다.
<이브> 드로잉을 보자. '이브'는 꽃을 안고 있다. 화려하게치장된 꽃이 아니라 가시로 만들어진 꽃이다. 가시 꽃을 안고 있는 '이브'는 보잘 것 없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기에 에로티시즘이나 유미주의와는 거리가 먼 조형성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비애와 고통이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지는 않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한 실존적 자각으로 처절함을 넘어서 관조하는 한 인간의 상황이 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브> 조각과 이와 연관된 드로잉에는 숭고미가 현현되고 있다. 숭고란 인간이 가장 초라한 순간에도 높은 것을 향해 고양되고 상승되는 감정을 느낄 때 생겨난다. 실상 숭고란 대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11) <이브>는 '이브'라는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마음이 갖는 인간의 숭고성을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숭고의 미학은 60년대 초반의 <이브> 드로잉 연작에서 보다 추상적인 형태로 지속된다.
4. 자연과 생명, 그 근원에 대한 관조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최만린은 자연과 생명을 주제로 삼아 작업해 온 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서구의 조형적 기법만으로 이러한 주제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일찍이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 미술 기법으로 자연과 생명을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것의 근원에 대한 관조를 재현해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만린은 이러한 조형적 아포리아(aporia)를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또한 이를 자신의 예술에 있어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최만린의 조각과 드로잉은 실존주의나 앵포르멜(Informel) 계열에 속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측면이 그의 예술의 정수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1960년대 초의 <이브> 드로잉 연작을 보자. 이 드로잉들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1965년 작 <이브(65-8)〉를 심층적으로 고찰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브(65-8)>와 관련된 드로잉 연작에서 그는 인간 본질에 대한 상념과 실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나타난 형식이나 형태만을 취해 단지 앵포르멜이나 실존주의로 분류하는 것은 도식적이며 결코 적절하지 않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드로잉이 조각 제작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연습용 밑그림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드로잉과 완결된 작품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드로잉은 결과인 작품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이와 더불어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동양철학에 바탕을 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근원에 대한 물음이 드로잉 연작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자연과 생명 그리고 그 근원을 모색하는 작가에게 단지 물성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물성그 자체가 아니라 자유로운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12) 드로잉 <D-60-45>을 보자. 여기에는 "primitive", "oriental", "dynamics" 등과 같은 단어가 적혀있다.13) 이 세 단어로 집약되는 그의 드로잉 미학은 초기에서부터 최근에 이르는 드로잉에서 일관되게 표명되어 왔다. 여기에는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원초적 조형성의 힘, 그리고 이러한 힘이 동양적 사유에 토대를 둘 때 가능한 것이고, 이에 따라 자연과 생명이 표현될 수 있다는 작가의 근본 생각이 들어 있다고 하겠다.14)
III. 최만린의 드로잉과 추상 개념
1965년 이후 전개되는 최만린의 드로잉은 추상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그의 추상 드로잉은 동양적 사유와 그에 따른 조형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단지 서구 현대미술에 나타난 추상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그 맥락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연구가 필요하다. III장에서는 그의 추상 드로잉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관점, 즉 '추상 드로잉-사유하는 드로잉', '추상 드로잉과 비움의 미학', '조형 미학에 나타난 공간개념' 등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할 것이다.
1. 추상 드로잉 - 사유하는 드로잉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 15)에서 '추상'은 20세기 서구의 미술사에서 전개된 추상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그 맥락을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추상' 개념을 가장 넓은 의미, 넓은 의미 그리고 좁은 의미의 추상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16)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본 추상 개념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의 본질과 그 핵심을 이끌어내어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사시대에 제작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도 얼마든지 훌륭한 추상조각 작품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실상 <뷜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추상의 본래적인 의미, 그러니까 자연미와 소박미를 갖춘 원초적 추상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형식이나 표현력에 있어서도 20세기의 추상 조각에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17) 최만린의 드로잉에 나타난 추상은 바로 가장 넓은 의미에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추상 조각으로 볼 때 생각되는 그러한 추상 개념이다.
단순함과 소박함 그리고 한국적인 선의 미학이 강조된 최만린의 드로잉은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정신의 산물이다. 세련된 기교에 치우친 감각성이라든지 단지 형태 그 자체를 추상적으로 이끌어낸 드로잉이 아니다. 원초적, 동양적 사유에 바탕을 둔 드로잉이기 때문이다. 물론 형식적 조형미가 돋보이기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절제되어 있다. 최만린의 드로잉에는 무엇보다 인위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강조된다.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지나가듯이, 그렇듯 자연의 본성에 따른 추상 드로잉이다. 지성이나 이성 이전의 직관이 강조된 드로잉, 그것이 최만린의 드로잉의 본질을 이룬다. 그러기에 최만린의 드로잉은 실상 드로잉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드로잉이기도 하다. 1965년에서 최근에 이르는 드로잉, 즉 〈천(天)>부터 <O>에 이르는 드로잉들도 이러한 기본적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명의 근원을 추상 드로잉에 담아내려는 그의 조형적 의지가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그의 드로잉에 나타난 추상 개념은 이러한 예술 정신에 대한 조형적 "흔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은 동양적 사유 그리고 한국적 조형성에 뿌리를 둔 드로잉이다. 그의 드로잉에서 중요한 것은 근본성이다. 근본에 대한 이해 없이 현상을 드러내는 것은 조형적 장식이나 치장에 불과한 재현이다. 송의 등춘(春)은 『화계(繼)』에서 형태에 치중한 작가들의 그림을 비판하면서 “비록 그림이라고 불리지만 진정한 그림이 아니니, 단지 그 형체만 전할 뿐 그 느낌을 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18) 최만린의 드로잉은 조형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의 근본적인 정신을 찾아 나선 드로잉이다. 그러기에 세련된 기법이나 묘사 혹은 실험적 표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필(毛筆)을 사용한 그의 드로잉을 보라.19) 여기에는 자유로운 정신이 현현되어 있다. 생략의 미, 소박한 선의 흐름으로 특징되는 절제된 조형성,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국적인 단순함의 미학을 보여준다.20)
2. 추상 드로잉과 비움의 미학
최만린의 드로잉에 나타난 정신은 상당히 일관되지만, 형태상의 변화도 읽어낼 수 있다. 가장 극적인 예로 1965년 이후 인체 드로잉에서 추상 드로잉으로 전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추상 드로잉은 대상의 본질을 단지 형식적인 측면에서 추출해 조형적으로 재현한 드로잉이 아니다. 오히려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움으로써 획득된 드로잉이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한 재료는 연필, 펜, 콘테 등이 아니라 주로 모필이다. 실상 모필은 단순한 생략이나 대상에서 본질을 추출해서 형상화하는 기법에서는 그리 적절하지 않겠지만, 생명의 고양과 상승을 근원적인 힘으로 이끌어내고 표현하는 데에는 가장 적합한 재료이다. 모필로 표현된 자유로운 드로잉, 여기에는 어떤 조형적 매력을 발산하려는 어떠한 기교도 보이지 않는다.
<이브> 연작이 보여 준 조형적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길을 떠나는 것, 그것이 한 작가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조형성을 비우는 길을 택했다. 모든 것이 버려졌고 비워졌다. 이러한 비움의 미학을 두고 최만린이 이전 작업의 조형성에 한계를 체감하고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실상 그리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추상 드로잉은 자연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사유의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의 추상 드로잉은 단지 새로운 기법이나 묘사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비움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3. 최만린의 조형미학에 나타난 공간 개념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은 사유하는 드로잉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충일함을 담지하고 있다. 생명은 사물의 근본 원리이며, 모든 사물에 침투되어 있다. 최만린은 자신의 조각과 드로잉에서 이러한 생명을 일관되게 조형적으로 모색해 왔다. 그런데 생명을 조형적으로 드러낼 때, 공간이 늘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만린의 조형미학에 나타난 공간은 어떠한 공간인가? 그의 드로잉을 통해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직관적인 마음의 공간이 강조되고 있음을 확연하게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칸트의 공간론과 맞닿아 있다. 주지하다시피 칸트는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에서 공간을 단지 개념이나 대상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직관하는 마음(순수 직관 혹은 직관 형식)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칸트의 공간론과 최만린의 조형 미학에 나타난 공간 개념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예컨대, 칸트의 공간론은 생명과 관련된 공간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공간이 물리적인 관점에서 파악되지않고, 직관이자 동시에 마음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공간 이해는 최만린의 추상 드로잉에 나타난 조형미학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IV. '비우고 차는' 드로잉 미학
최만린의 드로잉은 비우고 채우는 드로잉 미학을 보여준다. IV장에서는 그의 드로잉 미학을 중심으로 '조형적 정체성 모색'과 '비움과채움의 미학'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1. 조형적 정체성 모색
최만린은 한국 전쟁 이후 국내에서 교육을 받은 첫 세대에 속하는 작가로 서구의 조형적 기법을 체득했다. 그렇지만 조각과 드로잉이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그는 서구의 세련된 조형적 기법에 감탄하고 수용하기에 급급한 작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세련된 묘사나 기법에서 벗어나 자신의 조형적 정체성을 찾아나서는데 주력한 작가였다. 최만린은 자연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하고, 공간을 마음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적 조형성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해 온 한국 작가이다.21)
최만린의 조형적 정체성(identity)에 대한 모색은 1980년대 이후 인위적인 조형적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에서 정점에 달한다. 특히 <점(點)> 연작과 <O> 연작 드로잉은 생명을 근원적으로 표방하면서도 여전히 습관처럼 남아 있던 서구적 조형성을 냉엄하게 반성한 결과로 비롯된 것일 터이다. 조형적인 것,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경계를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만린은 그 어찌할 수 없는 경계(혹은 한계)를 자신의 고유한 사유의 언어로 깊이 성찰하고 있다. 후기 드로잉은 경계에서 자유로운, 시작도 끝도 없는 여운을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드로잉은 단지 수렴과 발산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한에 대한 동경이다.
2. 비움과 채움의 미학
1980년대 말에서 시작된 <O> 연작 드로잉22)은 그가 모색해 온 조형적 정체성의 한 매듭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O> 연작 드로잉은 그의 조형세계와 정신세계가 합일되는 형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O>는 어떤 방법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작가의 고백이다. 모든 것이 버려지고 비워진 상태, 그것이 <O> 드로잉 연작에 표현되어 있다. 실상 <O>의 의미는 개념이나 논리적으로 파악될 수 없다. <O>는 무엇을 상징하는 기호도 아니며 그렇다고 거창한 이념을 담고 있는 단어도 아니다. <O>는 버려지고 비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어 있기만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O>는 비어있으면서 동시에 차 있다. <O> 연작 드로잉에는 유(有)와 무(無)가 공존한다. 비움과 채움의 미학, 그것이 <O>에 나타난 미학이다.
<O> 연작 드로잉에는 선과 좌표가 그러져 있다. 이것은 자유로운 무질서에 대한 질서, 곧 현실을 지시하는 것일까? 그렇게 볼 이유는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은 질서와 무질서 양자 중 어느 하나로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다. 질서와 무질서는 서로 다르면서도 상호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 무질서 안에 질서가 있고, 질서 안에 또한 무질서가 있는 법이다.23) 인간은 이상적이고 초현실적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 현실에서 그리고 그 현실이 부여한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최만린의 드로잉에 나타난 선과 좌표는 자연스러운 무질서에 대한 현실적 질서의 확인에 해당하는 조형적 표식이다. 최만린은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이상만을 추구한 작가가 아니다. <이브>에서 <O>에 이르는 그의 드로잉은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로 나아갔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O>에 나타난 자연스러움과 엄격함, 곧 무질서와 질서 사이의 조형성은 비움과 채움의 미학이 가져온 순수한 결과이다.
V. 나가는 말
최만린의 드로잉은 지난 50년간 다양한 형태의 변용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형태의 변화가 있지만, 그 본질마저 바뀐 것은 아니다. 그의 드로잉에는 일관되게 인간, 자연, 생명 그리고 한국적 조형성에 대한 물음이 근저에 항상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작가로서 이러한 일관된 조형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실상 서구의 조형 기법을 적당하게 활용해서 작업하려는 유혹이 얼마나 많은가? 그의 조각과 드로잉이 보여주고 있듯이, 최만린은 시류에 편승하거나 휩쓸리지 않은 채 고독한 길을 걸어 왔다. "임선생, 걸을 때 발자국을 의식하면서 걷습니까?" 작년 가을 어느 날 최만린 작가가 필자에게 한 말이다. 울림이 큰 말이었다. 이번 전시와 도록에서 선보이는 700여점의 드로잉은 그 발자국들이다.
1) Joseph Beuys, The Secret Block For a Secret Person in Ireland, hrsg. von Heiner Bastian, (Martin-Gropius Berlin/Kunsthalle Tübungen), München 1988. p. 48. “It was very important for me to have done these drawings - for me they are closer to reality than other kinds fo so-called reality. Looking through them now I can see that my researches are most clearly expressed in question marks."
2) 최만린의 드로잉 작품을 시기별로 분류하고 그 형태나 기법에 관해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이 의도하는 바는 아니다. 이 글은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 미술사나미술비평의 관점보다는 그의 드로잉을 관통하는 예술적 정신에 대한 미학적 관점을 서술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3) 최만린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은사인 김종영이 자신의 초기 드로잉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영향은 기법적인 측면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때, 최만린의 드로잉은 이후 김종영의 드로잉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최만린과 김종영의 드로잉에 관한 비교 연구는 이 책에 실린 김이순의 논문을 참고할 것.
4) 최만린이 전통적인 드로잉 기법에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초기의 인체 드로잉만 보더라도 그가 드로잉 기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D-56-1〉, 〈D-56-12〉, 〈D-56-15> 등을 참고할 것).
5) <D-56-8>, <D-56-9>, <D-56-11> 등을 참고할 것.
6) <D-73-3>, <D-73-5>, <D-73-13>, <D-73-15>, <D-73-20>, <D-77-4>, <77-5> 등을 참고할 것.
7) 리처드 월하임(Richard Wollheim)은 양식 개념에 관해서는 그의 저서 Painting as an Art(1984)와 논문 “Pictorial Style: Two Views"(1977), “Style in Painting”(1995) 등을 참고할 것. 월하임의 일반 양식과 개인 양식의 구분에 관한 자세한 논의로는 조진근, '예술로서의 회화 - 리처드 월하임의 회화론 연구』, (2008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특히 pp. 43-53을 참고하시오.
8) 최만린의 50년대 드로잉을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조형적 기본에 충실했던가를 알 수 있다. 최만린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학부시절부터 해부학과 인체 모델링에 관한 공부를 철저하게 했었지만, 기법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조형성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수련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일관되게 조형적 기법 그 자체에 매몰되는 것을 항상 경계한 작가였던 것이다.
9) <D-56-8>, <D-56-9>,<D-56-11>, <-57-23(2)>, <D-57-64>, <D-58-11>, <D-58-15> 등을 참고할 것.
10) <D-56-1>, <D-56-12>, <D-56-15>, <D-57-21>, <D-57-40>, <D-58-7>, <D-58-18> 등을 참고할 것.
11) 이러한 필자의 진술은 18세기 독일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숭고론에 따른 것이다. 칸트는 자신의 세번째 비판서인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의 '숭고의 분석학'에서 숭고가 대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이로부터 우리가 곧 알 수 있는 바는, 우리가 자연의 많은 대상들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옳을 수 있지만, 여느 자연 대상을 숭고하다고 부른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 우리는 그 대상이 마음속에서 만날 수 있는 숭고함을 현시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 이상을 말할 수 없다." (칸트, 판단력비판, 백종현 옮김, 아카넷2009, B76)
12) 필자와의 대화에서 최만린은 자신의 드로잉에서 정신과 생명력을 강조하고 싶었고, 이런 이유로 당시에 유행했던 물성에 치우친 작업과는 다른 길을 걷고자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즉, 물성이란 개념이 주는 제약에서 벗어나 정신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것이 그에게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13) 직역하면 "원시적", "동양적", "역동성"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최만린의 예술 전체를 조망해 볼 때, “원초성”, “동양적(혹은 한국적) 사유", 그리고 “(조형적 긴장성"정도로 의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14) 최만린은 예술과 정신 사이에 내재한 "긴장감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긴장감은 지난 50년간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추구되어 왔다.
15) 최만린의 근본적인 관심사는 서구의 드로잉 기법을 통해 조형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의 본질을 그려내는 데 있었고, 이 점은여러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 추상 드로잉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최만린의 드로잉은 1958년부터 점차 추상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1960년대 초반을 거쳐 1965년 이후 본격적인 추상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추상 드로잉이 시작되기 이전의 드로잉에서도 추상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16) 가장 넓은 의미에서 추상은 예술의 역사에 걸쳐 늘 있어왔다. 원시 예술, 이집트 예술, 중세예술 그리고 현대 예술에서 추상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확인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20세기 현대 예술이 추상예술이라고 말해도 그리 무리가 없을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 20세기 초, 중엽에 나타난 예술 운동으로서의 추상예술(예컨대, 회화의 경우 칸딘스키, 몬드리안 등 그리고 조각의 경우 브랑쿠지, 쟈코메티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 언급했다시피 최만린의 조각과 드로잉에 나타난“추상" 개념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이해되는 추상에 가깝다.
17) 최만린은 필자에게 <뷜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그가 추구하는 조형성의 궁극을 보여준다.
18) 김백균, 매체의 관점으로 본 '시서화일률(詩書畵一律)'론」 (『미학 제 48집, 2006) p.20에서 재인용.
19) 초기 드로잉과는 달리 모필을 사용하여 그린 본격적인 추상 드로잉 작업, 즉 〈천(天)〉, 〈지(地)〉, 〈현(玄)〉, 〈황(黃)〉과 관련된 예로 <D-65-27>, <D-65-29>, <D-65-36>, <D-66-6>, <D-66-10>, <D-66-14>, <D-66-18>, <D-66-27>, <D-66-29>, <D-67-3>, <D-67-6>, <D-67-23>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0) 이런 점에서 최만린의 드로잉은 미니멀리즘(Minimalism)과는 다른 단순성을 보여준다.
21) 최만린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1970년대 초반의 미국 체류 기간이 서구의 새로운 조형적 기법에 눈을 뜨게 되는 시기였다기보다는 자신의 조형적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심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22) 예컨대, <D-89-1>, <D-89-2>, <D-89-3>, <D-89-10>, <D-89-1>, <D-89-3>, <D-89-4>, <D-90-2>, <D-90-5>, <D-95-2> 등을 참고할 것.
23) 2004년의 드로잉 <D-2004-1>, <D-2004-3> 등에서도 이러한 점이 확인된다. 붓으로 형태를 그리고 다시 거기에 연필로 그린 드로잉은 자유로운 무질서의 경지에 대한 현실적 확인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