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과정을 묻다 A Reflection on the Process in Art
전시기간: 2010.10.16 - 2010.11.30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김세일, 안수진, 윤종석, 전강옥, 정재철, 최찬숙, 허수영
전시내용:
“과정(Process)”, 그 빛나는 예술의 언어
임성훈 모란미술관 학예실장, Ph.D.
I
이번 전시 <과정을 묻다(A Reflection on the Process in Art)〉는 2010년 모란미술관의 네 번째 기획전이다. 지난 3월말의 <조각의 흔적과 증거>전을 시작으로 5월 중순의 <사이와 긴장(Between and Tension)〉전 그리고 8월에 개최된 한·몽 현대미술교류전<몽골의 하루>전 등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모란미술관의 길 - 그 길은 어제의 길뿐만 아니라 오늘 그리고 내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 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전시였다. 물론 이러한 기획전의 의미는 단순히 모란미술관 20주년 기념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각각 고유하면서도 특별한 주제의식을 지닌 전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번의 기획전에 사용된 용어들을 전체적으로 쭉 훑어가다 보면, 주목할 만한 특징을 읽어낼 수도 있을 터인데, 그것은 '흔적(trace)’, ‘증거(evidence)', ‘사이(between)', '긴장(tension)’, ‘하루(day)' 등이 주제를 분명히 드러내기 보다는 오히려 은유적으로 지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각 전시의 주제들이 예술에 대한 물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실상 작년에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 "예술은 결국 물음이 아닐까?"라는 '물음'이었다. 이번 전시 <과정을 묻다>는 2010년도 모란미술관 기획전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예술에서 '과정'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II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이 있을 리 없다. 답이 있는 예술이란 역설적으로 더 이상 예술일 수가 없다. 예술에서 답이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만약 예술에도 답안지가 있다면, 거기에는 물음표가 가득 적혀져 있지 않을까? 예술은 본질적으로 물음이다. 미학자 아도르노(T. W. Adorno)는 자신의 『미학이론』첫 문장에서 “예술과 관련해서 자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1)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곧 예술의 수수께끼적 성격을 강조하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술에 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많은 예술에 관해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있어 왔던가? 그렇지만 예술에 관한 그 어떤 말도 예술을 다 설명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예술은 물음으로 남고, 또 그 속에서 예술은 자기 언어를 갖는다.
III
예술은 물음이다. 이는 곧 예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예술에서 창조(성)의 문제도 결국 과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한 매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창조(성)에 관해 말할 때, 무엇인가 새로운 것 혹은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는 예술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예술은 인간정신 활동의 산물이기에 단순히 결과에 따라 평가될 수 없다. 예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드러낸다. 물론 예술작품은 많은 경우 일종의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작가나 관객은 단지 결과물인 한 대상으로서만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결과를 이끌어낸 과정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술에서 과정과 이에 따른 반성이 더욱 중요시 된다. 작품에 과정과 반성이 결여된다면, 그 작품이 아무리 참신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간단히 창조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IV
예술에서 '과정'은 작가의 작품 제작뿐만 아니라 관객이 작품을 수용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과정'은 작가가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예술에서 과정을 물어본다는 것은 예술이 완결된 형식이 아니라 열린 구조임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은 그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달리 말해, 과정이란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 <과정을 묻다>전에서 '과정'도 결과에 치중하다가 놓쳐버린 것들 혹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과정'에 대한 물음은 결과나 성과중심주의적인 현대문화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V
이번 <과정을 묻다>전은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을 해온 일곱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 작가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예술언어로 과정의 의미를 묻고 있다. "불가촉" 연작에서 볼 수 있듯이 구조, 흐름, 매스, 공간 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어왔던 김세일은 이번 전시에서 철선 조각을 통한 긴장미를 조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다년간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정재철은 장소, 예술 그리고 문화의 의미를 '과정'이라는 문맥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모색해 온 안수진은 기계의 이중성을 통해 합리성의 비합리성을 조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감이 들어 있는 주사기로 작업하는 화가 윤종석은 옷의 변용된 이미지를 통해 한 대상이 갖는 다양한 속성을 나타내 보인다. 중력을 주제로 한 작업을 줄곧 해왔던전강옥은 이번 설치조각에서 확정적인 것과 불확정적인 것의 경계, 그 조형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식물도감이나 동물도감을 통째로 한 화면에 재현하고 있는 허수영은 책의 연속적인 과정의 이미지를 응축된 과정의 이미지로표현해내고 있다. 현재 베를린에서 활발한 영상작업을 하고 있는 최찬숙은 시공간적으로 어긋나고 교차되는 이미지가 어떻게 변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일곱 작가의 작품들은 각각 고유한 자기 언어를 갖고 있지만, 예술이 확정된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빚어지는 반성적인 산물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공통점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VI
오늘날 결과는 차고 넘치지만, 그 속에서 과정은 좌초하고 우리들의 사유는 더욱 빈곤해 진 듯하다. 이러한 문화풍경에서 다시금 과정의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번 전시 <과정을 묻다>전은 예술이 단지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물음에서 물음으로 이어지는 소통의 과정, 그 산물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결과는 쉽게 사라질 수 있지만, 과정이 남긴 그 의미들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가 결과에 억눌렸던 소중한 과정의 의미들을 다시 꺼내어 어루만져보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1) “Zur Selbstverständlichkeit wurde, daß nichts, was die Kunst betrifft, mehr selbstverständlich ist.” (T. W. Adorno, Asthetische Theorie, Frankfurt amMain 1998, p. 9.)
전시명: 과정을 묻다 A Reflection on the Process in Art
전시기간: 2010.10.16 - 2010.11.30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김세일, 안수진, 윤종석, 전강옥, 정재철, 최찬숙, 허수영
전시내용:
“과정(Process)”, 그 빛나는 예술의 언어
임성훈 모란미술관 학예실장, Ph.D.
I
이번 전시 <과정을 묻다(A Reflection on the Process in Art)〉는 2010년 모란미술관의 네 번째 기획전이다. 지난 3월말의 <조각의 흔적과 증거>전을 시작으로 5월 중순의 <사이와 긴장(Between and Tension)〉전 그리고 8월에 개최된 한·몽 현대미술교류전<몽골의 하루>전 등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모란미술관의 길 - 그 길은 어제의 길뿐만 아니라 오늘 그리고 내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 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전시였다. 물론 이러한 기획전의 의미는 단순히 모란미술관 20주년 기념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각각 고유하면서도 특별한 주제의식을 지닌 전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번의 기획전에 사용된 용어들을 전체적으로 쭉 훑어가다 보면, 주목할 만한 특징을 읽어낼 수도 있을 터인데, 그것은 '흔적(trace)’, ‘증거(evidence)', ‘사이(between)', '긴장(tension)’, ‘하루(day)' 등이 주제를 분명히 드러내기 보다는 오히려 은유적으로 지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각 전시의 주제들이 예술에 대한 물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실상 작년에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 "예술은 결국 물음이 아닐까?"라는 '물음'이었다. 이번 전시 <과정을 묻다>는 2010년도 모란미술관 기획전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 번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예술에서 '과정'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II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이 있을 리 없다. 답이 있는 예술이란 역설적으로 더 이상 예술일 수가 없다. 예술에서 답이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만약 예술에도 답안지가 있다면, 거기에는 물음표가 가득 적혀져 있지 않을까? 예술은 본질적으로 물음이다. 미학자 아도르노(T. W. Adorno)는 자신의 『미학이론』첫 문장에서 “예술과 관련해서 자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1)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곧 예술의 수수께끼적 성격을 강조하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술에 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많은 예술에 관해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있어 왔던가? 그렇지만 예술에 관한 그 어떤 말도 예술을 다 설명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예술은 물음으로 남고, 또 그 속에서 예술은 자기 언어를 갖는다.
III
예술은 물음이다. 이는 곧 예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예술에서 창조(성)의 문제도 결국 과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한 매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창조(성)에 관해 말할 때, 무엇인가 새로운 것 혹은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는 예술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예술은 인간정신 활동의 산물이기에 단순히 결과에 따라 평가될 수 없다. 예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드러낸다. 물론 예술작품은 많은 경우 일종의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작가나 관객은 단지 결과물인 한 대상으로서만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결과를 이끌어낸 과정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술에서 과정과 이에 따른 반성이 더욱 중요시 된다. 작품에 과정과 반성이 결여된다면, 그 작품이 아무리 참신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간단히 창조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IV
예술에서 '과정'은 작가의 작품 제작뿐만 아니라 관객이 작품을 수용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과정'은 작가가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예술에서 과정을 물어본다는 것은 예술이 완결된 형식이 아니라 열린 구조임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은 그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달리 말해, 과정이란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 <과정을 묻다>전에서 '과정'도 결과에 치중하다가 놓쳐버린 것들 혹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과정'에 대한 물음은 결과나 성과중심주의적인 현대문화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V
이번 <과정을 묻다>전은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을 해온 일곱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 작가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예술언어로 과정의 의미를 묻고 있다. "불가촉" 연작에서 볼 수 있듯이 구조, 흐름, 매스, 공간 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어왔던 김세일은 이번 전시에서 철선 조각을 통한 긴장미를 조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다년간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정재철은 장소, 예술 그리고 문화의 의미를 '과정'이라는 문맥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모색해 온 안수진은 기계의 이중성을 통해 합리성의 비합리성을 조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감이 들어 있는 주사기로 작업하는 화가 윤종석은 옷의 변용된 이미지를 통해 한 대상이 갖는 다양한 속성을 나타내 보인다. 중력을 주제로 한 작업을 줄곧 해왔던전강옥은 이번 설치조각에서 확정적인 것과 불확정적인 것의 경계, 그 조형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식물도감이나 동물도감을 통째로 한 화면에 재현하고 있는 허수영은 책의 연속적인 과정의 이미지를 응축된 과정의 이미지로표현해내고 있다. 현재 베를린에서 활발한 영상작업을 하고 있는 최찬숙은 시공간적으로 어긋나고 교차되는 이미지가 어떻게 변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일곱 작가의 작품들은 각각 고유한 자기 언어를 갖고 있지만, 예술이 확정된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빚어지는 반성적인 산물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공통점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VI
오늘날 결과는 차고 넘치지만, 그 속에서 과정은 좌초하고 우리들의 사유는 더욱 빈곤해 진 듯하다. 이러한 문화풍경에서 다시금 과정의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번 전시 <과정을 묻다>전은 예술이 단지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물음에서 물음으로 이어지는 소통의 과정, 그 산물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결과는 쉽게 사라질 수 있지만, 과정이 남긴 그 의미들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가 결과에 억눌렸던 소중한 과정의 의미들을 다시 꺼내어 어루만져보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1) “Zur Selbstverständlichkeit wurde, daß nichts, was die Kunst betrifft, mehr selbstverständlich ist.” (T. W. Adorno, Asthetische Theorie, Frankfurt amMain 1998, p.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