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시

조각적 전회

전시명: 조각적 전회

전시기간: 2016.04.08 - 2016.06.08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윤석남, 안재홍, 권대훈, 김홍석

전시내용: 

조각적 전회 Sculptural Turn


임성훈(미술비평, 미학 Ph. D.)


  2016년 모란미술관 첫 번째 전시 <조각적 전회>를 기획하면서 조각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았다. 조각사를 읽어 본 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듯이, 조각의 역사에서 인체 조각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현대조각에서 인체조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세기 이전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인체는 현대조각에서 여전히 중요한 주제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통적인 조각이 추구했던 재현과는 달리 현대 조각에서는 추상적이거나 개념적 또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탐구의 경향으로 인해 인체 조각의 미학적 변용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현대 조각의 전회를 감지할 수 있는 한 지표로서 인체를 주제로 한 조각 문화를 다시 고찰해 보는 것은 유의미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조각에서 인체 조각의 역할이 질적 측면이 아니라) 양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약화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20세기 초 추상조각의 등장 이후 전통적으로 인체를 조각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조형적 원리와 그에 따른 조각의 본질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조각적 재현의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모더니즘 조각 그리고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모더니즘 이후의 조각은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때 조각으로 표상될 수 있는 조형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현대조각에서 인체 조각의 중요성이 여러 측면에서 견지되고 있다는 점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체는 조각의 원형적인 탐구의 대상이고, 이는 현대조각에서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조각이 존재하는 한, 인체는 조각으로 계속 표현될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선 대상인 인체 [몸]은 조각의 미학과 문화성을 가장 풍요롭게 드러내는 주제이다.

  현대 조각은 추상조각, 미니멀리즘 조각, 개념 조각, 설치 조각, 포스트모더니즘 조각 등의 영역에서 전통적 조각에서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조형성을 모색해왔다. 이에 따라 조각의 본질을 이루는 공간, 매스 그리고 구조에 대한 이해 또한 새로운 양상과 맥락에서 파악된다. 특히 현대조각에서는 이전의 조각에서 상정되지 않았던 여러 요소들, 예컨대 비물질성, 비영속성, 행위, 개념 등이 강조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현대조각의 흐름 속에서도 인체는 여전히 중요한 주제이다. 인체는 조각의 고향이자 영원한 조형적 탐구의 대상이다. 그러기에 현대조각이 표현하는 인체를 통해 조각의 동시대성을 가늠하고 내일의 조각을 생각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을 인체 조각에 중점을 두면서도 "조각적 전회"라고 명명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조각적 전회"는 단지 새로운 기법의 변화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조각사의 근간을 이루었던 인체 조각의 조형적 변용을 통해 현대조각이 드러낼 수 있는 미적 이념을 생각해보자는 의도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그러기에 "조각적 전회"는 단순히 조형적 형식의 변화라기보다는 한 시대의 문화에서 구현되는 조각의 이념이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물론 이번 전시가 조각의 전환점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내일의 현대 조각의 향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상 어떤 전시라도 이러한 역할을 분명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란 불가능하다.) 예술은 조각, 작품 그리고 감상자의 생산적 혹은 수용적 관계 또는 문화 담론의 관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번 <조각적 전회>展은 인체 조각을 통해 오늘의 조각에서 읽어낼 수 있는 미적 이념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이로 인해 촉발되는 조형적 물음을 확대하고자 하는 시도로 기획된 것이다. 조각은 그 시대의 이념을 보여준다. 이집트 조각에서는 권위, 그리스 조각에서는 조화, 중세 조각에서는 구원, 르네상스 조각에서는 인간 그리고 근대 조각에서는 이성과 감성의 교차적 상호성이 현시되어 왔다. 이러한 조각의 이념적 현시에는 형식과 내용의 상응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데 현대 조각은 이러한 상응에서 벗어나 다른 맥락과 방식에서 그 조형적 이념을 드러낸다. 로댕 이후의 현대조각에서 어떤 형식이 굳이 특정한 내용을 더 이상 지시하지 않아도 된다. 형식 그 자체에 이미 내용이 충분히 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조각에서 인체 조각은, 비록 그 조형적 원리나 형태 그리고 그 특징에 있어서 전통적인 인체 조각과는 상당할 정도로 그 양상을 달리 하긴 하지만, 새로운 위상을 갖는다. 예컨대 브랑쿠지, 쟈코메티, 헨리 무어 등의 작업은 이전의 전통과는 또 다른 지평에서 인체 조각의 가능성을 펼쳐낸다.

  헨리 무어는 현대 조각에서 조각가의 작업 태도와 조각의 본질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각가는 형태를,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공간을 점유하는 것으로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포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말하자면, 그는 이른바 자신의 손 안에 그 견고한 형태를 움켜쥔다. 크기에 상관없이 손 안에 물체를 쥐고 있을 때처럼 그것을 생각한다. 그는 머리 속에서 모든 주변 그 자체로부터 하나의 복합적인 형태를 시각화한다. 조각가는 물체의 한 면을 보고 있는 동안에 그 이면의 생김새까지 알아야 한다. 또한 조각가는 물체의 중력의 중심, 매스, 그리고 중량과 자신을 동일화한다. 뿐만 아니라 조각가는 그 볼륨을, 형태를 위해 공중에 대신 들어선 공간으로서 인식한다.” 헨리 무어의 이러한 언급은 전통적 인체 조각과는 달리 현대 조각에서 인체가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하는지를 요약적으로 설명해준다. 모더니즘 이후의 조각, 그러니까 1960년대 이후의 현대 조각은 재료의 미학적 혁명성과 더불어 보다 넓은 조형적 가능성의 지평에서 전개된다. 그리고 인체는 이러한 현대조각의 급격한 조형적 변화를 근원적 의미에서 생각하게 하는 요소이다.

  현대 조각에서 인체는 중요한 주제이자 대상으로 회귀한다. 물론 이러한 회귀는 다시 전통적인 인체 조각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체 조각에서 현대조각의 징후적인 특징을 감지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포착되는 회귀이다. 이번 <조각적 전회>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윤석남, 안재홍, 권대훈, 김홍석)들은 이러한 회귀를 직감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물론 작가들의 작업에 드러난 조형언어는 재료뿐만 아니라 기법이나 추구하는 조형성을 고려할 때 상당할 정도로 다르다. 그러기에 여기서 그 공통점을 간단히 언급하는 것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네 명의 작가들을 "조각적 전회"라는 제목이 부여된 이번 전시에 한 것은 그들의 작업이 현대조각의 가능성을 특별히 인체라는 관점에서 전환적으로 생각해보는데 의미있는 조형적 단초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윤석남은 지난 30여 년간 여성주의뿐만 아니라 자연과 생태의 문제를 특유의 조형성으로 다루어 온 작가이다. 윤석남은 한국의 고유한 전통적 정서와 여성주의를 교차시켜 섬세하고 미묘한 감성적 서사성을 재현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에서 여성은 자연이고 남성은 문화라는 고정관념은 사라진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태도가 반영된 작품들은 감상자에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이야기가 어떠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는 예술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감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작가의 조형적 능력에 기인한 것이리라. 윤석남은 삶을 예술의 관점에서 보고, 그 삶에 상응하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풀어낸다. 안재홍 작가는 구리선, 동파이프 등을 재료로 인체를 조각하는 작가이다. 그의 인체 조각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드로잉적인 선이 강조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동파이프 작품에는 대나무에서 볼 수 있는 마디의 흔적을 뚜렷하게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선이 만들어가는 인체이다. 선으로 구성된 안제홍의 인체 조각은 작품 제목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듯이 자아를 탐구하는 내면적 성찰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회화는 평면적이고 조각은 입체적이다. 그런데 양자를 매개하는 그러한 작업도 가능할까? 이러한 물음과 관련해 볼 때, 권대훈은 흥미로운 작업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직관적으로 볼 때, 캔버스에 그려진 인체가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회화적 순간이 조각적 순간으로 변용되는 것이다. 여기서 '순간'이 조형적으로 표상되는 것과 더불어 우리의 몸이 겪는 삶의 편린들이 집약되고 축적된다. 김홍석은 대리석을 재료로 인체를 조각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업은 미메시스(mimesis)적이다. 라이프 캐스팅을 적용한 작품은 인체의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인체의 본래적 특성을 드러내는 미메시스를 보여준다. 통일되고 조화로운 고전미를 재현하는 듯한 조각이라는 인상을 처음에 받을 수도 있지만,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인체의 즉물성과 그것에서 환기되는 분위기로 인해 조각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의 조형적 과정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오늘의 현대 조각이 인체 조각의 관점에서 어떠한 조형적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이 물음은 궁극적으로 조각의 문화에 대한 물음에 맞닿아 있다. 전시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들의 작업은 이러한 물음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작가들은 전통적인 인체 조각의 미학을 간단히 배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대조각에서 환기될 수 있는 인체조각 힘을 저마다의 고유하면서도 단단한 조형미학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각각의 특별한 감상의 방식으로 "조각적 전회"와 연관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조각적 전회”란 단지 새롭고, 독창적이고 참신한 기법이나 형태가 제시되는 곳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관객이 찾아가고 만들어가고 열어가는 곳에서 비롯된다. 이번 전시가 조각의 힘과 그 문화를 경험하고 지금 이곳의 삶과 현실을 또 다른 예술의 지평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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