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전 준 조각전
전시기간: 2014.05.02 - 2014.06.15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전 준
전시내용:
전준 전시회에 부쳐
소멸되지 않는 “생명의 형상(形象)”을 찾는 전준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전준(全晙)이 5월에 있을 모란미술관 전시를 준비한다하여 오랜만에 그의 작업장을 찾았다. 작업실이 작지도 않은데 발 디딜 틈없이 철조, 목조, 석조, 평면의 한지(韓紙) 작업에 이르기까지 실로 엄청난 양의 작품들이 위아래층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일견 작품의 형식이 너무나 다양하고 그 양 또한 너무도 방대하여 놀라기도 했지만, 그가 1980년 미국에서 귀국한 이래 30년 넘게 추구해온 것은 ‘소리’라는 주제 하나이다. 그는 철, 돌, 나무, 스테인레스, 철사, 오석, 대리석 등등 여러 가지 재료를 통해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을 말해주는 탄생의 소리, 생명의 소리, 삶의 소리 등을 추상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전준이 그토록 다양한 재료를 작품에 투입한 것은 '소리'의 조형성을 다각도로 찾기 위한 작가의 투철한 탐구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각종 재료를 다룰 줄 아는 작가의 기량과 역량이 한껏 빛을 발하게 된다. 이러한 장인적인 역량과 작가의 창조성이 같이 호흡하면서 여러 재료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조형성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는 미리 의도했던 바와 달리, 창작에 임할 때 비로소 발생되는 우연적인 산물까지도 창작의 울타리 안에 흡수하여 인간 마음안에 이미 인지되어있는 기존의 형상과는 다른, 선험적(先驗的)인 아주 독특한 조형성을 산출해냈다. 인간의 삶이 그렇듯이, 그가 추구하는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도 결국 필연과 우연히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준이 거의 일생을 거쳐 '소리'라는 주제로 추상작업에 매달려왔지만 그가 처음부터 추상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작업장에는 초기작에 해당되는 테라코타로 된 소품 '젊은 여인의 두상'을 비롯한 인물상들을 볼 수 있어 그가 초기에는 구상에 몰두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70년대 초기에 제작한 '젊은 여인의 두상'은 슬픔을 머금은 애잔한 표정이 얼굴에 짙게 깔려 있어 보는 이의 눈길을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대단한 수작이다. 그러나 전준은 구상(具象)에 머물지 않고 추상(抽象)세계, 그것도 극단적이고 철저한 추상성을 추구하는 길로 돌진-그의 성격처럼 했다.
1968년에 제작된 철용접 작품인 '통격의 장(場)'은 추상세계에 들어서는 그의 길을 굵직하게 자리매김해주고 있다. 처참한 모습을 보이는 파괴된 잔재의 무기와 같은 형태는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심한 충격을 주고 있다. 작가는 이렇듯 강력한 표현력으로 전쟁의 비참함과 공포감, 전쟁을 겪는 사람들의 절규와 그 고통의 신음소리를 형상화했다. 특히 그는 철재의 본연의 성분까지 드러나도록 파괴하여 철이라는 물질자체의 특성까지도 노출시켜, 전쟁의 처참한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했다. 그래서 더 울림이 강하다.
전준은 격정과 폭발적인 표현력을 보여주는 이런 유형의 작품세계를 거친 후, 재료도 철재에서 동판으로 바꾸어 침착한 관조(觀照)를 요구하는 작품들로 나아갔다. 1986년작인 '소리’주제의 동판용접작품 시리즈는 얇은 두께의 평면 동판으로 된 대작들이다. 작품을 보면, 요철은 없으나 거친 표면처리를 보이는 평면성과 평면 정가운데에 작은 구멍들이 가지런히 뚫려 있는 모습을 보인다. 작품은 무(無)에서 생성되어가는 생명체의 힘, 에너지, 긴장감이 고요함속에서 응축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작품을 통해 아마도 작가는 창조되기 이전의 정중동(靜中動)의 그 무언(無言)의 소리를 나타내고자 한 듯하다. 또한 작품은 작게 뚫린 구멍으로 야기되는 투시적인 효과와 더불어 보는 이를 명상적인 감상의 세계로 이끈다. 앞서 ‘통격의 장'과 같은 작품에서 철의 특성이 너무도 잘 과시된 것에서 보듯, 이 동판작품에서도 동(銅)이라는 재료의 성격이 작가가 의도하는 작품의 주제와 너무도 잘 일치하고 있다. 전준은 작품의 성격에 따라 재료를 선택하고 또 재료가 갖는 물질성과 특성을 거기에 맞추어 조절해가는 능력이 아주 뛰어난 작가이다.
그가 철, 동판, 돌, 철사, 대리석 등등 여러 재료들을 섭렵하여 ‘소리’라는 주제를 표현한 것은 아마도 각각의 재료가 갖는 특성을 살려 그 주제를 다변화해서 보여주고자 한 의도로 파악된다. 전준의 작품들은 재료라는 물질성분에 대한 탐구의욕이 강하게 과시되어있는데, 이는 무엇보다 창작에 있어 재료파악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후에 제작된 전준의 석재작품들은 무형의 덩어리로 나오기도 하고 철이나 동판의 거친 마무리하고는 달리 곱게 다루어진 방향으로 전개된다. 앞서 철이나 동판하고는 전혀 다르게 전준의 석재작품에서는 인위적인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1991년에 한 설치작품인 오석으로 제작된 '소리-밀알’시리즈는 태초부터 벌판에 그냥 뒹굴며 인간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며 인간과 교응했던 돌들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무작위적인 형상과 배치를 보인다. 자갈을 연상시키는 듯한 형상으로 돌이 갖는 원초적인 자연성을 최대한 살린 작품이라 하겠다.
2005년도에 오석으로 제작된 '소리-탄생과 소멸'은 기하학적인 복수면의 입체작품으로 하나의 돌덩어리가 여덟 부분으로 분리되어 짜맞추어진 듯한 모습을 보인다. 무정형의 돌덩어리, 입체면의 단면이 만들어내는 예각, 자연스럽게 잘려진 것 같은 부분들이 만들어내는 틈새는 기이한 형상을 창출하면서 놀라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상상하기도 어렵고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독특한 조형성이 여기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준은 생명체의 탄생의 신음소리를 이렇게 형상화했다. 서서히 생명체를 이루어가는 태동의 몸짓, 보일까 말까 하는 미묘한 움직임, 태초의 그 움트는 생명의 소리를 단단하면서도 곱고 부드러운 오석이라는 재질의 특성을 이용하여 아주 섬세하게 형상화했다.
그 이후로 전준은 철이나 동판으로 된 양괴구조물에서 벗어나 선(線)을 기조로 한 입체구조물을 제작하여 ‘소리’주제의 다양한 폭을 과시한다. 2008년작 철용접의 입체구조물 '소리-우연과 필연사이’는 곡예하는 듯한 선의 흐름으로 생명의 환희, 그 활기찬 기운을 노래하는 듯한 기이한 추상형상을 산출하고 있다. 또한 2011년작 '소리-존재의 의미'는 스테인레스 철사를 이용하여 선의 흐름을 강조한 입체구조물이다. 이 작품은 지극히 가느다란 스테인레스 철사를 짧게 절단하여 서로 용접한 다면체의 입체형을 보여주면서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처럼 대지에 넘치는 밝고 명랑한 생명의 소리, 그 기쁨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작가는 기쁨에 넘치는 생명의 소리를, 이처럼 밝은 색깔의 가느다란 스테인레스 철사를 이용하여 형상화했다. 이 두 작품 모두는, 아직 세상적 욕망이 스며들지 않은 원초적인 환희의 세계, 그 순수한 정신적인 열락(悅樂)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철을 재료로 한 무거운 조각 작품임에도 무게의 중량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필자는 전준의 작품을 대략적으로나마 초기부터 훑어보았다. 전준은 작가생활 초반부터 ‘소리'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 재료에 맞춰 다양한 추상형상을 추구하였다. 전준이 의도한 바는 기존 형태에 대한 지각이 아닌, 순수한 새로운 형상의 창출이었다. 앞서의 작품 ‘통격의 장’만 보더라도, 무슨 의도된 형상이 아니라 폭격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철구조물 잔해가 그저 엉성하게 남아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철판을 계속 이리 저리 두들기고 서로 다른 상태로 만들고 용접하여 형상이 아닌 상태를 산출시키고자 노력한 결과라 한다. 작가는 처음부터 형상세계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할 새로운 형상의 탄생을 꿈꾼 것이다.
그 후 ‘소리’라는 주제아래 여러 유형의 작품이 전개되었지만, 그 근저에 흐르는 창의성은 인식된 기존의 형상세계를 벗어난, 지각(知覺)안된 선험적인 형상세계였다. 잡히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끈질긴 도전, 전준의 창작의 여정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전준의 미술이 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은 결국 파괴와 소멸이 없는 생명의 항구한 세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이 아닌 사색과 관조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전준이 나이 칠순을 넘기고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섰으나 아직 그의 탐구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남은 여생,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을 즐겁게 해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전시명: 전 준 조각전
전시기간: 2014.05.02 - 2014.06.15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전 준
전시내용:
전준 전시회에 부쳐
소멸되지 않는 “생명의 형상(形象)”을 찾는 전준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전준(全晙)이 5월에 있을 모란미술관 전시를 준비한다하여 오랜만에 그의 작업장을 찾았다. 작업실이 작지도 않은데 발 디딜 틈없이 철조, 목조, 석조, 평면의 한지(韓紙) 작업에 이르기까지 실로 엄청난 양의 작품들이 위아래층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일견 작품의 형식이 너무나 다양하고 그 양 또한 너무도 방대하여 놀라기도 했지만, 그가 1980년 미국에서 귀국한 이래 30년 넘게 추구해온 것은 ‘소리’라는 주제 하나이다. 그는 철, 돌, 나무, 스테인레스, 철사, 오석, 대리석 등등 여러 가지 재료를 통해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을 말해주는 탄생의 소리, 생명의 소리, 삶의 소리 등을 추상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전준이 그토록 다양한 재료를 작품에 투입한 것은 '소리'의 조형성을 다각도로 찾기 위한 작가의 투철한 탐구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각종 재료를 다룰 줄 아는 작가의 기량과 역량이 한껏 빛을 발하게 된다. 이러한 장인적인 역량과 작가의 창조성이 같이 호흡하면서 여러 재료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조형성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는 미리 의도했던 바와 달리, 창작에 임할 때 비로소 발생되는 우연적인 산물까지도 창작의 울타리 안에 흡수하여 인간 마음안에 이미 인지되어있는 기존의 형상과는 다른, 선험적(先驗的)인 아주 독특한 조형성을 산출해냈다. 인간의 삶이 그렇듯이, 그가 추구하는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도 결국 필연과 우연히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준이 거의 일생을 거쳐 '소리'라는 주제로 추상작업에 매달려왔지만 그가 처음부터 추상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작업장에는 초기작에 해당되는 테라코타로 된 소품 '젊은 여인의 두상'을 비롯한 인물상들을 볼 수 있어 그가 초기에는 구상에 몰두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70년대 초기에 제작한 '젊은 여인의 두상'은 슬픔을 머금은 애잔한 표정이 얼굴에 짙게 깔려 있어 보는 이의 눈길을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대단한 수작이다. 그러나 전준은 구상(具象)에 머물지 않고 추상(抽象)세계, 그것도 극단적이고 철저한 추상성을 추구하는 길로 돌진-그의 성격처럼 했다.
1968년에 제작된 철용접 작품인 '통격의 장(場)'은 추상세계에 들어서는 그의 길을 굵직하게 자리매김해주고 있다. 처참한 모습을 보이는 파괴된 잔재의 무기와 같은 형태는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심한 충격을 주고 있다. 작가는 이렇듯 강력한 표현력으로 전쟁의 비참함과 공포감, 전쟁을 겪는 사람들의 절규와 그 고통의 신음소리를 형상화했다. 특히 그는 철재의 본연의 성분까지 드러나도록 파괴하여 철이라는 물질자체의 특성까지도 노출시켜, 전쟁의 처참한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했다. 그래서 더 울림이 강하다.
전준은 격정과 폭발적인 표현력을 보여주는 이런 유형의 작품세계를 거친 후, 재료도 철재에서 동판으로 바꾸어 침착한 관조(觀照)를 요구하는 작품들로 나아갔다. 1986년작인 '소리’주제의 동판용접작품 시리즈는 얇은 두께의 평면 동판으로 된 대작들이다. 작품을 보면, 요철은 없으나 거친 표면처리를 보이는 평면성과 평면 정가운데에 작은 구멍들이 가지런히 뚫려 있는 모습을 보인다. 작품은 무(無)에서 생성되어가는 생명체의 힘, 에너지, 긴장감이 고요함속에서 응축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작품을 통해 아마도 작가는 창조되기 이전의 정중동(靜中動)의 그 무언(無言)의 소리를 나타내고자 한 듯하다. 또한 작품은 작게 뚫린 구멍으로 야기되는 투시적인 효과와 더불어 보는 이를 명상적인 감상의 세계로 이끈다. 앞서 ‘통격의 장'과 같은 작품에서 철의 특성이 너무도 잘 과시된 것에서 보듯, 이 동판작품에서도 동(銅)이라는 재료의 성격이 작가가 의도하는 작품의 주제와 너무도 잘 일치하고 있다. 전준은 작품의 성격에 따라 재료를 선택하고 또 재료가 갖는 물질성과 특성을 거기에 맞추어 조절해가는 능력이 아주 뛰어난 작가이다.
그가 철, 동판, 돌, 철사, 대리석 등등 여러 재료들을 섭렵하여 ‘소리’라는 주제를 표현한 것은 아마도 각각의 재료가 갖는 특성을 살려 그 주제를 다변화해서 보여주고자 한 의도로 파악된다. 전준의 작품들은 재료라는 물질성분에 대한 탐구의욕이 강하게 과시되어있는데, 이는 무엇보다 창작에 있어 재료파악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후에 제작된 전준의 석재작품들은 무형의 덩어리로 나오기도 하고 철이나 동판의 거친 마무리하고는 달리 곱게 다루어진 방향으로 전개된다. 앞서 철이나 동판하고는 전혀 다르게 전준의 석재작품에서는 인위적인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1991년에 한 설치작품인 오석으로 제작된 '소리-밀알’시리즈는 태초부터 벌판에 그냥 뒹굴며 인간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며 인간과 교응했던 돌들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무작위적인 형상과 배치를 보인다. 자갈을 연상시키는 듯한 형상으로 돌이 갖는 원초적인 자연성을 최대한 살린 작품이라 하겠다.
2005년도에 오석으로 제작된 '소리-탄생과 소멸'은 기하학적인 복수면의 입체작품으로 하나의 돌덩어리가 여덟 부분으로 분리되어 짜맞추어진 듯한 모습을 보인다. 무정형의 돌덩어리, 입체면의 단면이 만들어내는 예각, 자연스럽게 잘려진 것 같은 부분들이 만들어내는 틈새는 기이한 형상을 창출하면서 놀라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상상하기도 어렵고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독특한 조형성이 여기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준은 생명체의 탄생의 신음소리를 이렇게 형상화했다. 서서히 생명체를 이루어가는 태동의 몸짓, 보일까 말까 하는 미묘한 움직임, 태초의 그 움트는 생명의 소리를 단단하면서도 곱고 부드러운 오석이라는 재질의 특성을 이용하여 아주 섬세하게 형상화했다.
그 이후로 전준은 철이나 동판으로 된 양괴구조물에서 벗어나 선(線)을 기조로 한 입체구조물을 제작하여 ‘소리’주제의 다양한 폭을 과시한다. 2008년작 철용접의 입체구조물 '소리-우연과 필연사이’는 곡예하는 듯한 선의 흐름으로 생명의 환희, 그 활기찬 기운을 노래하는 듯한 기이한 추상형상을 산출하고 있다. 또한 2011년작 '소리-존재의 의미'는 스테인레스 철사를 이용하여 선의 흐름을 강조한 입체구조물이다. 이 작품은 지극히 가느다란 스테인레스 철사를 짧게 절단하여 서로 용접한 다면체의 입체형을 보여주면서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처럼 대지에 넘치는 밝고 명랑한 생명의 소리, 그 기쁨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작가는 기쁨에 넘치는 생명의 소리를, 이처럼 밝은 색깔의 가느다란 스테인레스 철사를 이용하여 형상화했다. 이 두 작품 모두는, 아직 세상적 욕망이 스며들지 않은 원초적인 환희의 세계, 그 순수한 정신적인 열락(悅樂)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철을 재료로 한 무거운 조각 작품임에도 무게의 중량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필자는 전준의 작품을 대략적으로나마 초기부터 훑어보았다. 전준은 작가생활 초반부터 ‘소리'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 재료에 맞춰 다양한 추상형상을 추구하였다. 전준이 의도한 바는 기존 형태에 대한 지각이 아닌, 순수한 새로운 형상의 창출이었다. 앞서의 작품 ‘통격의 장’만 보더라도, 무슨 의도된 형상이 아니라 폭격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철구조물 잔해가 그저 엉성하게 남아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철판을 계속 이리 저리 두들기고 서로 다른 상태로 만들고 용접하여 형상이 아닌 상태를 산출시키고자 노력한 결과라 한다. 작가는 처음부터 형상세계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할 새로운 형상의 탄생을 꿈꾼 것이다.
그 후 ‘소리’라는 주제아래 여러 유형의 작품이 전개되었지만, 그 근저에 흐르는 창의성은 인식된 기존의 형상세계를 벗어난, 지각(知覺)안된 선험적인 형상세계였다. 잡히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끈질긴 도전, 전준의 창작의 여정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전준의 미술이 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은 결국 파괴와 소멸이 없는 생명의 항구한 세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이 아닌 사색과 관조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전준이 나이 칠순을 넘기고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섰으나 아직 그의 탐구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남은 여생,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을 즐겁게 해나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