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유연한 시선
전시기간: 2015.06.16 - 2015.07.20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국대호, 김민호, 김홍식, 엄상연
전시내용:
예술적 시선으로 재현된 문화의 풍경
임성훈 (미술비평, 미학 Ph. D.)
이 세상은 '보는 것' 을 통해 드러난다. 보는 것이 없다면, 세상의 풍경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보면서 세상을 만난다. 물론 여기서 본다는 것은 단지 눈의 생리적 자극에 따른 감각적 반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는 것이란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문화적 차원에서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는 것' 과 관련된 단어는 많다. 이번 전시 <유연한 시선>은 특히 “시선(視線)”에 주목하고 있다. 시선이란 무엇인가? 시선은 시각과 다르다. 시각(視角)이 사물의 객관적인 '봄' 에 중점을 둔 것이라면, 이에 반해 시선은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봄'에 밀접히 연관된 것이다. 시선은 무엇보다 세상에 눈길을 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선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과 현실을 응시하는 주관적인 마음이다. 시선은 문화의 눈이다. 이러한 시선에는 인간의 욕망, 지식, 의지, 자유, 관심, 희망 등이 복합적이며 다층적으로 드러나 있다.
시선은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다. 눈길을 주는 것은 곧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선은 관심에 대한 문화적 기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시선, 달리 말해 관심이 있다. 그러나 예술적 시선 혹은 관심은 여타의 관심과는 구분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무관심성을 표방했던 임마누엘 칸트의 미학을 떠올려보자. 칸트는 미와 예술에 대한 순수한 판단이란 지식[인식], 도덕[윤리], 감각적 선호 등에 따른 관심에서 벗어나 상상력의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직 미와 예술에 대한 관심, 달리 말하자면 예술적 시선을 가질 때, 비로소 미적 경험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무관심성을 적용한다면, 모든 시선, 즉 관심이 다 예술적 시선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타의 관심에 얽매이지 않은 미적 관심만이 예술적 시선이기 때문이다. 미적 관심은 대상의 예술적 형태를 관조하고, 또한 이를 통해 대상을 미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한편, 예술가의 시선은 미적 관심을 수반하고, 상상력과 창조성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작품이란 작가의 시선이 조형적으로 표현된 결과물이다. 작품 감상에서는 작가의 시선만이 아니라 관람자의 시선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 작품은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시선과 관람자의 시선은 예술작품에서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모순과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술적 시선은 확정되거나 규정된 형식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과 상응하면서 동시에 어긋나기도 하는 형식의 가능성을 불러온다.이러한 교차적인 예술적 시선에서 여기에 예술을 통한 소통의 새로운 지평이 펼쳐진다.
예술적 시선은 소통의 문화를 재현하는 자극제이며,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수많은 일상의 관계들을 다양한 문화의 풍경으로 펼쳐낸다. 예술적 시선은 논리적이고 규범적으로 구획된 이분법을 와해시킨다. 현실과 이상, 진리와 가상, 안과 밖, 나와 너, 질서와 무질서 등과 같은 이항대립을 넘어 유연한 예술적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이 세상은 이전보다는 더 자유롭고 살만한 곳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 <유연한 시선>에 참여한 네 명 작가들은 세상을 향한 자신들의 예술적 시선을 다양한 조형성으로 재현하고 있다.
재료와 기법 그리고 구성에서 사뭇 다른 형식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작품들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모방적 이미지와 규범적인 언어로는 결코 표상될 없는 문화적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대호는 보이는 것의 이미지 너머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지표를 흐릿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김민호는 어떤 공간과 시간에 대한 마음의 흔적을 중첩되고 연결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김홍식은 ‘봄’과 ‘앎’의 문제를 예술적 시선을 통해 문화학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엄상연은 기억의 파편들을 예술적 시선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번 <유연한 시선>의 작품들을 보면서 “예술은 볼 수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는 파울 클레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참여 작가들이 현실의 시선에서 놓쳐버린 그 무엇을 예술적 시선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술적 시선이다. 작품들에서 나타난 흐릿하고, 겹치고, 왜곡되고, 조각난 이미지는 예술적 시선이 만들어낸 표상, 달리 말해 문화의 풍경이다.
<유연한 시선>展은 문화의 풍경이 어떻게 예술적 시선으로 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네 명의 참여 작가들이 보여주는 예술적 시선은 예술이 만들어가는 소통의 지평을 향해 있다. 이번 전시가 이 이 세상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장(場)이 되었으면 한다.
전시명: 유연한 시선
전시기간: 2015.06.16 - 2015.07.20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국대호, 김민호, 김홍식, 엄상연
전시내용:
예술적 시선으로 재현된 문화의 풍경
임성훈 (미술비평, 미학 Ph. D.)
이 세상은 '보는 것' 을 통해 드러난다. 보는 것이 없다면, 세상의 풍경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보면서 세상을 만난다. 물론 여기서 본다는 것은 단지 눈의 생리적 자극에 따른 감각적 반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는 것이란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문화적 차원에서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는 것' 과 관련된 단어는 많다. 이번 전시 <유연한 시선>은 특히 “시선(視線)”에 주목하고 있다. 시선이란 무엇인가? 시선은 시각과 다르다. 시각(視角)이 사물의 객관적인 '봄' 에 중점을 둔 것이라면, 이에 반해 시선은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봄'에 밀접히 연관된 것이다. 시선은 무엇보다 세상에 눈길을 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선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과 현실을 응시하는 주관적인 마음이다. 시선은 문화의 눈이다. 이러한 시선에는 인간의 욕망, 지식, 의지, 자유, 관심, 희망 등이 복합적이며 다층적으로 드러나 있다.
시선은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다. 눈길을 주는 것은 곧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선은 관심에 대한 문화적 기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시선, 달리 말해 관심이 있다. 그러나 예술적 시선 혹은 관심은 여타의 관심과는 구분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무관심성을 표방했던 임마누엘 칸트의 미학을 떠올려보자. 칸트는 미와 예술에 대한 순수한 판단이란 지식[인식], 도덕[윤리], 감각적 선호 등에 따른 관심에서 벗어나 상상력의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직 미와 예술에 대한 관심, 달리 말하자면 예술적 시선을 가질 때, 비로소 미적 경험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무관심성을 적용한다면, 모든 시선, 즉 관심이 다 예술적 시선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타의 관심에 얽매이지 않은 미적 관심만이 예술적 시선이기 때문이다. 미적 관심은 대상의 예술적 형태를 관조하고, 또한 이를 통해 대상을 미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한편, 예술가의 시선은 미적 관심을 수반하고, 상상력과 창조성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작품이란 작가의 시선이 조형적으로 표현된 결과물이다. 작품 감상에서는 작가의 시선만이 아니라 관람자의 시선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 작품은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시선과 관람자의 시선은 예술작품에서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모순과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술적 시선은 확정되거나 규정된 형식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과 상응하면서 동시에 어긋나기도 하는 형식의 가능성을 불러온다.이러한 교차적인 예술적 시선에서 여기에 예술을 통한 소통의 새로운 지평이 펼쳐진다.
예술적 시선은 소통의 문화를 재현하는 자극제이며,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수많은 일상의 관계들을 다양한 문화의 풍경으로 펼쳐낸다. 예술적 시선은 논리적이고 규범적으로 구획된 이분법을 와해시킨다. 현실과 이상, 진리와 가상, 안과 밖, 나와 너, 질서와 무질서 등과 같은 이항대립을 넘어 유연한 예술적 시선으로 바라볼 때, 이 세상은 이전보다는 더 자유롭고 살만한 곳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 <유연한 시선>에 참여한 네 명 작가들은 세상을 향한 자신들의 예술적 시선을 다양한 조형성으로 재현하고 있다.
재료와 기법 그리고 구성에서 사뭇 다른 형식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작품들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모방적 이미지와 규범적인 언어로는 결코 표상될 없는 문화적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대호는 보이는 것의 이미지 너머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지표를 흐릿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김민호는 어떤 공간과 시간에 대한 마음의 흔적을 중첩되고 연결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김홍식은 ‘봄’과 ‘앎’의 문제를 예술적 시선을 통해 문화학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엄상연은 기억의 파편들을 예술적 시선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번 <유연한 시선>의 작품들을 보면서 “예술은 볼 수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는 파울 클레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참여 작가들이 현실의 시선에서 놓쳐버린 그 무엇을 예술적 시선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술적 시선이다. 작품들에서 나타난 흐릿하고, 겹치고, 왜곡되고, 조각난 이미지는 예술적 시선이 만들어낸 표상, 달리 말해 문화의 풍경이다.
<유연한 시선>展은 문화의 풍경이 어떻게 예술적 시선으로 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네 명의 참여 작가들이 보여주는 예술적 시선은 예술이 만들어가는 소통의 지평을 향해 있다. 이번 전시가 이 이 세상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장(場)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