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시

자연을 만나다 - 이재효의 자연미학

전시명: 자연을 만나다 - 이재효의 자연미학

전시기간: 2018.09.14 - 2018.11.25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이재효

전시내용:

이재효의 조각에 나타난 자연미학


임성훈 (미학, 미술비평)


  자연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간단히 답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해 보이는 것은 자연이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이해되는 것은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파악된다는 점이다. 자연은 인간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일 수 없다. 한 예로, 우리의 몸을 보자. 우리의 몸 또한 자연이 아닌가. 그런데 몸은 생물학적 자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문화적 자연이기도 하다. 우리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문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행위는 문화적이다. 자연의 몸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문화의 몸으로 변용된다. 오늘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자연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니고, 더군다나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고 상정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자연은 더 이상 단순한 대상이나 객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리고 문화와 밀접히 연관되면서 존재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문화는 다름 아닌 예술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문화적 활동으로서의 예술에서 자연은 중요한 주제가 된다. 

  근대 미학은 예술미와 자연미를 구분하여 논의하였다. 예컨대, 칸트는 자연미를 중심으로 자신의 미학을 전개했고, 헤겔은 예술미에 우위성을 두었다. 현대미술, 특히 196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은 예술미와 자연미의 구분에서 벗어나 예술로서의 자연 또는 자연으로서의 예술을 본격적으로 구현하기 시작한다. 대지미술, 생태미술, 자연미술 등은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대미술이다. 자연의 미학을 강조하는 독일 미학자 마틴 젤(Martin Seel)은 자연이 인간에게 세 가지 미적 차원, 곧 관조, 상응 그리고 상상력을 제공하는 장소라고 말한다. 젤에 따르면, 자연은 관조의 장소이기도 하거니와 자연과 인간의 삶의 상응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연은 상상력의 장소이다.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자연은 예술에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예술과 자연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뛰어난 자연 대상이나 풍경을 보면서 흔히 예술작품과 같다고 감탄하듯 말하지 않는가? 자연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자연이 된다. <시간 풍경>이란 작업으로 유명한 생태미술 작가 앨런 손피스트(Alan Sonfist)는 자연 현상들이 곧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실상 손피스트의 작업 <시간 풍경>은 자연을 변경하거나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간의 변화에 따른 자연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달리 말해, 자연에 우리의 눈길을 돌리게 만드는 예술, 그러한 예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손피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자연이 곧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에서 예술과 자연은 다양한 조형적 변용을 통해 언제나 새롭게 만나고 있다. 이재효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자연을 만나고 자연과 함께 작업을 해왔고, 또한 이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할 만한 예술적 성과도 적지 않게 이루어낸 작가이다. 이번 <자연을 만나다 - 이재효의 자연미학은 그의 작업의 원천이 자연임을 드러내고, 그의 조형적 작업에서 자연이 어떻게 조형적으로 변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다. 이재효는 자연을 만나면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을 탐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 사이에 함축된 의미의 양상들을 읽어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는 자연에서 예술적 은유와 상징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한다. 자연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변화를 만들어낸다. 나무, 돌, 나뭇잎, 나뭇가지 등과 같은 자연의 재료는 작가의 조형적 작업의 과정을 거쳐 또 다른 자연으로 제시된다. 자연이 예술로 표현될 때 드러나는 자연미학은 그의 작업의 본질을 이룬다. 

  이런 점에서 이재효는 작품을 창조하는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자연에서 예술을 읽어내고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투사하는 작업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술적 상상력의 보고인 자연은 그의 조형적 의지에 상응한다.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들은 자연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감상자는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흔적의 미학을 자연스럽게 체험한다. 이재효의 작품은 원에서 출발한다. 원은 모든 자연의 형태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문화에서도 원초적인 바탕이 되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이재효의 작업은 플라톤적이다. 자연의 재료에 대한 그의 조형적 반응은 결국 원형적인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드로잉에서부터 자연의 산물을 조형적으로 재현하는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이재효의 작업은 예술로 구현된 자연의 변용을 다층적으로 제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단순히 자연의 재료를 활용하여 예술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 양상을 다양한 조형적 과정을 통해 감상자에게 자연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과 자연이 만나는 곳은 상상력의 문화적 힘이 극대화되고 은유화되는 장소가 된다. 이재효의 자연미학은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인간의 삶에 대한 시(詩學)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은 문화의 저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현전하고 있는 생명이다. 이재효의 조각은 자연 그 자체의 복원의 힘과 치유의 힘을 온전히 드러낸다. 그러기에 작품들 하나하나가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조형적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삼고 있는 작품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자연과 예술, 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조형적 긴장을 제대로 이끌어낸 작품을 볼 기회란 실상 생각만큼 그리 많지 않다. 이재효의 조각은 마치 자연이 거추장스러운 예술의 옷을 입고 있는 듯한 작품들과는 그 조형적 결을 확연하게 달리한다. 형식적으로만 볼 경우 그의 조각은 자연의 재료를 잘 활용하고, 이를 완성도 있는 기법으로 표현해 낸 오브제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길이 이러한 오브제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그의 조각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조각에 깃든 자연의 숨결을 다양한 방식으로 느끼는 것이다. 자연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와 예술 작업을 하는 작가의 태도는 분리되지 않는다. 이재효의 작업은 자연에서 예술을 만나고, 다시 예술에서 자연을 만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그의 조각을 특징짓는 자연미학이다. 이번 전시는 이재효의 자연미학을 다양한 조형적 지평에 서서 총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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