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박희선 조각전 朴喜善影刻展
전시기간: 1994.11.05 - 1994.11.30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박희선
전시내용:
박희선의 작품에 나타난 역사의식
최태만(미술평론가)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카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의 한국이 처해 있는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한국사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 요청된다. 역사에 대한 인식은 비단 역사가의 영역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처해 있는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자 한다면 예술가라고 역사와 전혀 무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작품은 순수하고 독립적이며, 자족적, 무관심적인 미적 대상일 뿐만 아니라 한 시대와 사회의 기복이기도 하다. 또한 예술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자기반성적 논평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함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예술이든 역사든 다같이 기본적으로는 가치문제에 의거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인식론적 유사성을 지닌다. 가치문제에 관한 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관점, 즉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료(史料)에 바탕한 올바른 사관(史觀)을 요청한다. 사관의 형성은 과거에 대한 정확한 재구성 아래 가능하며 이른바 총체성이란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역사인식의 평면성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역사에 대한 직관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역사 또한 예술적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와 예술은 일정한 상보적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예술은 역사자료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역사는 예술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역사적 사실이나 교훈을 작품 속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서구에서 역사화란 장르를 만들어내었는데 사실 서구 미술사 속에서 역사화란 언제나 영웅적, 규범적 성격을 띠고 나타났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원인과 결과는 물론 역사의 주체를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부재했었다. 그나마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화의 경험이없기 때문에 역사와 예술의 결합이란 명제가 다소 생소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민중미술진영의 일부 작가들을 통해 관심이 고조되고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전'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역사적 주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비교적 최근에 활발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결코 낯선 것은 아닐 것이다. 회화와는 달리 조각의 경우 단일한 입체 속에 역사적 사실과 그것으로부터 발원하는 상상력을 형상화해 내어야 하므로 역사를 담는다는 것이 결코 용이하지도 단순한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일관되게 역사의식에 기초하여 자신의 작업을 이끌어 온 박희선의 작업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희선은 ‘마루조각회’나 ‘한국성-그 변용과 가늠전'과 같은 단체활동에서의 적극적인 활동과 한국적 미의식의 발굴과 그에 합당하는 형식의 창출이라는 주제의 일관성에 입각한 작업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바와 같이 현대조각의 무수한 ‘현대적 조류와 관계없이 자신의 조형언어를 치밀하게 다듬어 온 조작가이다. 그렇다고 그가 보수적이거나 현대성과는 전혀 무관한 작가라고 말하려는 것은 이니다. 오히려 그는 현대성이란 용어로 위장된 정체불명의 조작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위조된 현대성을 거부했을 뿐 그의 관심은 언제나 '지금, 여기’라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차적인 특징은 그의 예사롭지 않은 역사 의식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격동과 변혁의 한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즉 봉건체제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민족적 저항운동으로 나타난 갑오농민전쟁으로부터 개항과 식민지배, 3.1독립운동과 외병전쟁, 독립과 더불어 상속된 민족비극으로서의 분단, 문단모순에 의해 야기될 6.25와 남한에서의 독재와 이에 항거한 민주운동으로서의 4.19. 5.16군사 쿠데타와 개발독재, 5.18과 유월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사는 그야말로 격동과 변혁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러한 역동적 현실을 조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특히 역사적사실을 단순히 기술(記述)하는 수준에 머무를 경우 그것은 필연적으로 기념조각류의 관학주의에 함몰되고 말 것이며,또한 그것을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역사는 현실을 떠나 관념의 언저리를 떠도는 유령이 되고 만다.그런 만큼 역사의 예술적 구현이란 명제의 실천은 역사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그것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해낼 수 있는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건대, 박희선은 역사의 해석과 표현이란 과제를 실천함에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한계와 자기 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수용하면서 옹골차게자기세계를 다져온 조각가임에 분명하다. 그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을 통한 작품의 총체성을 이룩하기 위해 특정한 사건에만 얽매이지 않고 한국사를 관류하고 있는 역사적 본질이 무엇인가를 천착하고 있으며, 그것을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사실적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매우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형태를 빌어 표현하고있다. 예컨대 그의 작품에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씨알의 형태는 바로 우리민족의 생명력을 암시하는 것이며 그것이 벌리고 있는 입은 항거(외침)와 구원(기원의 소리)라는 이중적 내용을 담고 있다. 게다가 그 씨알은 항상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이런점이 불의에는 의연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았지만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으려 했던 우리 조상들의 정신의 풍요로움에 대한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작품이 지닌 진정한 매력이자 장점이 바로 이러한 메타피에 있다. 그의 작품에서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는 손을 옆으로 뻗고 있는 인물의 정면성은 만세를 부르고 있는 우리 조상들의 한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만민평등사상과 포용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것은 한복과 기와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선(線)이자 모나지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우리의 산하(山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너그럽고 넉넉한 형태이다.
최근 그의 작품은 정면성을 벗어나 삼차원적 입체감이 더욱 두드러지면서 또한 상징성이 더욱 강화되는 경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입체감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은 수평적 구조로부터 수직적 구조로 작품의 형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과 작품의 규모가 커지면서 반침대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놓이는, 그림으로써 사방을 돌면서 작품을 보아야 하는 기념비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수평적 구조를 지닌 덩어리는 한반도를 상징한다. 그것을 파고들고 있는 네 개의 수직구조가 전통적인 사방위에 대해 연상하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이 네 개의 기둥이 모두 도끼의 형상으로 한반도를 상징하는 덩어리 속을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역사의식과 또 한 번 만나게 된다. 즉 그는 분단현실의 모순을 단순히 민족내적인 맥락에서 파악하지 않고 이것이 개항으로부터 지금까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대강국의 실체에 대해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도끼는 폭력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지만 물리적 폭력을 넘어선 거대한 힘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분단시대의 남북한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을 보면 한반도에 미치는 주변 사대강국의 영향력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즉 남한이든 북한이든 그 체제의 다름을 떠나 주변강국의 영향권 내에 속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개항 이후 거의 100년여간에 걸친 한국 근대사의 한 면모를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외양이 살상무기에 의해 찍혀 있는, 그리고 네 개의 도끼자루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혹시 그가 사대강국에 의한 관심과 침탈을 무력하게 수용하거나 내 혹에 의한 힘의 균형이 항구적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비관적 역사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작품에 드러나고 일면에 불과하나, 그의 작품에서 낙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역사관을 우리는 <통일>이나 <남북>에서 찾을 수 있다. <민들레 - 남과북>이란 작품이 민통선 지역 답사과정에서 이 위기의 땅에 피어오르는 민들레를 발견하고 그것에서 민초(民草)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처럼, 그의 작품 속에는 미래에의 긍정과 낙관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처럼 네 자루의 도끼에 의해 침탈 당하고 있는 <한반도 역시 상처입은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그것을 깨부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임을 구(球)의 형태를 지닌 중심부(생명의 지속과 성장을 암시하는 씨알과 그 몸통부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폭력의 공격 앞에서도 스러지지 않고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그림으로써 머리 부위의 입에서 볼 수 있듯이 모순과 질곡에 대해 저항했던 한국근대사의 격동과 변혁의 생생한 역사를 이토록 긴장감넘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외세에의 저항이 비단 과거지사로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그는 이 작품들이 지닌 조형적 긴장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의 작품은 역사에 대한 위기의식의 산물임과 동시에 위기 앞에 무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역사의 상처를 단지 드러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는 단단한 역사인식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또한 과거의 아픔을 상속받고 있는 현실의 고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의 현실이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그의 작품은 매우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명: 박희선 조각전 朴喜善影刻展
전시기간: 1994.11.05 - 1994.11.30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박희선
전시내용:
박희선의 작품에 나타난 역사의식
최태만(미술평론가)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카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의 한국이 처해 있는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한국사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 요청된다. 역사에 대한 인식은 비단 역사가의 영역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처해 있는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자 한다면 예술가라고 역사와 전혀 무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작품은 순수하고 독립적이며, 자족적, 무관심적인 미적 대상일 뿐만 아니라 한 시대와 사회의 기복이기도 하다. 또한 예술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자기반성적 논평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함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예술이든 역사든 다같이 기본적으로는 가치문제에 의거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인식론적 유사성을 지닌다. 가치문제에 관한 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관점, 즉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료(史料)에 바탕한 올바른 사관(史觀)을 요청한다. 사관의 형성은 과거에 대한 정확한 재구성 아래 가능하며 이른바 총체성이란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역사인식의 평면성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역사에 대한 직관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역사 또한 예술적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와 예술은 일정한 상보적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예술은 역사자료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역사는 예술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역사적 사실이나 교훈을 작품 속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서구에서 역사화란 장르를 만들어내었는데 사실 서구 미술사 속에서 역사화란 언제나 영웅적, 규범적 성격을 띠고 나타났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원인과 결과는 물론 역사의 주체를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부재했었다. 그나마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화의 경험이없기 때문에 역사와 예술의 결합이란 명제가 다소 생소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민중미술진영의 일부 작가들을 통해 관심이 고조되고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전'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역사적 주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비교적 최근에 활발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이 결코 낯선 것은 아닐 것이다. 회화와는 달리 조각의 경우 단일한 입체 속에 역사적 사실과 그것으로부터 발원하는 상상력을 형상화해 내어야 하므로 역사를 담는다는 것이 결코 용이하지도 단순한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일관되게 역사의식에 기초하여 자신의 작업을 이끌어 온 박희선의 작업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희선은 ‘마루조각회’나 ‘한국성-그 변용과 가늠전'과 같은 단체활동에서의 적극적인 활동과 한국적 미의식의 발굴과 그에 합당하는 형식의 창출이라는 주제의 일관성에 입각한 작업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 바와 같이 현대조각의 무수한 ‘현대적 조류와 관계없이 자신의 조형언어를 치밀하게 다듬어 온 조작가이다. 그렇다고 그가 보수적이거나 현대성과는 전혀 무관한 작가라고 말하려는 것은 이니다. 오히려 그는 현대성이란 용어로 위장된 정체불명의 조작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위조된 현대성을 거부했을 뿐 그의 관심은 언제나 '지금, 여기’라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차적인 특징은 그의 예사롭지 않은 역사 의식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격동과 변혁의 한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즉 봉건체제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민족적 저항운동으로 나타난 갑오농민전쟁으로부터 개항과 식민지배, 3.1독립운동과 외병전쟁, 독립과 더불어 상속된 민족비극으로서의 분단, 문단모순에 의해 야기될 6.25와 남한에서의 독재와 이에 항거한 민주운동으로서의 4.19. 5.16군사 쿠데타와 개발독재, 5.18과 유월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사는 그야말로 격동과 변혁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러한 역동적 현실을 조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특히 역사적사실을 단순히 기술(記述)하는 수준에 머무를 경우 그것은 필연적으로 기념조각류의 관학주의에 함몰되고 말 것이며,또한 그것을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역사는 현실을 떠나 관념의 언저리를 떠도는 유령이 되고 만다.그런 만큼 역사의 예술적 구현이란 명제의 실천은 역사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그것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해낼 수 있는 예술적 감각과 재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건대, 박희선은 역사의 해석과 표현이란 과제를 실천함에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한계와 자기 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수용하면서 옹골차게자기세계를 다져온 조각가임에 분명하다. 그는 내용과 형식의 통일을 통한 작품의 총체성을 이룩하기 위해 특정한 사건에만 얽매이지 않고 한국사를 관류하고 있는 역사적 본질이 무엇인가를 천착하고 있으며, 그것을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사실적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매우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형태를 빌어 표현하고있다. 예컨대 그의 작품에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씨알의 형태는 바로 우리민족의 생명력을 암시하는 것이며 그것이 벌리고 있는 입은 항거(외침)와 구원(기원의 소리)라는 이중적 내용을 담고 있다. 게다가 그 씨알은 항상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이런점이 불의에는 의연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았지만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으려 했던 우리 조상들의 정신의 풍요로움에 대한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작품이 지닌 진정한 매력이자 장점이 바로 이러한 메타피에 있다. 그의 작품에서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는 손을 옆으로 뻗고 있는 인물의 정면성은 만세를 부르고 있는 우리 조상들의 한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만민평등사상과 포용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것은 한복과 기와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선(線)이자 모나지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우리의 산하(山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너그럽고 넉넉한 형태이다.
최근 그의 작품은 정면성을 벗어나 삼차원적 입체감이 더욱 두드러지면서 또한 상징성이 더욱 강화되는 경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입체감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은 수평적 구조로부터 수직적 구조로 작품의 형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과 작품의 규모가 커지면서 반침대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놓이는, 그림으로써 사방을 돌면서 작품을 보아야 하는 기념비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수평적 구조를 지닌 덩어리는 한반도를 상징한다. 그것을 파고들고 있는 네 개의 수직구조가 전통적인 사방위에 대해 연상하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이 네 개의 기둥이 모두 도끼의 형상으로 한반도를 상징하는 덩어리 속을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역사의식과 또 한 번 만나게 된다. 즉 그는 분단현실의 모순을 단순히 민족내적인 맥락에서 파악하지 않고 이것이 개항으로부터 지금까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대강국의 실체에 대해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도끼는 폭력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지만 물리적 폭력을 넘어선 거대한 힘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분단시대의 남북한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을 보면 한반도에 미치는 주변 사대강국의 영향력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즉 남한이든 북한이든 그 체제의 다름을 떠나 주변강국의 영향권 내에 속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개항 이후 거의 100년여간에 걸친 한국 근대사의 한 면모를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외양이 살상무기에 의해 찍혀 있는, 그리고 네 개의 도끼자루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혹시 그가 사대강국에 의한 관심과 침탈을 무력하게 수용하거나 내 혹에 의한 힘의 균형이 항구적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비관적 역사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작품에 드러나고 일면에 불과하나, 그의 작품에서 낙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역사관을 우리는 <통일>이나 <남북>에서 찾을 수 있다. <민들레 - 남과북>이란 작품이 민통선 지역 답사과정에서 이 위기의 땅에 피어오르는 민들레를 발견하고 그것에서 민초(民草)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처럼, 그의 작품 속에는 미래에의 긍정과 낙관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처럼 네 자루의 도끼에 의해 침탈 당하고 있는 <한반도 역시 상처입은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그것을 깨부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임을 구(球)의 형태를 지닌 중심부(생명의 지속과 성장을 암시하는 씨알과 그 몸통부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폭력의 공격 앞에서도 스러지지 않고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그림으로써 머리 부위의 입에서 볼 수 있듯이 모순과 질곡에 대해 저항했던 한국근대사의 격동과 변혁의 생생한 역사를 이토록 긴장감넘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외세에의 저항이 비단 과거지사로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그는 이 작품들이 지닌 조형적 긴장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의 작품은 역사에 대한 위기의식의 산물임과 동시에 위기 앞에 무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역사의 상처를 단지 드러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는 단단한 역사인식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또한 과거의 아픔을 상속받고 있는 현실의 고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의 현실이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그의 작품은 매우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