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시

92 모란 국제 조각 심포지움

전시명: 92 모란 국제 조각 심포지움

전시기간: 1992.07.21 - 1992.08.13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김평식, 성동훈, 마크 브뤼스, 미하일 가보, 두산 크라릭, 루치아노 마싸리, 살로 사울, 게오르기 차프카노프, 알베르토 구즈만

전시내용:  


대화와 협력을 통한 상호이해의 축제 


최태만(미술평론가)


'92 모란 국제 조각 심포지움의 의미

  모란미술관은 미술관의 고유한 기능인 작품의 수집, 보존, 전시, 연구 뿐만 아니라 관람객에게 밀폐된 전시공간에서가 아니라 보다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촉각을 통해 그것과 친밀해지며 더 나아가 휴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그야말로 개방적인 문화공간의 필요성에 의해 야외조각공원으로 설립되었다. 

  모란 국제 조각 심포지움은 모란미술관이 추구하고 있는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미술관, 예술과 일반대중의 소통을 매개하는 제도로서의 미술관이란 성격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방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다. 심포지움이란 방식이 지닌 매력은 작업의 전과정을 일반관객에 공개한다는데 있는 바 모란미술관은 심포지움을 통해 예술교육적인 효과까지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미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시장을 방문하여 실물을 확인하고 체험하는 길밖에 없다.그러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작품이란 물건뿐이다. 이런 경우 관객들이 작품의 수용을 위해 의존할 수 있는 정보라곤 기껏해야 그 작품의 원작자에 대한 간단한 약력 정도 나열된 팜프렛이나 짤막한 기사 정도에 불과하다. 그 작품의 원작자조차 제대로 만나기 힘든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예술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란 자괴감(自愧感)이며, 또한 예술이란 평범한 일반인과는 다른 특수한 부류의 예술가들이 뿜어내는 지적, 정서적 분비물과도 같은 것이라는 환상이다. 이런 경우 창작의 과정은 신비로운 것이며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관객들은 예술가들을 마치 연금술사와 같은 존재로 착각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심포지움은 재료와 공구의 준비과정으로부터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가는 모든 공정을 공개함으로써 예술의 창작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작품의 창작과정 속에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며 그럼으로써 예술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교육적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번 모란 국제 조각 심포지움이 설정하고 있는 주된 목적이 조각예술의 국제교류의 활성화에 있지만 보다 실제적인 측면에서는 이러한 예술교육적 차원에 큰 비중을 두었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더 나아가 이번 모란 국제 조각 심포지움은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87년과 '88년에 국가적 차원에서 개최되었던 국제 야외조각 심포지움 이후 한국에서는 두번째로 열린 것이며 모란미술관의 자력에 의해 순수 민간차원에서 개최되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인 규모의 조각 심포지움이 대부분 국가나 시(市) 등의 지방자치단체가 자기 나라나 시의 홍보차원에서 개최하는 것이 상례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사설미술관이 독자적으로 국제 조각 심포지움을 치룰 수 있었다는 것은 미술관문화의 정착이란 맥락에서도 하나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조직과 진행

  야외조각 심포지움은 폐쇄적이고 자족적이며 엘리트주의적인 '미술관 · 미술'의 한계는 물론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예술작품이 상업주의의 도구로 전략해 버린 현대사회의 왜곡된 미술문화를 극복하여 참여적, 소통적, 민주적, 미술문화를 다지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매력적인 것이다. 심포지움은 밀폐된 작업실에서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관행과는 달리 열러진 공간에서 작업의 전모를 공개함은 물론 다른 동료작가들과의 대화의 협력을 통해 서로를 보다 긴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공동작업의 특징까지 지닌다.

  이미 개관때부터 심포지움의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주목해 왔던 모란미술관은 심포지움 준비단계에서 미술관의 객관적인 역량과 심포지움의 방향,성격, 일정, 예산의 규모, 진행방법에 대한 시안을 수립, 검토하였고 구체적 계획을 확정한 후 이를 인쇄하여 세계 각국의 유수한 미술관, 미술가단체, 미술학교, 개별작가,  재외한국 조각가 등에게 배포하였고 그 결과 14개국에서 44명의 조각가들이 참가신청을 해왔다. 참가신청자료 속에 <마케트>와 <작품제작계획서>의 제출을 명시함으로써 재료와 기법, 규모, 작품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것은 초청조각가의 선정에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초청조각가의 선정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사항은 심포지움에서 제작할 작품이 모란미술관이란 환경에 얼마나 적절하게 부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모란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부드럽고 완만한 산세(山勢)와 6,000여평의 아담한 규모의 야외 조각전시장, 게다가 이 미술관을 울타리처럼 안고 있는 공원묘원을 고려해 볼 때, 관람객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으면서 그들이 작품을 단지 관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참여와 침투를 유도하는 야외조각 혹은 환경조각의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작품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주목했던 것이다. 물론 참가신청을 희망한 조각가들이 이러한 조건을 고려할 수 있도록 미술관의 입지조건에 대해 간단하게 밝힌 안내장을 첨부하여 이 심포지움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대신할 수 있도록 배려했었다. 당연히 자료의 선택, 작품의 규모, 야외조각공원에 설치되었을 때 한국의 관람객에게 얼마나 적극적으로 소통될 수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으며 최종적으로 모란미술관이 희망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작품을 제작할 것으로 기대하는 9명의 작가를 확정할 수 있었다.

  이들이 각기 다른 재료와 기법 즉, 한국산 화강석으로부터 대리석, 철판용접, 동판용접, 알루미늄, 고철, 시멘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 또한 재료와 공구의 구비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심포지움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각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지식을 교류할 수 있었으며, 미술관 또한 다양한 재료로 이루어진 작품을 소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단일재료만으로 개최되는 다른 심포지움에 비해 훨씬 재미있는 행사가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다양한 재료의 사용은 이 심포지움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조각전공 학생들이 재료와 기법을 연구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런 점은 심포지움이란 말이 지닌 본래적 의미 즉, “심포지움은 동일한 문제를 각기 다른 의식과 개성을 지닌 여러 작가들이 상호협력과 토론을 통해 이루어 놓은 작업의 총체이다”라는 의미를 충족시킬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다.

  이번 심포지움에 특별히 동구권 조각가들이 다수 참가하였던 것은 과거 냉전체제 속에서 정치적 이유때문에 한국과의 교류가 거의 차단되었던 동구권 미술의 한 면모를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동구권의 개방 이후 한국과 동구 여러나라와의 미술교류가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서방국가들과의 교류빈도와 비교해 볼 때 여전히 제한적인 만큼 이번 기회에 그들의 예술정책과 문화제도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 심포지움 기간 동안 참가작가들의 개별적인 작품세계, 예술관, 자국(自國)의 예술경향과 정책 등을 폭넓게 논의하는 토론회를 여러 차례를 걸쳐 마련하려고 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만족한 수준의 성과를 얻어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토론의 자리는 참가작가 상호간의 친선과 이해, 협력을 위해 아주 유용한 것이었다.


평가와 반성

  필자 자신이 심포지움의 준비단계에서부터 조직, 진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주관 하고 또한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모란 국제 조각 심포지움을 비평적 시각으로 조명해 볼 수 있는 여유를 아직 가지지 못하고 있는 만큼 섣부르게 이것에 대해 평가하고 반성하기엔 이른 것 같다. 그러나 한가지 자신감을 가지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심포지움이 세계 어떤 심포지움과 비교해 볼 때 결코 손색이 없다는 점이다. 이 심포지움 결과 모란미술관이 지닌 환경 속에 알차고 훌륭한 야외조각을 설치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이 조각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환경을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값진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물량적, 과시적, 행사치레를 경계하며 내실있는 심포지움으로 이끌어가고자 노력했던 만큼 인력의 절대부족, 예산의 제한이란 한계를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으로 전화시킬 수 있었으며, 야외조각에 대한 집중적인 고려가 문화적 생기(生氣)가 넘쳐나며 작가의식의 진지함이 충만한 작품들을생산해낼 수 있었다.

  이번 심포지움에 참가한 조각들이 일방적으로 한국과 유럽에 편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시각과 방법을 수용하였던 점 또한 주목해 주기를 기대한다. 예컨대, 현대문명에 의해 스러져가는 인간의 모습을 동키호테란 전형적인 인물을 통해 조명하고 있는 성동훈의 작품이 기계문명의 운명에 대한 기념비적 우화를 보여주고 있다면 잠자리나 개 등의 인간에게 친숙한 대상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는 불가리의 차프카노프(Georgy Tchapkanov)는 폐기직전의 고철로부터 생동감 넘치고 매력적인 형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88서울올림픽 기념 국제 야외조각 심포지움에 참가했던 네델란드의 마크 브뤼스(Mark Brusse)는 무속신앙과 자연에의 동경을 독특한 형상 속에서 결합시키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돌무덤과도 같은 형태 위에 놓여진 얼굴의 형상과 작은 집, 그곳으로 올라가는 통로처럼 처리해 놓은 계단 등이 산(山)의 육중함과 정기(精氣)를 사색하게 만들며 나아가 조각을 보는 재미까지 부여하고 있어 화강석이 지닌 육중한 양괴에도 불구하고 관람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작품 속으로 관객이 출입하고 그 사이를 거닐 수 있도록 고려함으로써 야외조각으로서는 일단 성공한 김평식의 〈東窓)은 다소 공식적인 나머지 생동감은 떨어지지만 건축공간적인 구조 속에서 창을 통해 인공과 자연을 되돌아 보게 함은 물론 단순하지만 명쾌한 내용의 전달을 위해 작품의 크기를 인간적 규모(human scale)로 조절하여 반복적인 기하학적 구조의 단조로움을 오히려 참여공간으로 유도하고 있어 관람객과의 소통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루치아노 마싸리(Luciano Massari)의 작품은 대리석의 부드럽고 우아한 질감을 이용해 생명의 움을 틔우는 이미지를 형상화함으로써 자연환경과 찰 조응하고 있으며 나아가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정을 노래한다. 헝가리의 미하일 가보(Mihaly Gabor)는 서로 맞잡고 있는 두손을 통해 우정과 화해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가보의 작품은 진부해지기 쉬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동판용접이란 기법을 활용하여 독특한 볼륨과 표면을 만들어냄으로써 무생물의 동판이 근육과 핏줄을 가진 생명체인 것처럼 표현하여 이 진부함을 극복하고 있으며 인간의 보편적인 미덕인 존경과 사랑에 대한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상 앞에서 말한 작품들이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의 살로 사울(Salo Saul)과 체코슬로바키아의 두산 크라릭(Dusan Kralik) 그리고 페루의 알베르토 구즈만(Alberto Guzman)의 작품들은 추상조각의 범주에 속한다. 그중 살로 사울은 심포지움 기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작업하는 억측을 보여주어 인간적인 매력을 흠씬 풍겨준 작가이다. 그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형태는 이른바 모더니즘 조각이 지니고 있는 미니멀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작품의 의미는 배제한 채 형태 자체만을 제시하는 추상조각 혹은 단순한 형태 속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하는 관념적인 작품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하늘을 보기 위한 창구와도 같은 것이다. 반원적 예각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 속에서 보이는 하늘은 모가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밭을 갈고 씨를 뿌르며 쟁기질하는 농부가 보는 하늘과 무엇이 다를 바 있겠는가. 우리는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 들어가면 하늘은 좁지만 분명하게 우리 시야에 들어온다. 살로 사울의 단순한 구조에 비해 두산 크라릭의 작품은 마치 정밀기계처럼 복잡하고 조립적이며 기술적 완결성에 있어서도 단연 돋보인다. 금속세공사처럼 정밀하고 섬세한 작업을 요구하는 그의 작품은 알루미늄이란 재료가 만들어내는 그 기묘한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끝으로 알베르토 구즈만은 뇌수술을 앞두고 있어 이번 심포지움 기간 동안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개별적으로 입국, 석공들이 마케트를 참고로 하여 확대해 놓은 작품을 완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모란 국제 조각 심포지움은 모란미술관 설립자의 희생적인 재정지원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많은 사람들, 작가와 동반입국하여 작업을 도와주었던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심포지움의 진행에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참가작가들의 작업에의 열정과 의욕, 진지함은 이 심포지움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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