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全晙 조각전
전시기간: 1996.10.02 - 1996.10.22
전시장소: 모란갤러리
참여작가: 전 준
전시내용:
삶의 의미에 대한 思索과 觀照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대지(大地)에서 움을 틔우는 식물의 형태를 통해 표현하였던 전준(全)이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사색하는 작품들로 다시금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마치 모태처럼 생명체를 잉태하고 있는 지층으로부터 발아한 식물은 모든 생명체가 가지는 생성과 소멸이란 유기적 과정을 추상적으로 압축해 놓은 것으로서 삼차원적 입체이면서도 조형적으로는 특별히 정면성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그는 이 작품들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소리까지 담아 내고자 했었다. 그 소리란 바로 관조를 통해 들을 수있는 내성(內省)의 울림이고, '삶의 소리'였다.
이러한 작업의 연장에서 이번 개인전에서 그가 새로운 변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자뭇 주목된다.
우선 형식적으로 그의 작업의 변화는 과거에 특징이었던 정면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과 함께 삼차원적 입체감이 더욱 강화된 작품으로 바뀌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정방형이나 장방형의 구조를 지닌 작품의 형태는 단순하지만 내용적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들이 이미 그가 추구해 왔던 작업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고 한다면, 거대하게 확대된 씨앗이나 생명의 근원인 흙으로부터 솟아난 순()의 성장, 혹은 피라미드의 형태를 연상케 하는 작품들은 조각에 고유한 중량과 양감, 나아가 공간감이 한층 두드러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정면성이 강조된 작품이 주변 공간과 독립된 자기완결성이란 것을 지향하고 있다면 이 입체 작품들은 작품 자체가 지닌 공간과 주변환경과 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둥근 씨앗이나 새순의 형태를 보여주는 입체물들이 복수(複數)로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또 어떤 경우에는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복잡해지면서 주변공간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작품도 있다. 이러한 형태와 공간의 파격(破格)은 그가 지금껏 보여주었던 압축된 명징성과 양적(量的) 웅축으로부터 형태의 해방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석조(石)에서 볼 수 있듯이 입방체의 단일한 형태이지만 그 표면의 섬세한 처리를 통해 작고 미세한 율동과 선(線)의 규칙적이면서 질서 잡힌 동세(動勢)를 강조하는 반면 많은 철판을 오려 붙인 철조(鐵造)는 자유롭고 표현적인 상태가 부각된다. 불에 달궈지는 순간 잘려 나가는가 하면 또한 서로 접합되는 철은 부식에 의해 더욱 미묘한 미적 쾌감을 제공해 주는 특징이 있다.
확실히 동판을 두드려 형태를 만들고 부식시킨 작품과 철판을 자르고 붙인 작품 사이의 느낌이란 확연한 차이를 지닌다는 사실을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즉 재료기법적인 측면에서도 그는 철용접, 동판 단조(造), 청동 주조, 석조 등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주제를 종합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그러면 그가 자신의 작업행위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작품의 주제는 과연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전준의 작품은 일관되게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종의 반성적(反省的)인 것으로서 이번 개인전에서도 주제에 관한 한 일관성을 보여준다. 즉, 안정되고 균형 잡힌 형태와 그것의 파괴는 인생의 우여곡절에서 느낄 수 있는 고뇌의 형상화이자 삶의 의미를 사색하고 관조하려는 태도가 각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성소멸이란 자연의 순리(順理)에 순응하면서도 그것을 운명으로 치부하여 묻어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되새겨 반성함으로써 삶의 의미는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작업을 통해 인생의 기쁨과 애환(哀歡)을 담담하게 담아 내려는 그의 태도는 그런 점에서 보는 사람에게도 사색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이 아니라 해석에 의해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단순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삶이 다변적이듯이 그의 작업세계도 유동적인 것이다. 그가 이 전시 이후에 앞으로 어떻게 자기세계를 변모시킬 것인지는 우리 인생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예상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96년 10월
林英芳 (美學博士)
전시명: 全晙 조각전
전시기간: 1996.10.02 - 1996.10.22
전시장소: 모란갤러리
참여작가: 전 준
전시내용:
삶의 의미에 대한 思索과 觀照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대지(大地)에서 움을 틔우는 식물의 형태를 통해 표현하였던 전준(全)이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사색하는 작품들로 다시금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마치 모태처럼 생명체를 잉태하고 있는 지층으로부터 발아한 식물은 모든 생명체가 가지는 생성과 소멸이란 유기적 과정을 추상적으로 압축해 놓은 것으로서 삼차원적 입체이면서도 조형적으로는 특별히 정면성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그는 이 작품들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소리까지 담아 내고자 했었다. 그 소리란 바로 관조를 통해 들을 수있는 내성(內省)의 울림이고, '삶의 소리'였다.
이러한 작업의 연장에서 이번 개인전에서 그가 새로운 변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자뭇 주목된다.
우선 형식적으로 그의 작업의 변화는 과거에 특징이었던 정면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과 함께 삼차원적 입체감이 더욱 강화된 작품으로 바뀌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정방형이나 장방형의 구조를 지닌 작품의 형태는 단순하지만 내용적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들이 이미 그가 추구해 왔던 작업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고 한다면, 거대하게 확대된 씨앗이나 생명의 근원인 흙으로부터 솟아난 순()의 성장, 혹은 피라미드의 형태를 연상케 하는 작품들은 조각에 고유한 중량과 양감, 나아가 공간감이 한층 두드러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정면성이 강조된 작품이 주변 공간과 독립된 자기완결성이란 것을 지향하고 있다면 이 입체 작품들은 작품 자체가 지닌 공간과 주변환경과 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둥근 씨앗이나 새순의 형태를 보여주는 입체물들이 복수(複數)로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또 어떤 경우에는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복잡해지면서 주변공간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작품도 있다. 이러한 형태와 공간의 파격(破格)은 그가 지금껏 보여주었던 압축된 명징성과 양적(量的) 웅축으로부터 형태의 해방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석조(石)에서 볼 수 있듯이 입방체의 단일한 형태이지만 그 표면의 섬세한 처리를 통해 작고 미세한 율동과 선(線)의 규칙적이면서 질서 잡힌 동세(動勢)를 강조하는 반면 많은 철판을 오려 붙인 철조(鐵造)는 자유롭고 표현적인 상태가 부각된다. 불에 달궈지는 순간 잘려 나가는가 하면 또한 서로 접합되는 철은 부식에 의해 더욱 미묘한 미적 쾌감을 제공해 주는 특징이 있다.
확실히 동판을 두드려 형태를 만들고 부식시킨 작품과 철판을 자르고 붙인 작품 사이의 느낌이란 확연한 차이를 지닌다는 사실을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즉 재료기법적인 측면에서도 그는 철용접, 동판 단조(造), 청동 주조, 석조 등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활용함으로써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주제를 종합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그러면 그가 자신의 작업행위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작품의 주제는 과연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전준의 작품은 일관되게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종의 반성적(反省的)인 것으로서 이번 개인전에서도 주제에 관한 한 일관성을 보여준다. 즉, 안정되고 균형 잡힌 형태와 그것의 파괴는 인생의 우여곡절에서 느낄 수 있는 고뇌의 형상화이자 삶의 의미를 사색하고 관조하려는 태도가 각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성소멸이란 자연의 순리(順理)에 순응하면서도 그것을 운명으로 치부하여 묻어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되새겨 반성함으로써 삶의 의미는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작업을 통해 인생의 기쁨과 애환(哀歡)을 담담하게 담아 내려는 그의 태도는 그런 점에서 보는 사람에게도 사색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이 아니라 해석에 의해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단순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삶이 다변적이듯이 그의 작업세계도 유동적인 것이다. 그가 이 전시 이후에 앞으로 어떻게 자기세계를 변모시킬 것인지는 우리 인생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예상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96년 10월
林英芳 (美學博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