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시

김황록 KIM, HWANG-ROK

전시명: 제1회 모란미술대상전 - 대상수상기념 초대전 KIM, HWANG-ROK

전시기간: 1996.09.16 - 1996.09.28

전시장소: 모란갤러리

참여작가: 김황록

전시내용:


작가의 의지와 재료의 성질이 상충하여 만들어 낸 유기적 구조물


  김황록의 작품은 부피(mass)로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線)으로서 공간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면으로서 존재할 때도 전체 공간속에 던져진 하나의 선적 요소로서 기능을 하는 듯 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무엇'을 만든다는 것 보다는 '무엇'을 그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 싶다. 한편 그의 작품을 둘러싼 공간도 여타 입체들의 전시와는 다르다. 그에게 공간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작품을 압박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때로는 작품을 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작품에 담기기도 하는 미묘한 성격을 지닌다.

  김황록은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갖가지 삶의 이미지들을 열심히 공간속에, 때로는 공간위에 그려넣는다.

  단지 화가와 다른점은 그가 사용하는 재료가 주로 철 (iron)이나 철사(Stainless wire), 구리, 나무등과 같은 실체적인 재료들 이라는 점이다. 쇠나 철사들의 재료는 우리의 뇌리속에 항상 차갑고 딱딱하고, 비 인간적인 이미지로서 각인된 물체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물질에 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 마치 마이더스의 손과 같이 그의 손은 철의 비 인간성을 인간적으로, 딱딱한 성질을 부드럽게 변성(變性)시켜 물체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의심케 한다. 그의 작품은 종종 우리의 시각을 현혹시켜 철사를 윤이 반지르하게 흐르는 섬유물같이, 또 때로는 말라서 거칠어진 풀줄기 같이 보이게 한다.

  사실 그것은 작가가 교묘하게 빛의 량(光量)이나 빛의 각도를 조정하여 재료본래의 물성(物性) 특질을 시각적으로 변환 시켰기 때문이다. 철의 표면을 그라인더로 갈아 매끄럽게 하거나 거칠게 하여 빛의 반사율을 조정하여 마치 우리의 시각에는 다른 물질로서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철사의 집적(集積)이나 연마(鍊磨) 정도에 따라서 좌우되는 빛의 반사는 마치 메아리와 같이 온 전시장을 빛의 울림으로 가득차게 한다. 빛과 철의 충돌로 만들어지는 철의 울림과 빛의 떨림으로 그의 전시장에 들어서는 우리는 묘한 느낌을 받게된다. 그러나 그 소리가 우왁스럽거나 떠들썩한 소리는 아니다. 김황록이 순간적인 이미지를 포착하여 작품화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매우 구조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형태에 있어 가소성(可塑性)이라고는 전혀 없고 자기의 성질을 굽힐 줄 모르고 틈만 나면 본래의 제 모습으로 되돌아가려고 뻣뻣한 철사를 가지고 그는 자유 자재로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 철사는 그의 의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이 되어 때로는 젖가슴 같이 두툼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늦가을 바람에 찢겨진 낙엽같이 앙상한 골격만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의 작품이 외관상으로는 유려해 보이지만 항상 긴장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비록 작가의 의지에 잠시 굴복하여 작가가 부여한 어떤 모양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려는 철사의 복원력으로 인하여 형태의 유지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즉 주어진 형태를 유지하려는 작가의 의지와 본래적 모습으로 되돌아 가려는 재료의 의지가 상충하여 그의 작업은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김황록은 작품에 거창한 교훈적 메시지를 담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이성에 의해 구축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이성이 아닌 우리의 몸안 어디엔가 존재하는 또 다른 감각으로서만 감지할 수 있는 유기체적 구조물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유기체와 같이 자연 속에서 숨쉬고 다른 사물과 소통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에게 재료와 작품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는 우리의 일상적인 관습적 언어나 수단으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깨닫는 그러나 어떠한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나 이미지를 그는 공간이라는 빈 캔버스위에 자유스럽게 펼쳐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1996. 9        박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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