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시

오늘의 한국조각 - 한국 현대 조각의 조형성

전시명: 오늘의 한국조각 - 한국 현대조각의 조형성

전시기간: 1996.05.21 - 1996.06.03

전시장소: 모란갤러리

참여작가: 김찬식, 최의순, 최만린, 엄태정, 박석원, 신옥주, 김유선, 류인, 박희선, 원인종

전시내용:


한국 현대조각의 조형성 

- 모란갤러리 개관기념전에 부쳐 -


이종숭 (미술평론가)


  한국의 현대미술, 그 중에서도 조각의 발달시는 상당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조각은 그 자체의 고유한 문법과 형식, 그리고 질량을 갖고 있다는 인식과, 여타 다른 형식의 미술과는 변별되는 영역 속에 존재한다는 생각에 큰 도전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특히 조각이 그것에 고유한 조형이나 물질의 문제보다는 조각의 저변이 “문화적 상황 안에서 대립되는 것으로 느껴지는 조건들의 총체를 통해 구성된다" 1)는 동시대의 미학적 판단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설치 작업을 포함해서 비디오 아트, 컴퓨터나 복사기 등 전자기계를 전용하는 일렉트로이미지 아트(electro-image art)와 활용의 한계가 보이지 않는 다양한 매체의 등장은 전통적인 조각의 위상을 이미 뛰어넘어 버렸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서양의 현대조각과 한국 현대조각의 발전사에 있어서 조형과 형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 실천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조각의 언어가 갖고 있는 고유한 확실성과 결정적 요소들을 새롭게 검증해보는 것이란, 조형적 사고의 토대가 무너져가고 있는 동시대 시각예술의 지표를 다시 한 번 더 반성해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조각의 발전은 추상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성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것만이 한국 조각사의 유일한 결정적인 단서는 아닐 테지만, 특히 형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사실상 한국 조각의 최초의 혁명적 사고였다는 점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이상화된 '자연의 모방 (imitationaturae)이라는 서구조각의 전통과 도덕적 규범에서 일탈하는 대담한 행위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각가들은 물질적인 세계의 이미지들이 새롭게 해석될 수 있으며, 그것의 내적인 생명력이 이전에 존재해왔던 것들과 화합할 수 있는 기능성을 제공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내면의 생명력을 표현하는 조형과 형태를 통해 유기적 상징을 읽어낼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일면에서 전통과의 연결점을 제공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세포의 새로운 분열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세포의 분열이란 사실상 성장이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으며, 이러한 추상화에 따른 상징적 강도와 새로운 메타포는 한국의 조각에 더욱 세련된 시학(詩學)을 부가시켰다.

  예술이란 “살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한다라고 조각가 헵워스(Barbara Hepworth)가 말한 바 있지만, 한국의 추상조각은 어떤 다른 분야의 경우보다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와 욕구를 탐구해왔다. 그래서 서구의 경우, 조각의 귀결점이 상당히 물질과 의식의 차가움을 나타내는 쪽으로 발전해왔다면, 이와 반대로, 한국의 조각은 인간적 속성을 지니는 따뜻함과 고귀함을 드러내는 쪽으로 발전했다는 인상을 준다.2) 그러한 특징은 분리하기보다는 통합하려는 속성이 강하며, 예술을 통해 혼돈과 파괴, 그리고 해체 대신에 문명의 질서와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오늘의 조각-한국 현대조각의 조형성」전에 등장하고 있는 10명의 조각가들도 대체로 이러한 범주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이루어내고 있는 작가들이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10명의 작가 개개인의 조각적 세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심상(心想)의 상징적 등가물로 작용하는 조형(최의순), 음양의 쌍생적 표현의 추상화(김찬식), 부분과 전체의 생성적 관계에 대한 탐구(박석원), 생명과 형태의 원형에 대한 탐구(최만린), 내면과 외면의 공간적 조율을 위한 직관(엄태정), 자연과 삶의 대위적 원초성(원인), 유기적 형태의 대상화(유선), 한국적 원형과 역사적 본질의 조형화 과정(박희선), 물질적 상상력에 의한 생성적 공간의 탐구(신옥주), 인체를 통한 시대적 경험의 재구성(류 인) 등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세계로부터 우리는 집단적인 문화가 강요하는 양식과 의식으로부터 타협하지 않는 개성적인 조각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 또, 그들 작업의 순수한 조형과 구조적 특징들도 그 상징성이 독특하고 강하기 때문에 일어적인 문맥으로 규정될 수 없다. 그들이 활용하고 있는 조형적 요소들, 즉 형태와 공간, 선, 재료, 질감 등은 하나 하나 독특한 변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들의 작업으로부터 어떠한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생명체나 유형적 존재가 끊임없이 변모하고 성장해 나가는 생성의 현상일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작업으로부터 생명에 대한 끈질긴 탐구심과 욕구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위대한 모더니스트 시인 옥타비오 파즈(Octavio Paz)는 현대가, "과거로부터 단절되었고 너무 빠른 속도로 앞으로 계속 돌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할 따름이다. 따라서 그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그 결과 복원력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3)고 개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동시대 한국 조각의 조형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검증하는 일은, 복원력을 상실한 채 거친 물결 위를 표류하는 조각계의 탄력을 잃은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역사는 미학이론에 고유한 것이며, 미학이론의 카테고리들은 철저하게 역사적이다” 4)는 아도르노의 전언을 굳이 고찰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미학이론이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태동시킨 시대의 특성을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실제로 보이는 것 이면에 숨어있는 세계에 대한 동경, 의식적인 통제로 제어될 수 없는 상상과 환상, 우연이나 꿈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낭만주의와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매개해주는 서구적 현대성(modernity)의 단서라면 5), 한국적인 추상화라고 하는 조형의 탐구를 통해 한국미술의 현대성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단서를 이번 전시를 통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가보(Naum Gabo)는 1937년 세기의 전환을 회상하며, "조각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던 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조각은 르네상스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6)는 말을 전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낙관적인 말은, 예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영역 속으로 조각을 이동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찬 흥분된 감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조각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상상력과 형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그 시기를 특징적으로 부각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미술의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 현대조각의 성장에서 보이는 조형에 대한 인식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현대성이 어떻게 확보되었는가를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는 서양의 경우와는 다르게, 현상과 본질의 문제가 대립적인 이원론으로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예술에 있어서 본질과 현상을 별개의 것이 아니라 현상의 총화가 본질이며, “본질은 그 역사적 현상의 총체 속에서 드러난다. 그 두 거울은 서로를 비추고 있다. 현상은 늘 변하는 것이고 본질은 불변의 것이라 하나, 현상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한, 본질에 대한 인식도 변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본질에 대한 의미부여가 증가하여 점점 풍부한 내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7)는 어떤 한국미술사학자의 직관적 해명은, 전통미술 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대조각을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어떤 유력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조각은 서구적 문법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자신의 전통과 환경, 그리고 사고의 맥락과 결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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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미술사학자로써 현대조각론에 대한 명석한 비평을 개진해온 크라우스는 “(탈모더니즘의 상황 속에서 실제의 작업은 조각이라는 소정의 매체에 관련되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련의 문화적 조건들에 근거한 논리적인 운영에 연관된다. 그러한 문화적 조건들을 위해서는 사진, 책, 벽 위의 선, 거울, 혹은 조각 그 자체 등 어떠한 매체도 사용될 수 있다. 탈모더니스트의 작업 공간의 논리는 더 이상 재료에 근거한 일정한 매체의 규정이나, 혹은 그러한 이유로 해서 재료의 지각에 의해 성립되지 않는다. 그 대신 그것은 문화적 상황 내에서 대립되는 것으로 느껴지는 조건들의 총체를 통해 구성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Rosalind E. Krauss, "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 in 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and Other Modernist Myths, Cambridge 1988, pp. 288-89 참조.

그런가하면 조각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최근에 상당히 확장적인 개념정의가 뒤따르고 있기도 하다. 가령, 영국의 저명한 평론가인 루사 스미스는 조각이란, “1970년대 개념미술의 등장과 함께, 넓고 다양한 아방가르드 예술작품을 지칭하는데 사용하게 되었다. 그것은 일련의 문서만으로 구성되거나,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의 차원을 사용하는 다른 예술로 구성되기도 한다. 그 용어는 회화를 제외한 거의 모든 형식의 예술적 행위를 지칭하는 표식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Edward Lucie-Smith, Dictionary of Art Terms, London 1984, p. 168 참조.       

2) "한국의 추상조각이 유기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고수해야할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역사적 책무로부터 자유로웠던 미국이 퓨리터니즘의 금욕주의와 맞물리면서 미니멀리즘 쪽으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던 것과 반대로, 전통과 무거움과 전후의 참담함으로 인간의 문제에 보다 집요하게 파고들어간 유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주의적' 성격에 보다 친밀하게 접근했기 때문일 것이다."는 분석은 한국 추상조각의 발전사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접근방식에 해당된다. 최태만, 『한국 조각의 오늘』, 한국미술연감 1995, p. 167 참조.

3) Octavio Paz, Alternating Current, Helen Lane trans., New York 1973, pp. 161-62      

4) Th. W. Adorno, Asthetische Theorie, Frankfurt 1970, p. 532

5) 우리는 부분과 전체의 유기체적인 (organisch) 관계를 맺는 변증법적 해석학적 통일성이 붕괴되며, 전체에서 떨어져나간 부분이 독립적으로 해방되는 경우를 20세기의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볼 수 있다. 전체에서 분리된 개별적 요소가 강조되며, 현실의 단편 조각을 예술에 집어넣음으로써 예술의 전체적 상 및 전체 연관성은 파괴된다. 따라서, 헤겔(Hegel)식의 전통적인 유기체적 총체성을 주장하는 미학이론은 총체성의 붕괴를 기반으로 하는 몽타지(montage)나 알레고리(allegory)와 같은 급진적인 예술 형식을 통해 크게 비판받는다. 계몽적 전통에서 배척 당한 상상력과 꿈, 무의식과 우연 등을 급진적인 방식을 통해 예술적으로 그려내는 일은 커다란 충격이었으며, 서구의 예술계는 예술의 자율성을 스스로 철폐하는 가운데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추구하였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이념적인 차원에서 현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Peter Bürger, Theorie der Avantgarde, Frankfurt 1974 를 참조. 하지만, 한국미술의 역사에서 현대성의 획득 문제는 이러한 서구적 맥락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띄며, 전혀 새로운 분석의 틀을 필요로 한다.

6) J. L. Martin, Ben Nicholšon, Naum Gabo eds., Circle International Survey of Constructive Art, New York 1971, p. 110

7) 강우방, 열화당 1990, 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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