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시

오늘의 한국 조각 '99-선 線 Line

전시명: 오늘의 한국 조각 '99-선 線 Line

전시기간: 1999.05.12 - 1999.06.05

전시장소: 모란갤러리

참여작가: 김세일, 정재철, 서정국, 신옥주, 홍승남

전시내용:


오늘의 한국 조각'99 - 線 


선적인 조각의 등장 : 기법, 개념상에 있어서의 조각 영역의 확장


  1549년 미켈란젤로는 베네데토 바르키Benedetto Varchi에게 쓴 편지에서 조각이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대리석을 깎는 사람의 경우처럼 덩어리를 점차적으로 제거하기를 통해서(그의 단어로는 per forza di levare)'와 '점토나 왁스로 소조를 할 경우처럼 지속적인 첨가, 즉 덧붙이는 방법을 통해서 (per via di porre').1) 미켈란젤로 이후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위와 같은 조각의 정의는, 입체파나 구축주의의 예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에 따라 1956년 <조각 예술>이라는 글 속에서 조각을 회화적 지각과는 달리, 공간 속의 3차원적 덩어리들을 다루는 특별한 감수성'으로 보면서 조각적 감수성을 다음과 같이정의하였다. "그것(조각적 감수성)은 세 가지 요인들을 포함한다 : 표면의 촉감적인 성질의 감각, 균일한 표면들에 의해 결정되는 볼륨감, 그리고 대상의 풍부한 중량감을 종합적으로 실현하는 것." 2)

  이에 따라 늦어도 1920 년대까지 서양 미술사에서 선이라는 조형 요소는 색채의 대립 개념인 드로잉의 기본 요소로서 회화의 조건으로만 다루어져 왔고, 조각에서는 옷주름이나 표면의 효과를 위해 보조적으로만 사용어 왔다. 이를테면 19세기 프랑스의 아카데미즘을 이론적으로 주도한 샤를르 블랑에게 있어 '드로잉은 미술에서 남성이고 색채는 여성이다. 그는 '색채가 여성처럼 변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없는 것'으로, 반면 '선은 신뢰할 수 있는 것' 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서는 '색채가 근본적인 회화에서조차도 색채가 드로잉 다음의 두 번째 자리에 오며', '색채 여성적인 것)는 무형태성을 재현하는 반면,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드로잉 (남성적인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남성중심적 시각은 제국주의적 입장으로까지 이어져, 그에게 색채는, 알제리아처럼, 선의 권위에 의해 식민지화되고 주재되어야 하는 것'이었으며, '여자와 같이 색채는 남성의 텍스트에 의해 지도 그려지기를 기다리는 사막과 같은 존재로 이해되었다. 3)

  조각의 기본 개념이 3차원적 덩어리감에 한정되므로써 선은 물론 공간 역시 회화 속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이때의 공간은 단지 덩어리를 감싸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945년과 1960년 사이 덩어리감이 제거된 철조가 현저하게 다수가 등장하게 되었다. 1964년 리드가 '상업 화랑에 전시되는 작품들을 가지고 판단해 볼 때, 최신의 조각 가운데 거의 4/5 가 금속 종류로 이루어진 작업인 것 같다'면서 "신 철기 시대" 라는 용어를 주조할 정도로 금속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많아졌다.4) 철봉이나 철판과 같은 금속 재료가 용접으로 연결되어 평면적이고 선적인 그러나, 주조된 브론즈처럼, 볼륨적이지 않은 형태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회화, 특히 드로잉과 많이 공통적'이다.5) 이미 1920년대 말 곤잘레스와 피카소가 금속을 용접하여 덩어리감이 제거된 선적인 조각을 만들었으나, 이러한 경향의 조각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현저해지므로써 "새로운 조각'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덩어리감과 그것을 통해서 표현되는 생기를 조각의 조건으로 본 생명주의자vitalist 리드에게 금속이라는 산업적인 재료와 그것에 상응하는 용접방식의 도입을 통해서 양감이 제거된 선적인 조각이 일반화된 사실은 일종의 도덕적 퇴조 - 그의 말로는 "쇠퇴decay와 해체 disorganization" 상태로 까지 비쳐졌다.6) 그는 로뎅의 후예들인, 마이, 마티스, 부르델, 렘부르크, 부랑쿠지, 로랭, 아르프와 무어가 견고한 형태, 즉 덩어리의 미술이라는 전통적인 조각을 하는 조각가들'로 열거하면서 당시에 현저해진 "선적인 조각으로의 전이를 통해서 무엇을 잃었는가를 질문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 "실제로 과거에 조각 미술의 특징을 결정하던 모든 것들을 잃었다고 말해야만 한다. 본질적으로 형태상 열려 있고 의도상 역동적인 이 새로운 조각 (선적이고 용접된 금속 조각)은 그것의 덩어리와 중량감을 가장한다. 이것은 응고되지 않은 흘림체의 것 - 허공 속의 낙서다."7) 그는 앞서의 블랑과는 달리 양성으로 나누는 sexualized 시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브론즈 주조를 미리 소조로 만들어진 사물들에게 영구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간주하는 반면, 금속들을 철사로 만들 수 있어' '연성인ductile' 재료, 망치질로 형태를 변경할 수 있는 가소성의 malleable' 재료로 설명하고 있다.8) " 이를 통해서 그가 브론즈를 남성적인 재료로, 반면 불로변형시킬 수 있는 레디메이드 재료인 금속을 여성적인 것으로, 그리고 덩어리감이 있는 조각을 남성적인 것으로, 반면 허공에 떠있는 가벼운 선적인 조각을 여성적인 것으로 보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베르그송주의자인 영국인 리드와는 반대로, 미국의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1940년대 데이비스 스미스와 그 주위의 뉴욕 조각가들에 의한 선적인 용접 조각을 "미국 조각의 르네상스"로 보았다."9) 그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옹호자였는데, 그 이유는 이 양식의 회화가 그가 현대 미술의 특징으로 내세운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미술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는 각 예술은 "순수해야 하는데, 그 장르의 순수성은 각 매체가 지니는 "제한들을 유지하므로써 얻어진다고 보았다. 회화의 경우 그것의 순수성, 즉 "자기 정의"는 "평면, 지지대support의 형태(필자, 직사각형)와 색소의 속성들'에 의해 이룩된다는 것이다.10) 이러한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실제로 드로잉적이고, 입체파 콜라주와 회화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 선적인 조각들을 그가 "새로운 것으로 칭찬하는 것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 스스로도 새로운 조각은 그것의 강점을 이전의 조각으로부터가 아니라 회화, 특히 입체파 콜라주로부터 가져왔다고 쓰고 있다.11) 이처럼 선적인 조각이 그의 현대성 개념을 충족시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의 현대 조각에게서 유럽의 장구한 조각 전통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서 현대 회화에서와는 다른 척도로 조각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소위 이 새로움'이라는 기준은 그가 추상표현주의의 아방가르드적 특징을 논할 때도 그것이 유럽 전통과 단절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놓인다. 그 동기야 어떻든 그린버그는 리드와는 달리 볼륨에 관심은 없고 빈 공간 속에 선과 면이 이어져 만들어진 투명한 조각을 현대적인 것으로 평가하였다.    서양 조각사에서 선적인 조각의 등장은 이 장르의 영역을 기법상, 재료상, 나아가서는 그것의 개념상 확장시킨 것이다. 선적인 조각은 미래주의자들에 의해 주창된 확장된 조각 재료 개념을 입체파에 의해 등장한 콜라주라는 새로운 조각 기법을 결합하였다. 또한 불로 달구어 휘어진 금속사 허공을 진행하는 방식의 작품가들은 드로잉기법을 조각에 도입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조각은 회화, 특히 드로잉 영역으로 침투하게 되었다. 나아가서는 공간이 감싸고 있는 덩어리뿐만 아니라, 공간을 싸는 형태 역시 조각이 되었고, 잡을 수 있는 형태, 즉 포지티브 스페이스는 물론 빈 공간, 즉 네거티브 스페이스의 모양도 중요한 조각적 요소가 되었다. 조각은 더이상 바닥만을 그것의 지지대로 고집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것은 바닥을 기는 듯이 놓일 수도 천장에 매달릴 수도 벽의 구석에 부착될 수도, 허공에 떠있는 듯이 설치될 수도 있게 되었다.

  

1950년대 중엽 - 우리 나라의 선적인 조각의 출현


  우리 나라에서는 1950년대 중엽부터 선적인 조각이 등장하였다. 1955년과 56년 김정숙은 당시, 앞서 언급한대로, 철 용접 조각이 꽃을 피우던 미국에서 유학하였다. 이러한 경향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1955년 <P-1>이라는 그녀의 금속 용접 습작은 기법에 있어서는 물론 형태상으로도 데이비스 스미스가 1950년 51년에 제작한 <편지>나 <연회>와 같은 작품들과 아주 흡사하다. 그녀는 주로 생명주의적인 조각을 했으나 그 후로도 "허공 속의 낙서와 같은 선적인 조각 작품을 몇 점 더 제작했다. 국내에서는 1957년에 송영수가,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김종영이 철을 용접하여 스미스의 작품보다는 곤잘레스의 것에 가까운 "투명 조각 transparent sculpture" 작품들을 선보였다. '60년대 초에 들어서는 남철과 최기원이 미국 조각가이브람 라쏘우의 드로잉적인 작품과 유사한 철사 용접 작품들을 국전에 출품하기도 했다. 그 후 동 10 년대 말에는 최만린이나 엄태정과 같은 조각가들은 묵선의 골법을 연상시키는, 활력적인 선을 이용하여 생명의 원동력인 기를 표현하였다.12)


우리나라 미술가 5인의 선적인 조각들


  이번 전시에 참가하는 조각가들은 여러 형태의 선을 만들거나, 그것을 자신의 작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연령이 40대에 속하는 다섯 명이다 : 김세일, 서정국, 신옥주, 정재철과 홍승남. 이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나라 대부분의 젊은 미술가들처럼 국내 선배들의 작업 전통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기보다는 그것과의 단절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들은 외관상 서로 공통점이 없고, 그들이 함께 단체를 만든 것도 아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 다섯 조각가들 모두의 작품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덩어리보다는 선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생겨나는 공간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을 선적인 조각들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되는 다섯 조각가들 가운데 김세일 만이 인체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주로 나무를 조각하여 가느다랗고 자세가 뒤틀린 듯한 인체를 보여주고 있다. 왜곡과 단순화를 통해서 만들어진 그의 인체들의 전체 형태와 색상은 물리적 해부학이 아니라 심리적 해부학을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나무꾼과 선녀>의 가족 세 명은 나무기둥 하나 속에 분리되지 않은 채로 있고, 얼굴색이 창백한 <수인지人>의 사지는 세부 묘사가 생략되어 자루처럼 조각된 의복 속에 갇혀 있다. 뼈와 살이 분리되지 않고 전통적인 천(지) 하대장군들처럼 한 개의 기둥으로 묘사된 인물들의 심리상태들에 상응하는 그의 조형 방식은 매우 금욕적이다. 이것은 일본의 다도에서 말하는 '사비', 즉 '가난함Armut' 과도 통하는 것이리라.13) 이들의 자세는 작가가 선택한 나무의 원래 모양에 따라 결정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인물들을 멀리서 보게 되면 중력과 바람에 순응하면서, 다시 말해서 자연의 원리에 따르면서 성장하는 나무 줄기의 모습과도 같으며, 흰 바탕을 배경으로 솟아오르며 그어진, 동양화 속의 모필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의 군더더기 없는 이 선 형태의 인물들은 여러 종류의 외압에 눌린 소박한 군상이다.

  스티로폼으로 모델링한 것을 무쇠로 주조한 <수인>(1998)이나, 참죽나무로 조각한 <수인>(1998) 그리고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만든 <원효>와 <설총>(모두, 1999)과 같은 근래의 작품들은 더 이상 닫혀진 형태가 아니며 그 윤곽선도 복잡해졌다. 앞의 두 작품의 팔, 다리 사이의 빈 공간과 나중 두 작품들에서 반투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의 깊이를 보면, 그가 형식적인 면에서 형태, 즉 포지티브 스페이스 뿐만 아니라, 빈 공간, 즉 네가티브 스페이스도 인식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최근에 제작된 스카치테이프 작품들에서 김세일은 자신의 지속적인 주제인, 인간의 실존주의적인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원효, 요석과 설총 가족이 당대에 그들의 출생 신분 때문에 겪었음직한 소외감 때문에 그 가족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나방이 벗어 놓고 날아가버린 허물처럼 음산한 모습으로 허공에 매달린 <원효>와 <설총>을 통해서 어쩌면 작가는 돈, 교육, 외모 등, 여러 외적인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항상 존재하는 인간의 고질적인 배타심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두 작품이나 <변성>의 반투명 인체들은 비정형적인 선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마치 이승에도 저승에도 속하지 않는 미이라처럼, 이쪽 편에도 저쪽 편에도 흔쾌히 속하지 못하고 실체인지 허물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현대인처럼 무력하게 매달려 있거나 누워 있다.

  정채철은 통나무에 선을 긋거나 홈을 파고 그것의 속을 파내거나 그 위에 채색을 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서 선이라는 조형요소는 여러 종류로 나타난다. 우선 그가 사용하는 길다란 나무의 모양이 하나의 선이다. 그가 긁은 흔적, 파낸 홈, 즉 빈 공간과 그 홈들 사이에 남은 나무의 형태들도 모두 선이다. 이를 통해서 그의 작품들은 덩어리감이 파괴되는 한편, 회화적인 면을 지니게 된다.

  정재철의 작업은 그가 원하는 형태의 나무를 만나면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사람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조각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차라리 사람은 사물이 원하는 것을 조각한다고 말하고 싶다"는 알랭의 말처럼,14) 나무의 생김새와 표면, 그것의 색깔과 같은 물리적 특징들이 이 조각가의 노동 충동을 자극하는 듯하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의 모습은, 그것들이 세워져 있든 누워 있든, 모두 남근적인 형상이고, 대부분이 그것들의 원래의 실루엣을 간직하고 있다.

  앙리 베르그송은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서가 아니라 호모 파버 homo faber로 생겨났다고 주장한다.15) 이러한 견해는 정재철의 길다란 나무 작품들과 그의 작업 과정을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와 나무와의 만남은 데카르트적이 아니라 메를로-퐁티적이다. 정재철은 나무를 가지고 어떤 대상을 재현하려고도 어떤 사상을 투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연장을 가지고 나무를 자르고, 그것에 골을 파고 그 속을 비워내는 일련의 과정은 그에게 있어서는 조각을 한다기보다는 그 재료를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그는 나무의 속을 파냄으로써 즉물적으로 그것의 안과 밖을 모두 드러내 준다. 그러나 그의 이런 과정은 촉각적, 시각적 경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깊이 자르는 행동에서 생기는 남성적 만족은 우리의 새디즘적 깊은 죄의식의 몇 가지 형태와 관련시켜야 한다"고 죠르쥬블랑은 쓰고 있다.16)  그러나 홈이 파지고 생채기도 나있고, 속도 비워진 상태로 누워 있거나 서 있는 남근 형태의 나무들은 정재철의 작업 행위를 새도-매조키즘적으로 보게 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재료와 외견상 간혹 유사성이 있는 데이비드 내쉬의 작품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무를 태우기도 하는 이 영국 조각가는 자신의 작업 방식과 작품의 모양을 자연의 일부로 본다. 이에 따라 그의 작품들은 자연 속에서 가공되지 않은 나무들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정재철의 조각은 그러한 자연사상과는 무관하다. 그의 나무는 그의 손에 들어오는 순간 자연을 떠나, 분출된 조각가의 물리적, 심리적 에너지를 모두 체험하는 신체가 된다. 그의 나무는 바닥에 놓고 그 위를 물감을 뿌리며 돌아 다녔던 벌판인 잭슨 폴록의 넓은 캔버스처럼, 작가의 조형적, 성적 욕망들이 표출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다섯 조각가들 가운데 서정국과 신옥주의 작품들은 형태상으로 허공 속의 낙서"라는 리드의 표현에 가장 적합하다. 서정국이 1991년에 제작했다가 그 후 몇 년간의 간격을 두고 다시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작업은 잎이 떨어진 대나무를 연상시킨다. 굵기가 다른 스테인레스 스틸 봉이 다양한 높이로 용접되어 연결된 그의 작품들은 양식상 포스트 미니멀리즘으로 부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물론, 가는 나무막대들을 묶어가면서 포개 만든 나무기둥 작품들(1990), 작은 입방체의 나무토막들을 원기둥으로 쌓은 작품들 (1991), 투각된 철기둥과 같은 작품들 (1994-5) 의 공통점은 모듈의 반복이라는 조형 방식과 각 작품의 색조가 단색이라는 사실이며, 이것은 미니멀리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은 나무토막을 쌓은 작품의 장식성과, 스테인레스 스틸 봉이 연결된 작품에서 대나무라는 자연물이 연상되고, 또 그것이 직선적이지 않은 점에서 그가 미니멀리즘의 교조성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허공 속에 엉클어진 선과 같은 서정국의 최근의 작품들은 1990년경 이래 근래까지의 그의 작업의 종합이라 할 수 있다. 짧은 철봉들을 용접하여 연결하는 기법은 대부분의 그의 작품과 공통적이지만, 그것들이 만들어 낸 형태는 앞서 열거한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철사 작품들(1993)에 닿아 있다. 이 작품들은 길이가 다르고 자연스럽게 구부러진 철사들이 시멘트 대 위에 꽂혀진 것들이다. 1960년대 후반 리차드 세라의 나사로 조여지지 않은 상태로 서로가 힘을 받치며 불안하게 서 있는 철판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이나, 역시 그의 벽에 걸려 늘어진 가죽 띠 작품들에서 통일된 질서라는 모더니즘적 이상이 와해된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꿋꿋하고 단단한 이미지를 지닌 '대나무' 들이 힘없이 구겨진 듯한 서정국의 최근의 드로잉적인 작품들에서도 미국 작가의 작품들에서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전의 수직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이 철봉들은 원심력 외에도 구심력과 그 외의 힘들을 받아 구부러진다. 그는 자신의 이전 작품들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상승이라는 법칙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 더욱이 첫 철봉과 마지막 철봉이 이어지므로써 그의 선은 시작과 끝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선의 움직임은 일정한 궤도가 없어 혼규의 모습을 이루게 되므로써, 그의 작품들은 혼돈이라는 세계의 그림이 된다.

  신옥주의 선들은 철판이라는 재료의 물리적 속성과 불의 온도와 그것이 가해지는 시간, 그리고 조각가 자신의 신체적 힘의 종합물이다. 철판은, 허버트 리드가 지적하고 있듯이, 불에 달구거나 망치질을 통해 그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연성적이고 "가소성의 재료다. 이러한 물리적 속성 때문에 철판을 포함한 금속재료들은, 그 상태가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가변성이 적은 나무나 돌과 달리, 인간의 노동에 의해 형태가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따라서 철판은 형태라는 "남성적 요소를 기다리는 물질, 즉 "여성적인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신옥주에게 있어 형태와 물질은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녀가 철판을 다루는 방식은 모양을 만들기 위해 강압적으로 불로 달구고 망치로 두들기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적이 아니다. 그녀는 형태를 위해 물질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 그녀의 선들은 앞서 열거한 여러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철판은 불의 크기와 조각가의 노동량에 따라 천천히 갈라지고 부드러워지고 휘어진다. <지평에서>(1980)의 땅을 기는 선에서부터 <지혜의 문>들에서의 위로 솟은 선들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모든 선들은 위에서 열거한 물리적인 힘들의 순리적인 결과들이다.

  바슐라르의 용어로 표현하여 불과 철의 물질적 상상력은 신옥주에게는 여자로서의 삶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철판은 불이라는 외압에 따라 잘라지고 이리 저리 휘면서도 부러지지 않는다. 불에 의해 갈라져 나온 철선은 공기의 압력을 밀기도 또 그것에 밀리기도 하면서 진행한다. 이를 통해서 차갑고 강인한 철판은 연성적인 것이 된다. 바로 이러한 특징이 철판의 물질적 상상력이며, 이러한 유연성이 아마도 작가가 감수성과 자의식을 지닌 한 여자로서 살기에 척박한 이 땅에서 구하는 "지혜의 문'일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녀의 선들을 이종숭이나 박정환이 해석하듯이 "전통 미술과 서예의 선묘적 표현의 형식과 내용에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17) 그녀의 선들은 천천히 자체 안에 긴장감을 지니고 생성되는 것들로서, 화선지 위에 모필, 즉 젖은 부드러운 붓으로 빨리 그어야 하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두꺼운 미술연필, 즉 건조하고 딱딱한 필기구로 종이에 중력을 아래로 가하면서 천천히 그어 나간 현상학적인 선에 가깝다. 인간의 얼굴의 주름살이 그가 오감五感으로 체험한 시간과 공간에 의해 각인된 것이듯이, 그녀의 선들은 그것들이 경험한 불과 공기와 시간과 그녀의 힘을 담은 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재철의 나무들이 분출된 남성적 에너지에 의해 상처받고 탈진된 듯이 보이는 반면, 그녀의 작품은 역동적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그 선들 속에 철과 작가가 거친 부단한 인내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홍승남은 1992년이래 스테인레스 스틸로 작업을 해 오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지속적인 주제인 "원과 사각형의 변주'를 통해서 이 재료의 물성을 최대한도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 금속을 자르고 용접하여 납작한 육면체와 원기둥을 만든다. 그는 철저한 장인정신에 입각하여 이 입체물들의 표면을 사포로 문질러 광을 내고, 가장자리의 각을 예리하게 다듬는다. 그의 기하학적인 형태들은 때로는 동종적인 것과, 때로는 이종적인 것과 겹치면서 연결되기도 하는데, 이 겹친 부분은 빈 공간으로 나온다. 그의 관심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극단적으로 대립시키는 것에 있다. 즉 그는 원의 곡선과 사각형의 직선, 호의 완만함 굽음과 직선이 꺾여 이룬 직각, 막힌 형태와 열린 공간, 밝음과 어두움의 대립을 최대화시킨다. 그의 작품에서 선은 입체물들의 가장자리에서 나오는 윤곽선인 동시에, 빈 공간과 형태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만나는 경계선이다. 기하학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매끄럽게 처리된 이 선들은 마치 잘 드는 칼로 무우를 날쌔게 자르듯이, 비고 참, 원형과 사각형이라는 대립적인 세계들을 가차없이 잘라 놓는다. 그러나 "원과 사각형의 변주"들이 입체물이기 때문에 보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윤곽선들이 여러 개 나타나게 되므로써, 이 선들이 구분하는 세계들의 경계가 혼란스러워진다. 이러한 효과는 그의 작품들이 여러 개 겹쳐지면서 바닥에 설치되었을 때 더 현저해진다. 그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드로잉적이라고 설명하는데, 그 이유는 이처럼 윤곽선과 스테인레스스틸의 형태와 빈 공간이 만들어 내는 '그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재료로 만들어진 기하학적 형태들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홍승남의 작품들은 미니멀리즘적이라기 보다는 구성주의적이다. 그 이유는 우선 그의 조형 방식이 규칙적인 나열이 아니라, 불규칙적인 중첩과 잘라 제거하기라는 사실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작품이 완성된 질서를 표방하기보다는 계속 변화하는 무질서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점을 두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더욱이 광을 낸 금속 표면에 비치는 주변은 그의 작품을 즉물적으로가 아니라, 표면이 감각적이고 회화적으로 처리된 도날드 져드의 작품들objects의 경우처럼, 일루전을 만들어내는 회화처럼 보게 한다. 정확한 기하학적 형태, 차가운 느낌을 주는 그것의 색깔과 매끈한 표면, 대립적인 요소의 명확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는 모아짐이 아니라 흩어짐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작가와 관객의 감정이입의 가능성 또한 그의 작품을 미니멀리즘으로부터 구분시키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희 (미술사가, 철학박사)

                    




1) G. Baldwin Brown(ed.), Giorgio Vasari: Vasari on Technique, Dover Publications. Inc., New York, 1960(1. 1907), p.179.

2) Herbert Read, The Art of Modern Sculpture(1956), p.71, Jack Burnham, Beyond Modern Sculpture, George Braziller, New York, 1973(1. 1968), p.74에서 재인용.

3) Charles Blanc, Grammaire des arts du dessin, Paris, 1867, trans, by K. N. Dogget, The Grammar of Painting and Engraving, 1874, pp.22-23. Anthea Callen: "Coloured Views - Gender and Morality in Degas <Bathers> Pastels", Jorurnal of Philosophy and the Visual Arts, ed. by Adrew Benjamin, London, 1993, pp.23-29 중 p.24에서 재인용.

4) Read, Modern Sculpture: A Concise History, Thames & Hudson, London, 1994(1. 1964), pp.237-239.

5) Andrew Causey, Sculpture Since 1945,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p.61.

6) Read, Modern Sculpture: A Concise History, p.256.

7) 앞책, pp.250-253.

8) 앞책, pp.240-245 참조.

9) Clement Greenberg, "The New Sculpture" (1949), Causey, Sculpture Since 1945, p.62.

10) Greenberg, Modernist Painting"(1961), in Francis Frascina & Jonathan Harris(ed.): Art in Modern Culture. An Anthology of Critical Texts, Phaidon Press Limited, London, 1997(1. 1992), p.309.

11) Greenberg, "Review of Exhibitions of Gaston Lachaise and Henry Moore", Causey, Sculpture Since 1945, p.62에서 재인용.

12) 졸고, "한국 추상조각의 출현과 전개, 1950-1960년대, 조형,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부설 조형연구소 발행, 1995년 제 18호, pp.31-33 참조.

13) Udo Kultermann, Kleine Geschichte der Kunsttheorie,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 1987, p.45.

14) 알랭, 예술에 관한 20강, p.224, 가스통 바슐라르 불의 정신분석/초의 불꽃 외, 민희식 역, 삼성출판사, 19971. 1990), p.241에서 재인용.

15) Henri Bergson, "Schöpferische Entwicklung", 144, in Günter Martens, Vitalismus und Expressionismus, Verlag W. Kohlhammer, Stuttgart/Berlin/Köln/Mainz, 1971, p.56.

16) Blanc, Poèsie, p. 45, 바슐라르 불의 정신분석/초의 불꽃외, p.230에서 재인용.

17) 이종수, "철과 불을 주제로 한 변주곡, 혹은 물질의 상상력 - 신옥주의 조각, 공간, 1993.2/3,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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