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시

오늘의 한국조각 2000 - 새로운 차원을 찾아서

전시명: 오늘의 한국조각 2000 - 새로운 차원을 찾아서

전시기간:2000.05.02 - 2000.05.28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이용덕, 김수자, 최재은, 박상숙, 문  주, 정  현

전시내용:


새로운 차원을 찾아서


이경성


  미술의 역사는 인류지각의 변천이기도 하지만 미적인 바탕에서 본다면 차원의 변천과정이기도 하다. 선사시대의 암각벽화에 나타난 1차원 회화표현은 인간이 외계의 사물과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예이다. 자기가본자기외의 사람이나 동물 그리고 사물을 기억을 통해서 또는 시각을 통해서 재현하는 것이 곧 미술의 기원인 것이다. 따라서 미술은 원시인에게 있어서 자기가 바라본 세계상이고 우상이었다. 여기서 비로소 자기와 자기 이외의 것이 존재하게 된다.

  차원이란 선이 일차원이라 한다면 교차되는 선은 2차원이다. 다시 말하자면 평면이 2차원인 것이다. 이 무렵 사람들은 흙이나 돌, 나무에 사람 또는 동물의 조각을 남겨놓는데 이것이 곧 입체 즉 3차원의 세계이다. 서양의 경우 라스코동굴벽화가 2차원의 전형적인 예라고 한다면 위 여인상은 곧 3차원적 표현의 시작이다. 이렇게 해서 이미 2차원과 3차원의, 다시 말해서 평면과 입체의 모든 문제제기는 구석기 시대에 인간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각자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었다. 이러한 인류의 조형적인 표현을 보다 합리적으로 다양하게 전개시킨 것이 그리스의 미학이다.

  그리스 철학의 기본은 형이상학이지만 그것의 해답은 합리성에 있다. 모든 것을 이치에 맞도록 논리를 꾸미고 그것에 안티테제로서 비합리를 설정하는 이른바 변증법적인 방법이 이미 그리스 미학에는 나타난다. 미술의 역사는 3만년이라기도 하지만 기원전후에서 비롯한 본격적인 미술의 역사는 1천년 가량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간 사람들은 감각과 감성을 동원하여 미술을 시각예술로서 완성시켰다. 서양의 미술사뿐만 아니라 동양의 미술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서양의 경우 미술편에 있어서 중요시한 것은 차원의 문제였다. 2차원의 평면과 더불어 3차원의 입체를 교차시킴으로서 많은 그리스의 조각과 르네상스의 미술과 그 후 계속되는 바로크, 로코코, 인상파, 추상파 등 다양한 조형표현을 실험하고 새로운 조형에 도달하였다.

  문화라는 것은 다양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출발하여 복잡한 결과로 이행하는데, 차원의 역사도 점이나 선과 같은 1차원적인 표현에서 평면과 같은 2차원적인 표현, 그리고 입체와 같은 3차원적인 표현에 도달해서 인상파 등 미술의 꽃을 피웠다. 미술에 과학의 영향이 미치자 20세기 미술은 복잡한 양상을 띠었고 시간예술인 4차원의 문제까지 취급하게 되었다.

  그후 21세기가 다가오자 4차원의 문제도보다 분화되어 다차원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회화와 조각, 장식미술 같은 모든 조형의 요소를 종합시킨 설치미술이라든가, 기계의 힘을 빌리는 컴퓨터 미술에 이르러서는 고전적인 차원의 문제는 붕괴되고 새로운 차원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을 차원의 관점으로 다루기에는 매우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조형표현의 문제는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그 바탕은 미술의 원리 속에 미학적인 방법뿐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적인 모든 방법과 표현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미술은 예술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과학과는 대립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미술의 역사를 보면 미술의 발전에는 반드시 과학적 관점이 개입한다. 예를 들면 그리스 조각에 있어서 입체적인 문제라든가, 르네상스 미술에 있어서의 광선과 해부학의 문제, 그리고 인상파에 있어서의 색채학과의 관련, 더 나아가 20세기에 와서는 자연과학의 문제 때문에 미술의 과학화가 이루어지고 그것은 종래의 개념에 따라서는 미술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미술의 역사는 발전은 없고 오직 변모가 있을 따름이라는 생각에서 본다면, 현대미술은 이제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지혜, 과학, 정신문화, 미학 등을 하나로 엮어서 그야말로 그전에는 없었던 미술이 되고 만다. 백남준이 시작한 비디오 아트도 그런 것 중에 하나이다.


이용덕(모순의 극복과 조화)

  조형작가 이용덕의 작품세계는 모순되는 두 가지의 형상을 하나의 공간 속에서 융화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에 있다. 그것을 위해서 대립된 구조를 아울러 배치함으로써 모순과 괴리의 논리적인 체험을 동시에 맛보게 한다. 가령 양각과 음각을 적절히 혼용함으로써 공간의 깊이를 감지시킨다든지, 벽에 이미지를 극대화해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공존시키기도 한다. 그와 같은 조형시도는 1982년 미술회관에서 개최된 서울조각회전을 기점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관훈미술관, 윤갤러리, 토우갤러리, 갤러리서미, 금호미술관, 조형갤러리, 최갤러리 등 서울의 온갖 갤러리를 무대로 발표해왔다.

  특히 1991년 5월에 개최한 최갤러리에서의 전시는 그의 예술적인 생애를 망라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그때 평론가 최태만은 그의 작품을 "모순의 수용과 상상화 된 세계의 자기동화라고 이야기하고 "일상의 회상과 기록으로서의 조각 작업"이라고 이야기하였는데 여기서 강조된 것은 모순의 수용이다. 모순은 변증법적으로 또 하나의 격상된 세계를 창조하는 계기가 되지만 모순이 충돌로서 끝난다면 그것은 합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밑바닥을 떨어지고 만다. 이른바, 헤겔의 변증법에서 얘기하는 정, 반, 합의 세계가 작품의 창조과정에서 작용한다면 몰라도 충돌로 끝나는 모순이라면 그것은 창조라기 보다는 파괴이다. 이러한 대립된 개념을 어떻게 처리하며 어떻게 작품화하느냐 하는 것이 조각가 이용덕에게 주어진 가장 큰일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이용덕은 아직 젊고 힘이 있기에 자기 눈앞에 전개되는 이와 같은 모순을 어떻게 슬기롭게 처리하느냐는 것이 문제로 남을 따름이다.모든 조각가가 그러하듯이 새로운 차원의 모색을 두고 자기의 온갖 힘을 기울여서 탐구하는 그 태도만이 오늘의 그에게 있어서 귀중한 것이다. 


김수자(샤먼의 후예)

  천에 바늘로서 꿰매는 섬유의 세계는 섬유작가 김수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다. 기존의 섬유작품을 이용해서 또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창조하는 과정은 샤먼의 후예인 김수자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창조인 것이다. 옛날동리어귀의 성황당고목에 달려있는 여러 가지 색의 천들은 민간신앙으로서 서민들의 희노애락과 신앙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성황당의 감각은 사적인 신앙을 떠나서 조형작가인 김수자에게도 이어진다. 샤머니즘은 몽고의 초원을 기점으로 해서 남쪽으로 흘러온유랑민의 민간신앙이었다. 북에서 남으로 오랜 세월을 흘러오면서 그들의 생활 속에는 범신론적인 생각 속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죽음을 맞았다.

  조형작가 김수지는 사적인 미학에 서서 자기 나름대로의 작품을 창조해낸다. 그것이 천보따리의 창조와 그의 이동인 것이다. 여러가지 색깔, 그리고 질감이 다른 헌천들을 묶어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고 그것을 보따리로 만든다. 보따리라는 것은 유랑민족인 샤먼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 속에는 생활의 필요한 모든 물건이 쌓여 있었고 그것을 펼치면 곧 새로운 생활의 터전이 된다. 섬유작가 김수자는 이러한 보따리의 미학을 현대화시키고 그렇게 만들어진 보따리를 달구지 또는 트럭에 싣고 유랑의 길에 또 선다.

  길따라산따라 하염없이 흘러가는 유랑생활은 곧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정착했던 민족들의 생활양식이다. 그런 샤먼의 미학을 오늘날 새삼스럽게 들고 나와서 그것을 현대미술 속에 내던진 것이 김수자이다. 따라서 그의 체질 속에는 샤먼의 역사가 깃들어 있고 사건에 후예답게 그것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최재은(생물학적 미의식의 발현)

  최재은의 정체가 설치작가인지 환경미술가인지는 몰라도 한가지 분명한것은 한국이 낳은 국제적인 조형작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성장과정이 한국과 일본을 바탕으로 한 국제적인 토양위에 서있고 공간예술뿐만이 아니라 시간예술도 아울러 상존하는 조형작가이기 때문이다. 대상의 본질에 스며들어서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규명한 다음에 그것을 나름대로의 조형적인 세계로 발현시키는 그의 체질은 생물학적인 감각에 가득 차있다. 그와 같은 작가로서의 체질은 그가 이룩한 많은 작품의 결실로 나타나고 있는데 구체적인 예는 1985년에 동경의 소케츠 미술관에 자리잡고 있는 이사무 노구찌의 작품으로서 플라자를 형성하고 있는 돌을, 흙과 풀로 뒤덮은 데서 비롯된다. 같은 맥락에서 1988년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300년된 느티나무를 강철로서 쌓아올려서 나무라는 생물과 강철이라는 무기물을 하나의 공간과 시간 속에 공존시키는 그 놀라운 기법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생물학적인 탐구는 1990년에 경동교회 옥상을 4000개의 대나무로서 뒤덮은 스케일이 큰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합장하는 자세로 형성된 김수근의 건축작품을 보다 아름답게 형성한 것이 경동교회의 그 작품이다. 더욱이 그와 같은 치밀하고 계산된 생물학적인 촉각은 1992년에 대전 엑스포에 세워진 리사이클 파빌리온이다. 이것은 6만개의 빈병을 철사로 엮어서 거꾸로 세운 다분히 인공적이며 과학적인 조형작품이다. 투명한 피라밋형 유리구조 위에 덧씌운빈병의 행렬은 반사되는 광선의 교향악 속의 수준 높은 예술의 결정이 되었다. 또 하나 1993년 파리 유네스코 회의장 앞뜰에서 세계의 작가들과 더불어 설치한 작품 '또 하나의 달'에서는 빨갛게 타오르고 있는 원구형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의 모래와 더불어 사막에서 떠오르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1995년 46회 베니스비엔날레에는 한국사람으로서일본의 대표작가로 등장하였는데, 그 작품 역시색색가지의 아크릴로 일본관 전부를 쌓는 대담무쌍한 의도로 이룩되었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장엄한 스케일이 큰 이 작품은 인간이 창조자로서 신 다음에 우주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조형작가 최재은은 지구를 무대로 해서 온갖 조형적 실험을 하고 궁극의 목적인 자기의 미적인 창조를 위해서 보다 치밀하고 보다 큰 세계에 작가로서 존재한다.


박상숙(구조에로의 회귀)

  조형작가 박상숙은 자기작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의 건축에 대한 관심은 인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촉각적인 체험들과 형태로서의 시각적인 체험들로, 개념적이기보다는 구체적 형상으로서의 기억들이다. 지난 시절 추억의 편린들, 과거에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들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한다. 따뜻한 아랫목, 우물 속에 비친 쏟아질 듯한 별들, 뒤뜰과부엌의 구석진 곳에서 나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생명의 온기들을 찾아낸다. 그러나 나의 작품들은 사변적이지는 않다. 단순하게 드러내어진덩어리로서의 실체들은 함축적이거나 은유함으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더욱 명료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계적으로 다듬어진돌, 스테인레스나 알루미늄 같은 메카닉한 재료들을 사용함으로서 주제에 대한 공감대가 더 커진다. 또한 우리의 집은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을 이루고, 평안함을 꿈꾸는 정서적인 공간이다. 삶의 희노애락이 스며있는 생활공간인 것이다. 건축공간 안의 거리는 인간사회의 거리이기도 하고 건축물속에 닫혀지거나 열려진 공간들은 우리들 사이의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형식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조형작가 박상숙은 이제까지의 작가적인 역정이 서울시대와 파리시대로 나누어진다. 서울시대는 인체시대로서 사람의 신체가 갖고 있는 신비와 조형성을 탐구하였는데 반해 파리시절에는 주택에 관한 관심 때문에 인간의 신체 외형보다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것을 인체시절, 또는 주택시절이라 해도 좋다. 결국 조형작가 박상숙에 있어서는 내용이 되는 신체나 그것을에워싸고 있는 주택에 대한 하나의 개념에서 다루어 나간다. 또한 박상숙은 생활을 바탕으로 하는 조형경험과 그것을 창조로 전환시키는 예지로서 작품화하고 있다. 구조는 곧 우주를 형성하는 원리원칙인데 그와 같은원리원칙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현재에 살리는 지혜가 박상숙의 체질인 것이다. 거기에는 면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하는體滯形이 있지만 그와 같은 체형의 밑바닥에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보다 큰 조형의 세계가 있다. 이렇게 구조에로 돌아감으로써 조형작가 박상숙은 자기에게 주어진 작가적인 의무를 다하고 있다.


문  주(방황하는 美의 탐구자)

  1994년 동경의 시세이도 갤러리에서 개최한 '아시아에서의 산책전'이라는 전시를 볼 기회가 있었다. 아시아의 여러나라에서 젊은 조각가들이 발굴되고 작품을 발표했는데 한국에서는 문주가 뽑혔었다. 내 기억으로는 미국으로 공부를하기 위해 가는 도중에 일본에 들른 것 같다. 그러나 처음으로 문주의 작품을 서울이 아니라 동경에서, 세계적인 시야 속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의 인상은 강렬하였고 감동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조미료와 모니터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조미료를 마치 모래와 같이 바닥에 깔고, 거기에 문양을 그려놓고, 그 문양 위에 여섯개의 모니터를 배치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에 다양한 미의 세계를 연출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주의 시간과 공간에 걸친 작업을 보고 몹시 신선하고도 강한 감동에 사로잡혔다. 그 후에 문주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미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만난 기억은 없고 때때로 서울토탈미술관, 미술회관, 박여숙화랑, 금호미술관, 관훈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산발적으로 보았을 따름이다.

  사실 문주는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늘 탐구를 거듭하는 실험적인 작가이다. 그의 작업은 불확실한 우연을 중시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모순과 가치를 조형적으로 처리하고 정리하는 실험적인 태도를 견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에는 결론이 없다. 오직 끊임없는 과정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기에 조형작가 문주는 늘 미래를 향하여 또 새로운 차원을 찾아서 진행할 따름이다. 그와 같은 진행의 과정에서 얹어지는 체험과 미학은 문주의 작품세계로 직결되지만 문주 자신은 그와 같은 정착과 결론을 기피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내일을 향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정현(양괴에의 신앙)

  조각가 정현의 본질은 끊임없이 탐구하는 볼륨과의 싸움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물질, 그 속에서도 형태를 가진 물질을 조각가 나름대로의 수법으로 관찰하고 환원시키는 그의 작가적인 역량은 곧 그가 지니고 있는 덩어리에 대한 신앙이다. 다듬어진 면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자른것 같은原형의 형질/형태/작품 최소의 방법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 있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힘차다는 것이 그의 작품에서의 느낌인데 그것은 조각가 정현이 자기 작품을 만들 때 아름다움보다도 힘의 상태를 의도하기 때문이다. 대담무쌍하게 잘라버린면과 면, 그렇게 형성된 볼륨과 볼륨. 그러한 것들이 언뜻 보기에는 미완의 상태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그 미완의 상태는 단순하지만 지나친 손질에서 깎여버린 형태의 진실을 송두리채 간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완의 미' 덜 다듬어진 양괴에 대한 깊은 신앙이 바로 조각가 정현의 예술세계이기도 하다.

  미술평론가 유재길은 정현의 작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정현의 조각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침묵의 토르소 작품이다. 거친 몸짓이 침묵 속에 묻힌다. 이곳에는 결코 거짓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미완성과 같은 거칠고 투박한 외형으로 매끄러운 마무리와 거리가 멀지만 그 속에는 숨길 수 없는 진실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적 삶의 진실된 모습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 있지 않는가? 그가 조각한 침묵의 토르소는 이와같은 내면의 세계를 형상화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침묵의 토르소와 추상화된 초상 조각들은 거칠고 원시적인 표현으로 농축된 우리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대답을 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근작에서 보여주는 정현의 인체조각을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구체적인 설명이 가능해진다. 3가지 유형은 첫째가 구체구조의 초상조각이며, 둘째는 수직구조의 토르소로 불안과 긴장감을 더해주고, 셋째는 토르소를 추상화시킨 수평구조의 구성적 추상이다." 이처럼 침묵의 소리를 양괴에 담은 조각가 정현의 작품세계는 원리원칙으로 달음박질하는 예술가의 진지한 태도이기도 하다.

  오늘의 예술가는 창조자로서의 어제를 발판으로 내일을 향하고 있다. 말하자면 새로운 차원을 찾아서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떠난 여정에서 예술가는 미지에 대해 도전하고 그것에 알맞는 해답을 찾아낸다. 따라서 이번에 모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기획전에 참여하는 여섯 사람의 작가도 한결같이 새로운 차원을 찾아서 길을 걷는 미의 순례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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