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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전시

제3회 정현 조각전: 순수 · 텔레비전의 · 변증법

전시명: 제3회 정현 조각전: 순수 · 텔레비전의 · 변증법

전시기간: 2000.03.11 - 2000.03.26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정  현

전시내용:


M 선생님께

  하루하루를 숨 한번 돌릴 여유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지난 연휴는 달게 잔 낮잠과 같았을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저 역시 내달려 온 걸음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데 연휴를 모두 보냈습니다. 식구들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붙박이 가구인 양 꼼짝않고 집안에서 숨을 고르는 데 전력을 다한 거죠. 거기다 귀향이라도 온 것처럼 어떤 주변의 영향도 받고 싶지 않아 신문도 현관 밖에 그대로 놔두는 '방만' 까지 즐겼습니다. 단 하나, 식구들이 거의 24시간 내 방영되는 텔레비전을 쉼 없이 켜 놓아 저의 귀향살이를 방해한 것을 빼 놓고는 말입니다. 'ON' 에 손가락을 대고 약간의 힘만 주면 '정보의 바다'를 만날 수 있기에 참 편리한 세상이라고 회자되는 세상입니다만, 저는 끊이지 않고 귓속으로 파고드는 텔레비전 소리가 그저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골칫거리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급격히 성형되고 있음은 곳곳에서 체감할 수 있습니다. 테크노 댄스 가수라는 이정현의 노랫소리가 거리의 소리를 바꿔 '버리고, 웬만한 건물마다 PC방' 이라는 훈장 하나쯤 달고 있는 데다가, 올 해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되고 있는 행사가 '미디어시티서울2000' 이라는 등,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 테크노와 미디어의 세상이라고 곳곳에서 증빙서류를 내놓고 있으니 말입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그것들에 비하면 '텔레비전' 이라는 매체는 '구닥다리' 임이 분명할 겁니다. 그렇지만 '생필품' 목록의 선두에 선 텔레비전은 지금보다 다채널화 될지언정 지금보다 영향력이 감소될 리 없음은 확연한 사실입니다. 

  조각하는 '정현' 이라고, 선생님께서도 기억하실 겁니다. 그가 이번에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하여 방문한 작업실에 텔레비전이 가득하더군요. 가장 친근하고, 밀접하며, 많은 영향을 끼치는 '미디어'로 그는 텔레비전을 주목하고 있었던 겁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정현 그 친구가 하나를 붙잡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강단이 있지 않습니까. 텔레비전과 사람,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텔레비전이 우리의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그는 다각도로 접근했더군요. 전류를 타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해일 같은 미디어의 속도에 대해,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레 스며드는 미디어의 흡수력에 대해, 바라보고 있으면 '무아'의 지경에 이르는 미디어의 흡입력에 대해, 예고 없이 번쩍이는 광선처럼 갑작스레 다가오는 미디어에 대해 탐구한 흔적이 작품 구석구석에 녹녹히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최면이라도 걸린 양, 틈만 나면 스위치를 켜고 네모난 모니터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텔레비전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관계맺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말을 그는 하고 싶었는가 봅니다. 또하나, 그의 작품 대다수는 센서에 의해 작동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고철덩어리처럼 꿈쩍않는 그의 작품은 사람이 그 앞을 지나치게 되면 빛, 소리, 운동 작용이 일어나게 되더군요. 센서는 미술에서도 특히 설치작품에서 종종 사용돼 온 재료이지요. 관객을 작품에 삽입시키고 작품 관람의 주체가 되도록 유도하는 데 유용했던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정현이 센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는 "텔레비전을 켜는 주체자가 사람이고 그의 의지에 의해서만이 작동될 수 있지 않습니까"라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관자는 텔레비전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의해 규격화, 익명화 되어 갑니다"라는 걸 보면, 인간은 분명 텔레비전을 만들고 작동시키는 주체자임에도,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해 '주객전도' 된 현상을 그는 직시하고 있었던가 봅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다보니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장 보드리야르는 “모든 것은 모조로 재등장하게 되었다. 풍경은 사진으로, 여성은 성적 시나리오로, 사건은 텔레비전으로 재등장한다. 사물들은 오직 이 이상야릇한 문명에 의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서술한 바 있습니다. 미디어와 관련해 모든 인식의 바탕이 매체를 통해 구축되며, 그에 따라 세상이 재편성된다는 말로 해석해 봅니다. 정현의 작품에서도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되는 무수히 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가치판단의 문제, 모니터 속의 영상·이미지 ·소리·각본 등에 함축돼 있는 아구가 잘 맞아떨어진 문화정치의 문제를 되짚어보게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인간 존재에게 주어진 현실로서의 인공적인 삶이 출현했다고 보고 그 인공적인 삶은 과학·테크놀러지·사회 속에서 생물공학과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가 제기하는 도전일 뿐 아니라 하나의 인류학적 사실이며,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 환경 안에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볼프강 슈마허). 그의 글에서와 같이 궁극적으로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미디어는 우리의 문화적 환경 자체를 변화시켰음이 분명합니다. 얼마전 선생님께서 세상이 아무리 과학적 발전에 힘입어 변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 중심에 인간이 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는군요. 정현의 작품에서도 동의어가 읽혀집니다. 미디어와 인간 사이에 밀고 당기는 힘의 균형이 알맞을 때 주객이 전도되지도, 자아를 상실한 채 미디어 문화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하나같이 무거운 철로 만들어진 정현의 작품에서는 그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철망을 용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선생님 께서도 아실 겁니다. 흠집나지 않게 철망 하나하나를 용접하며 신경을 곤두세웠을 뿐 아니라 철판 용접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형태를 완성시켰더군요. 일전에 정현 이 친구를 만났을 때 선생님께서 참 단단해 보인다고 인상을 그리셨던 것처럼, 그는 변치않고 작업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볼트 하나를 쓸 때도 재료상을 여러 번 돌아다니게 되요. 작은 재료이지만 그것이 작품의 완성도를 좌지우지 할 수 있으니까요"라는 그의 말처럼 그가 작품을 대하는 자세는 '장인' 적이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이 되려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 듯도 합니다만, 어쨌든 자신의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정신은 높이 살만 하지 않겠습니까?

  '한계상황' 이라는 테마로 연 지난 1997년의 두 번째 전시나 건축적 관점을 보여주었던 그 이전의 작품에서도그는 조각의 조형성에서 일관된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작품에 담긴 내용은 다소 다르더라도 조형의 기본요소, 즉 사각이나 원 등의 조형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점이 그러합니다.

  이전에 비해 비교적 큰 규모로 열릴 이번 세 번째 개인전이 정현에게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할 뿐 아니라 사고를 구체화시키는 계기가 된 듯합니다. 선생님도 그의 이번 전시를 잊지 말고 보시길 권유합니다. 그리고 읽어보십시오. 그의 텔레비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의 텔레비전에 설치돼 있는 센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걸려들길 바라며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2000년 2월 김윤희 (월간 『미술세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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