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조각가 류인 5주기 추모전 Ryu in
전시기간: 2004.02.18 - 2004.03.07
전시장소: 모란갤러리
참여작가: 류 인
전시내용:
짧은 하루의 기억
최태만 미술평론가 국민대 교수
1994년 12월 어느 추운 날, 류인과의 전화약속에 따라 인사동에서 그를 만났다. 류인과 본격적으로 교류한 것은 1991년 필자가 모란미술관의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기획했던 '한국 형상조각의 모색과 전망'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에 그는 <지각의 주(柱)란 이름을 붙인 야외조각품을 출품했다. 대지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청년의 동세가 처연하고 아름답게 표현된 이 작품은 전시와 함께 브론즈로 주조돼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모란미술관은 배후에 모란공원을 지니고 있어서 그 분위기부터 고즈넉하고 명상적인데 잔디 위에 놓인 그의 작품은 이러한 대기(大氣)의 정적을 뚫고 솟아오르는 대지의 기운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는 이미 모란미술관 개관기념전에도 <입산 II>와 <입산 III>을 출품한 바 있었고 그 작품들은 합성수지로 주조된 상태대로 다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입산 II>와 <입산III>은 대지로부터 창공을 향해 솟아오르거나 그것을 딛고 일어서고 있는 인간의 역동적인 운동감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 요소 외의 인체의 거의 대부분을 생략함으로써 조형적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아래로 내뻗은 손의 강건한 근육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상반신이 비록 입방체의 구조물에 의해 짓눌려 있을망정 이 작품은 그것을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한 인간의 의지를 분명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시지프스나 아틀라스처럼 숙명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고통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입산>이란 제목자체가 암시하듯 이 작품에서 어떤 종류의 비장함과 숭고성까지 느낄 수 있다. 류인의 작품 속에서 한 건장한 청년이 박차고 나오려는 올가미는 그의 의식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있는 '생존의 당위성' 이며 또한 억압된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향한 모반이자 그 위기의식의 산물인 것이다.
간혹 작품의 배열을 궁리하며 그의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필자는 이미 놓여있던 <입산> 연작 두 점과 새로 소장된 <지각의 주>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당시 필자가 생각한 것은 류인이 어떤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자아를 이들 작품을 통해 표출하려는 의지가 깃들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지각의 주>는 사각형의 기둥으로부터 탄생하고 있는 생명체를 의인화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후에 나타날 퇴폐적이리만치 자학적이면서 가학적인 작품들과는 다른 삶에의 강한 의욕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것이 류인에 대한 필자의 인상이었기에 필자로서는 마치 터진 봇물처럼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악마적 상상력으로 제작한 작품들이 실상 자기에게로 향한 가혹하리만치 매서운 채찍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둘이 만난 그날 저녁, 그는 적당히 지쳐 있었고, 안색은 더욱 황폐했고 피부는 거칠었다. 식당을 나서며 그는 주저하는 눈치를 보이다 책 한 권을 내밀었는데, 그 속표지에는 매우 단정하고 깔끔한 글씨로 쓴 감사의 문구가 비록 짧지만 최대한 정중하고 예의를 갖춰 기록돼 있었다. “계속 보여주신 관심과 도움 말씀이 큰힘이 되었습니다" 란 글귀는 사실 의례적인 인사일 수 있으나, 그와 몇 차례 만났을 때 보였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어떤 비장함과 정중함이 깔려 있었다. 그런 모양이다. 아마 류인에게 연배가 낮은 필자는 다른 지인들처럼 허물없이 가까이하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귀어야 할 존재로 비쳐졌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 이 자리는 시공사가 발행하던 아르비방(Art Vivant) 시리즈 중 류인의 책에 들어갈 원고를 필자가 집필했고, 마침 책이 출간되었으므로 그것을 구해 필자에게 증정하는 기회였던 것이다. 필자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날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만났던 것을 제외하곤 단 둘이 만나서 오랫동안 대화를 한 마지막 자리였다. 작별인사를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이 더욱 작고 힘들어보였기에 필자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건강을 염려하는 상투적인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고 일 년이 지난 다음, 필자가 『한국조각의 오늘이란 저를 출판한 기념으로 인사동의 종로 갤러리에서 전시를 마련하였는데 유독 류인만이 다른 작품의 설치가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튿날이면 개막을 해야 하고 오전엔 강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전시를 도와주던 제자들을 보내지 못하고 그의 작품이 오기를 마냥 기다리려니 한참 후에야 그가 직접 자기 신체의 두 배나 됨직한 작품을 안고 끙끙거리며 갤러리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이 작품은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결국 실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출입문 주변에 서리되어야만 했다. 그는 이 작품의 출품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에 비록 필자를 불안하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필자로 하여금 그의 진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조그만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류인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단신(身)의 깡마른 육신에 비해 무서울 정도로 빛나던 눈동자를 떠올리게 된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특히 그중에서 그와 함께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수업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류인은 늘 술을 갈망했지만 작업을 할 때는 거의 광기와도 같은 열정을 불태웠던 존재로 각인돼 있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을 예의처럼 여긴다거나,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대취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다는 회상은 차라리 류인이 지닌 인간적 매력에 대한 반어적 표현으로 들릴 정도로 그는 짧은 생애 동안 20세기 한국조각사에 기록될만한 기념비적 작품을 남겼다. 설령 류인의 삶에서 낭만주의 시대에 예찬되었던 전형적인 예술가상, 즉 참을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반항아(antagonist), 국외자(outsider), 대지로부터 추방당한 자(bohemian), 그래서 필경 요절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천형(天刑)처럼 지녀야 했던 천재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발견할 수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솟구치는 표현의지를 예술의 상아탑을 위해 소진시키기보다 그것을 불안하고 불행했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고단하고 모순에 찬 삶에 대한 기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냉철함을 지닌 예술가였다. 예컨대 1993년 당시 문화체육부가 주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을 받으며 그 부상으로 뉴욕한국문화원에서 가진 전시회 때 뉴욕의 교포신문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자신의 가혹할 정도로 파편화된 인체를 표현한 작품에 대해 "정치적인 면보다 선과 악, 존엄과 멸시, 음모와 순수 등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해 이러한 작품을 했다"는 제작의도를 밝히고 있는데 이것만 보자면 그의 세계가 낭만주의와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대의 인물상을 창조하여 한국인의 참모습을 전달하려 했음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성과 혼이 장시간 투자된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감정과 표현을 절제할 수 있는 인내력까지도 요구된다"라고 말하고 있는바 그가 관심을 가지고 추구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신경질적 학대가 아니라 그것의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모순에 찬 인간의 내면을 들춰보고자 했던 것이다.
끔찍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잘려지고 찢겨진 육신들이 널브러져 있는 류인의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 곁을 떠나며 마치 악몽의 터널을 빠져나올 때의 안도감과 같은 것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작고 깡마른 체구에 병색이 완연했던 한 젊은 예술가의 손과 정신을 통해 구체화된 이 작품들은 그의 내면에 폭발하는 에너지가 잠재해 있음을 일깨우는 비상한 매력을 지닌 것이기도 했다. 그만큼 류인은 놀라운 지구력과 마법에 가까운 상상력을 소유한 존재였음에 분명했다.
조각을 통해 물질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겪고 있는 소외와 고독, 심리적 갈등과 거의 정신분열적이라 할만한 의식의 파편화현상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 류인의 작품은 철저하게 대상화된 육체를 통해 오늘날 인간이 겪고 있는 비인간화 현상을 고발하고 있다.
류인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식에 대한 실존적 성찰이란 그 자신의 주제를 매우 독특한 조형언어로 형상화함으로써 재현적인 조각이 지닌 형상의 마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짧은 생애에 걸쳐 추구했던 주제는 조각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산업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공동체적 삶의 양식이 붕괴된 이후 나타나고 있는 소외의 현상과 현대 대중소비사회에서 인간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안과 실존적 고독, 뿌리 없이 부유(浮遊)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표현한다는 것이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이런 주제들은 이미 많은 작가들에 의해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자칫하면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차원으로 함몰될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의 심각성이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아가 그의 작품에 진정한 힘을 부여해 주었던 요소가 예술가로서 그가 지닌 단단한 조형능력임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류인의 예술가적 역량에 관한 한 이미 앞에서 밝혔던 것처럼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 의 수상을 통해 객관적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그러나 조소예술가로서 그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는 그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있었으며, 필자로서는 그동안 수많은 단체전과 기획전을 통해 주목할만한 작품을 발표했던 류인의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1991년의 두번째 개인전을 그의 작품의 할 수 있다. 성격과 특징, 성과와 한계까지 한꺼번에 드러낸 전시라고 생각한다. 이 전시에 출품된 대부분의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는 사실적으로 재현된 인체의 특정부위를 왜곡, 변형, 생략하고 그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연극적 연출방법을 주로 구사하였다. 특히 그가 표현하였던 인체는 대부분이 불구이거나 파편화된 인체의 잔흔을 노골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시각적 충격을 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극적 형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인체조각의 모델링에 충실하면서도 고전적 표현방법에 얽매이지 않고 그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구축해 나가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주제와 방법에 대한 논의를 요구한다.
그는 절단된 인체, 마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고깃덩어리로서의 육체, 정신이 거세당한 물질을 통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사회적 굴레와 심리적 강박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인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결합시키는 연출방식에서 일면 서술성을 발견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설명적이라기보다 매우 압축적이고 암시적이며 은유적, 상징적이라는 점에서 그의 조각이 지닌 시적 특징까지 추출
그가 표현하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은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형편없이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사고(思考)와 성찰을 통해 자아를 갱신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의 초상이다. 이율배반적인 성격의 대립 예컨대, 포용과 배반, 숭고함과 천박함, 관용의 너그러움 뒤에 감추어진 포악과 잔혹성, 존엄성과 비열함, 욕망의 덧없음, 내면세계로의 끊임없는 자기집중, 약탈과 자기모멸로 향한 달콤한 유혹, 절망 속으로의 추락 등은 그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에 의해 포착된 인간의 현실이며 그는 이것을 내뻗은 손의 표정과 육중한 입방체에 의해 포박당한 인간의 절규하듯 몸부림치는 몸짓을 통해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관없는 신체' 이자 한계상황이란 굴레에 묶인 인간의 몸부림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현대의 악몽이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이러한 정서적 긴장은 근대문화의 근간을 형성하며 문명의 진보를 이끌어왔던 인간중심사상(humanism), 특히 개인주의의 발흥에 힘입어 나타난 실존주의에 그 맥이 닿아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표현주의와도 미술사적 친근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이 처해있는 실존적 한계상황에 대한 주목은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뒤틀리고 잘려나간 인체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인간화된 형상에도 불구하고 류인의 인체조각은 비상한 힘을 분출하고 있다. 인체의 특정부위가 강조된 그의 작품은 상처 입은 육체로서 뿐만 아니라 마치 대지나 알에서 탄생하는 생명체처럼 고통을 딛고 분출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파국적 종말에 예견이라기보다 새로운 출발로 향한 약진의 동세를 나타내고 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닫힌 세계의 빗장을 파괴하여야 한다. 그것은 양수 속에서의 안락함과 포근함을 터뜨려야만 태어날 수 있는 인간의 출생에 얽힌 고통과 신비에 비견할만한 사건인 것이다. 세계의 파괴로부터 획득되는 새로운 생명은 <아들의 하늘>에서 매우 문학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알에서 태어나는 아버지의 새로운 알을 깨고 탄생한 아들의 머리 위에 걸려 있는 구름의 형상은 생명의 탄생에 대한 신비와 그것의 순환에 대한 긍정적 수용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윤회(輪)란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더 나아가 그것은 생명의 상속 즉, 자기존재의 연속과 대물림이란 생물학적 본능을 뛰어넘어 역사와 전통의 계승과 극복이란 인간의 삶의 이유에 대해 말해 주는 듯 하다. 생명의 순환구조는 '춤의 해' 를 맞이하여 제작했던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이 개최하였던 <환경조각전>때 제작한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들을 보면 그의 관심이 바야흐로 '파괴적 심각성'으로부터 '정신의 상승으로 향한 성찰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류인과 만난 짧은 하루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친 류경채 화백께서 생전에 조각을 전공하는 두 아들과 함께 하는 예술의 산실이란 의미로 건축하였던 '류씨예술연구지(柳氏藝術硏究之麗 )'에서나 혹은 전시장에서 아니면 술집에서 마주쳤던 류인과 달리 그날의 류인은 필자에게 특별한 인상을 새겨주었다. 그것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현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불안은 물론 폭발하는 에너지가 시각적으로 선명한 작품들과는 달리 그는 차분하고 진지하고 무엇보다 겸손했던 것이다. 그의 모습은 필자에게 작은 거인 그 자체였다.
전시명: 조각가 류인 5주기 추모전 Ryu in
전시기간: 2004.02.18 - 2004.03.07
전시장소: 모란갤러리
참여작가: 류 인
전시내용:
짧은 하루의 기억
최태만 미술평론가 국민대 교수
1994년 12월 어느 추운 날, 류인과의 전화약속에 따라 인사동에서 그를 만났다. 류인과 본격적으로 교류한 것은 1991년 필자가 모란미술관의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기획했던 '한국 형상조각의 모색과 전망'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에 그는 <지각의 주(柱)란 이름을 붙인 야외조각품을 출품했다. 대지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청년의 동세가 처연하고 아름답게 표현된 이 작품은 전시와 함께 브론즈로 주조돼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모란미술관은 배후에 모란공원을 지니고 있어서 그 분위기부터 고즈넉하고 명상적인데 잔디 위에 놓인 그의 작품은 이러한 대기(大氣)의 정적을 뚫고 솟아오르는 대지의 기운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는 이미 모란미술관 개관기념전에도 <입산 II>와 <입산 III>을 출품한 바 있었고 그 작품들은 합성수지로 주조된 상태대로 다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입산 II>와 <입산III>은 대지로부터 창공을 향해 솟아오르거나 그것을 딛고 일어서고 있는 인간의 역동적인 운동감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 요소 외의 인체의 거의 대부분을 생략함으로써 조형적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아래로 내뻗은 손의 강건한 근육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상반신이 비록 입방체의 구조물에 의해 짓눌려 있을망정 이 작품은 그것을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한 인간의 의지를 분명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시지프스나 아틀라스처럼 숙명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고통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입산>이란 제목자체가 암시하듯 이 작품에서 어떤 종류의 비장함과 숭고성까지 느낄 수 있다. 류인의 작품 속에서 한 건장한 청년이 박차고 나오려는 올가미는 그의 의식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있는 '생존의 당위성' 이며 또한 억압된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향한 모반이자 그 위기의식의 산물인 것이다.
간혹 작품의 배열을 궁리하며 그의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필자는 이미 놓여있던 <입산> 연작 두 점과 새로 소장된 <지각의 주>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당시 필자가 생각한 것은 류인이 어떤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자아를 이들 작품을 통해 표출하려는 의지가 깃들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지각의 주>는 사각형의 기둥으로부터 탄생하고 있는 생명체를 의인화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후에 나타날 퇴폐적이리만치 자학적이면서 가학적인 작품들과는 다른 삶에의 강한 의욕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것이 류인에 대한 필자의 인상이었기에 필자로서는 마치 터진 봇물처럼 꼬리를 물고 쏟아지는 악마적 상상력으로 제작한 작품들이 실상 자기에게로 향한 가혹하리만치 매서운 채찍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둘이 만난 그날 저녁, 그는 적당히 지쳐 있었고, 안색은 더욱 황폐했고 피부는 거칠었다. 식당을 나서며 그는 주저하는 눈치를 보이다 책 한 권을 내밀었는데, 그 속표지에는 매우 단정하고 깔끔한 글씨로 쓴 감사의 문구가 비록 짧지만 최대한 정중하고 예의를 갖춰 기록돼 있었다. “계속 보여주신 관심과 도움 말씀이 큰힘이 되었습니다" 란 글귀는 사실 의례적인 인사일 수 있으나, 그와 몇 차례 만났을 때 보였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어떤 비장함과 정중함이 깔려 있었다. 그런 모양이다. 아마 류인에게 연배가 낮은 필자는 다른 지인들처럼 허물없이 가까이하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귀어야 할 존재로 비쳐졌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 이 자리는 시공사가 발행하던 아르비방(Art Vivant) 시리즈 중 류인의 책에 들어갈 원고를 필자가 집필했고, 마침 책이 출간되었으므로 그것을 구해 필자에게 증정하는 기회였던 것이다. 필자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날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만났던 것을 제외하곤 단 둘이 만나서 오랫동안 대화를 한 마지막 자리였다. 작별인사를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이 더욱 작고 힘들어보였기에 필자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건강을 염려하는 상투적인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고 일 년이 지난 다음, 필자가 『한국조각의 오늘이란 저를 출판한 기념으로 인사동의 종로 갤러리에서 전시를 마련하였는데 유독 류인만이 다른 작품의 설치가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튿날이면 개막을 해야 하고 오전엔 강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전시를 도와주던 제자들을 보내지 못하고 그의 작품이 오기를 마냥 기다리려니 한참 후에야 그가 직접 자기 신체의 두 배나 됨직한 작품을 안고 끙끙거리며 갤러리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이 작품은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결국 실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출입문 주변에 서리되어야만 했다. 그는 이 작품의 출품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에 비록 필자를 불안하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필자로 하여금 그의 진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조그만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류인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단신(身)의 깡마른 육신에 비해 무서울 정도로 빛나던 눈동자를 떠올리게 된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특히 그중에서 그와 함께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수업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류인은 늘 술을 갈망했지만 작업을 할 때는 거의 광기와도 같은 열정을 불태웠던 존재로 각인돼 있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을 예의처럼 여긴다거나,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대취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다는 회상은 차라리 류인이 지닌 인간적 매력에 대한 반어적 표현으로 들릴 정도로 그는 짧은 생애 동안 20세기 한국조각사에 기록될만한 기념비적 작품을 남겼다. 설령 류인의 삶에서 낭만주의 시대에 예찬되었던 전형적인 예술가상, 즉 참을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반항아(antagonist), 국외자(outsider), 대지로부터 추방당한 자(bohemian), 그래서 필경 요절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천형(天刑)처럼 지녀야 했던 천재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발견할 수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솟구치는 표현의지를 예술의 상아탑을 위해 소진시키기보다 그것을 불안하고 불행했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고단하고 모순에 찬 삶에 대한 기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냉철함을 지닌 예술가였다. 예컨대 1993년 당시 문화체육부가 주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을 받으며 그 부상으로 뉴욕한국문화원에서 가진 전시회 때 뉴욕의 교포신문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자신의 가혹할 정도로 파편화된 인체를 표현한 작품에 대해 "정치적인 면보다 선과 악, 존엄과 멸시, 음모와 순수 등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해 이러한 작품을 했다"는 제작의도를 밝히고 있는데 이것만 보자면 그의 세계가 낭만주의와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대의 인물상을 창조하여 한국인의 참모습을 전달하려 했음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성과 혼이 장시간 투자된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감정과 표현을 절제할 수 있는 인내력까지도 요구된다"라고 말하고 있는바 그가 관심을 가지고 추구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신경질적 학대가 아니라 그것의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모순에 찬 인간의 내면을 들춰보고자 했던 것이다.
끔찍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잘려지고 찢겨진 육신들이 널브러져 있는 류인의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 곁을 떠나며 마치 악몽의 터널을 빠져나올 때의 안도감과 같은 것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작고 깡마른 체구에 병색이 완연했던 한 젊은 예술가의 손과 정신을 통해 구체화된 이 작품들은 그의 내면에 폭발하는 에너지가 잠재해 있음을 일깨우는 비상한 매력을 지닌 것이기도 했다. 그만큼 류인은 놀라운 지구력과 마법에 가까운 상상력을 소유한 존재였음에 분명했다.
조각을 통해 물질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겪고 있는 소외와 고독, 심리적 갈등과 거의 정신분열적이라 할만한 의식의 파편화현상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 류인의 작품은 철저하게 대상화된 육체를 통해 오늘날 인간이 겪고 있는 비인간화 현상을 고발하고 있다.
류인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식에 대한 실존적 성찰이란 그 자신의 주제를 매우 독특한 조형언어로 형상화함으로써 재현적인 조각이 지닌 형상의 마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짧은 생애에 걸쳐 추구했던 주제는 조각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산업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공동체적 삶의 양식이 붕괴된 이후 나타나고 있는 소외의 현상과 현대 대중소비사회에서 인간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안과 실존적 고독, 뿌리 없이 부유(浮遊)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표현한다는 것이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이런 주제들은 이미 많은 작가들에 의해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자칫하면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차원으로 함몰될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의 심각성이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아가 그의 작품에 진정한 힘을 부여해 주었던 요소가 예술가로서 그가 지닌 단단한 조형능력임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류인의 예술가적 역량에 관한 한 이미 앞에서 밝혔던 것처럼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 의 수상을 통해 객관적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그러나 조소예술가로서 그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는 그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있었으며, 필자로서는 그동안 수많은 단체전과 기획전을 통해 주목할만한 작품을 발표했던 류인의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1991년의 두번째 개인전을 그의 작품의 할 수 있다. 성격과 특징, 성과와 한계까지 한꺼번에 드러낸 전시라고 생각한다. 이 전시에 출품된 대부분의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는 사실적으로 재현된 인체의 특정부위를 왜곡, 변형, 생략하고 그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연극적 연출방법을 주로 구사하였다. 특히 그가 표현하였던 인체는 대부분이 불구이거나 파편화된 인체의 잔흔을 노골적으로 공개함으로써 시각적 충격을 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극적 형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인체조각의 모델링에 충실하면서도 고전적 표현방법에 얽매이지 않고 그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구축해 나가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주제와 방법에 대한 논의를 요구한다.
그는 절단된 인체, 마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고깃덩어리로서의 육체, 정신이 거세당한 물질을 통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사회적 굴레와 심리적 강박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인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결합시키는 연출방식에서 일면 서술성을 발견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설명적이라기보다 매우 압축적이고 암시적이며 은유적, 상징적이라는 점에서 그의 조각이 지닌 시적 특징까지 추출
그가 표현하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은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형편없이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사고(思考)와 성찰을 통해 자아를 갱신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의 초상이다. 이율배반적인 성격의 대립 예컨대, 포용과 배반, 숭고함과 천박함, 관용의 너그러움 뒤에 감추어진 포악과 잔혹성, 존엄성과 비열함, 욕망의 덧없음, 내면세계로의 끊임없는 자기집중, 약탈과 자기모멸로 향한 달콤한 유혹, 절망 속으로의 추락 등은 그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에 의해 포착된 인간의 현실이며 그는 이것을 내뻗은 손의 표정과 육중한 입방체에 의해 포박당한 인간의 절규하듯 몸부림치는 몸짓을 통해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관없는 신체' 이자 한계상황이란 굴레에 묶인 인간의 몸부림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현대의 악몽이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이러한 정서적 긴장은 근대문화의 근간을 형성하며 문명의 진보를 이끌어왔던 인간중심사상(humanism), 특히 개인주의의 발흥에 힘입어 나타난 실존주의에 그 맥이 닿아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표현주의와도 미술사적 친근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이 처해있는 실존적 한계상황에 대한 주목은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뒤틀리고 잘려나간 인체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인간화된 형상에도 불구하고 류인의 인체조각은 비상한 힘을 분출하고 있다. 인체의 특정부위가 강조된 그의 작품은 상처 입은 육체로서 뿐만 아니라 마치 대지나 알에서 탄생하는 생명체처럼 고통을 딛고 분출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파국적 종말에 예견이라기보다 새로운 출발로 향한 약진의 동세를 나타내고 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닫힌 세계의 빗장을 파괴하여야 한다. 그것은 양수 속에서의 안락함과 포근함을 터뜨려야만 태어날 수 있는 인간의 출생에 얽힌 고통과 신비에 비견할만한 사건인 것이다. 세계의 파괴로부터 획득되는 새로운 생명은 <아들의 하늘>에서 매우 문학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알에서 태어나는 아버지의 새로운 알을 깨고 탄생한 아들의 머리 위에 걸려 있는 구름의 형상은 생명의 탄생에 대한 신비와 그것의 순환에 대한 긍정적 수용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윤회(輪)란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더 나아가 그것은 생명의 상속 즉, 자기존재의 연속과 대물림이란 생물학적 본능을 뛰어넘어 역사와 전통의 계승과 극복이란 인간의 삶의 이유에 대해 말해 주는 듯 하다. 생명의 순환구조는 '춤의 해' 를 맞이하여 제작했던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이 개최하였던 <환경조각전>때 제작한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들을 보면 그의 관심이 바야흐로 '파괴적 심각성'으로부터 '정신의 상승으로 향한 성찰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류인과 만난 짧은 하루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친 류경채 화백께서 생전에 조각을 전공하는 두 아들과 함께 하는 예술의 산실이란 의미로 건축하였던 '류씨예술연구지(柳氏藝術硏究之麗 )'에서나 혹은 전시장에서 아니면 술집에서 마주쳤던 류인과 달리 그날의 류인은 필자에게 특별한 인상을 새겨주었다. 그것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현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불안은 물론 폭발하는 에너지가 시각적으로 선명한 작품들과는 달리 그는 차분하고 진지하고 무엇보다 겸손했던 것이다. 그의 모습은 필자에게 작은 거인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