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2023 모란미술관 특별기획전 《 Lee Sukju 》
전시기간: 2023.9.21 –11.26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출품작가: 이석주
전시내용:
일상과 사유의 공간에 대한 회화적 표상
임성훈(미학, 예술비평)
I.
베리즘(verism)을 미술에 적용한다면, 사실적인 것을 넘어 진실성마저 느낄 수 있는 조형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낸시 H. 래미지와 앤드류 래미지는 『로마미술』에서 로마의 초상조각을 베리즘(verism)을 보여주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많은 로마 초상조각은 인물의 지위나 특성 또는 성격, 심지어 어떤 뉘앙스나 미묘한 느낌마저도 읽어낼 수 있는 극도의 사실성을 보여준다. 여기서 사실성은 단순히 외양을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하는 모방적 재현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의 진실성이 드러나는 재현을 의미한다. 이석주의 회화에서 보이는 극사실주의는 결코 하이퍼리얼리즘으로서의 극사실주의가 아니라 베리즘을 향해 있는 실존적 사실주의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업을 두고 단순히 초현실주의적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 관점에서 극사실주의 회화로 규정하는 것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극사실주의라는 규정은 순전히 형식적인 기법의 측면만을 도식적으로 고려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실존적) 사실주의는 베리즘, 그러니까 현실의 실재성에 대한 회화적 진실성을 반영한다. 이번 전시에서 감상자는 초기의 <벽> 연작에서 <일상> 연작을 거쳐 <사유적 공간> 연작에 이르는 모든 작품에서 환기되는 진실성을 만나게 될 것이다.
II.
이석주는 사실적으로 현실을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에서 근본적인 물음은 ‘이러한 실재성에서 어떤 회화적 표상이 상정될 수 있는가’이다. 이 물음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작가의 작업에서 현실은 거창한 것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소박한 일상적인 것이다. 예컨대, 초기 연작인 <벽>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중요한 것은 <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촉발되는 현실을 응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응시에는 단지 조형적 효과만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예술적 내러티브가 펼쳐진다. <일상>과 <사유적 공간> 연작에 나타난 초현실주의적 요소는 실상 의식의 흐름이나 자동기술법이 강조되는 초현실주의 미학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야기를 조형적으로 응축한 내러티브에 대한 회화적 표상에 관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화면에 나타난 효과적 측면에 주목해서 감상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나아가 그 화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감상자 나름대로 읽어내는 것이 감상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일상>과 <사유적 공간> 연작에서 사실적으로 재현된 사물들은 저마다의 내러티브를 갖는다. 말, 시계, 기차, 낙엽, 신발, 책 등은 그저 즉물적으로 화면에 제시된 것만이 아니라 감상자들에게 수없이 많은 이야기의 변주를 제공하는 오브제들이다.
III.
이석주의 <사유적 공간> 연작에 재현된 거장의 작품들은 그의 초현실주의적 사실주의의 진실성을 소박하게, 달리 말해 서정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뒤러, 신고전주의 작가 앵그르, 20세기 화가 에드워드 호퍼와 같은 예외도 있지만, 흥미롭게도 작품에 적용된 대부분의 거장은 카라바조, 베르메르, 렘브란트, 라 투르 등과 같은 바로크 시기의 작가들이다. 실상 그가 인용하고 있는 거장들의 작품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사실성이 아니라 그 현실을 아우르는 진실성을 통해 오늘날의 감상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거장 연작은 이러한 진실성을 회화적으로 재구성하여 또 다른 내러티브를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화면의 디테일한 사실이 마법처럼 현실의 내러티브로 변화되고, 은폐되었던 것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홀연히 드러나는 회화적 알레테이아(aletheia), 달리 말해 예술적 진리를 드러낸다.
IV.
이석주의 작업에서 “일상”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현실을 초월적이거나 관념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다양한 내러티브를 일상의 이미지로 담담하고도 순수하게 재현하기 때문이다. 사물의 재현에는 일상의 다의성이 한껏 응축되어 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 예술적 은유의 원천이 된다. 거장 연작 중 특히 베르메르의 작품이 인용된 화면에서는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일상이 미학적 진실성과 교차되고 있다. 이 아름다운 교차로에서 우리는 이석주 작가 특유의 회화적 서정성을 만난다. 이러한 서정성은 규범적인 미술 형식으로서의 사실에서는 결코 발현될 수 없다. 오로지 그토록 평범하지만 그럼에도 진리에 상응하는 감성으로 촉발되는 곳, 바로 진실한 실재성의 공간에서 비로소 현시된다. 여기에 작가의 고유한 회화적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회화에 나타난 서정성은 단순히 어떤 감성적 주제를 끌어들인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상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현실의 근저에 있는 진실을 지속적으로 사유한 결과에서 비롯된 회화적 서정성이기 때문이다.
V.
<사유적 공간> 연작에서 책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얼핏 책은 사유와 연관된 사물인 듯 보이지만, 작가가 이를 염두에 두고 그려낸 것은 아닐 터이다. 그의 연작에 나타난 책의 이미지는 기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듯 보인다. 책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드문데, 이는 책을 재현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리라. 책의 부분적이고 디테일한 형태를 통해 어떤 이유로 잊힌 일상의 기억들이 소환된다. 세네카(책등)에 있는 흔적과 부분적인 글자는 지극히 사실적인 형태로 제시되지만, 화면 전체에서 그 형태는 문화학적인 기억의 지표로 기능한다. 책은 공간에 빛처럼 놓여 있다. 책의 색감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배경과 상응하고, 강렬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러한 강렬함은 직접적이거나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서정적 감성을 수반한 고요한 감응 속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미적 분위기로 부단히 환원되는 책의 이미지는 일종의 예술적 기억의 저장소를 가리키는 듯 보인다. 책은 문화적으로 표상된 회화적 형태이다.
VI.
이석주 작가의 회화적 공간은 순수 직관의 공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형식적으로 깔끔하게 정제된 그런 식의 차원에서 연상되는 순수 직관은 결코 아니다.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현실, 그 실재성에 대한 사유의 형상들이 있는 공간이다. 그러기에 이 공간은 단순히 어떤 형식을 표현하기 위해 설정된 물리적 공간일 수가 없다. 그의 회화적 공간은 사유의 공간이다. 그림의 공간에 나타난 상징적 이미지들은 시간의 고리로 연결되고, 다양한 양상으로 끝없이 전개되고 펼쳐진다. 그러기에 감상자는 화면의 초현실적인 공간을 그저 수동적으로 바라만보는 직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매우 능동적으로 사유적 공간의 지평을 열어가는 직관에 이르게 된다. 달리 말해, 사물들은 화면에서 어떤 규정된 형태의 이미지로 재현된다기보다는 감상자의 마음에서 회화적으로 재구성되고 사유의 공간에서 실재성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사유적 공간이라는 이 아름다운 예술의 놀이터에서 예컨대 말은 영혼의 심장처럼 현전하고, 시계는 순간과 영원이 구분되지 않는 현실의 알레고리로 존재한다. 이렇듯 사유적 공간은 일상에 대한 다양한 마음이 회화적으로 촉발되는 예술적 놀이의 공간이다.
VII.
<일상> 연작과 <사유적 공간> 연작은 작가의 조형적 변주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변주에는 어떤 명료한 형식적 변화가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모호한 이중적 변용이 돋보인다. 실상 작가는 보이는 것의 현실성을 극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것의 초월성을 화면 가득 담아내는 작업에 천착하는 것도 아닌 듯 보인다. 일상에서 현실과 초월은 늘 교차된다. 그리고 교차되는 그곳에서 사유적 공간이 펼쳐진다. 사물의 현실은 작가의 응시를 통해 회화적으로 견인되고 미학적 실재성으로 변용된다. 현실은 일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일상은 삶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 일상은 그저 텅 비어 있음을 지시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일상, 그 자체가 현실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다. 백마, 포플러 잎, 시계, 하얀 천 등이 그려진 ‘일상’은 어떤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자 예찬을 보여주는 회화적 언어이다. 일상은 작가의 그림에서 지속적으로 변용되면서 회화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적 공간을 현시한다.
VIII.
이석주 작가의 <벽>, <일상>, <사유적 공간> 연작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어떤 쓸쓸함이다. 그의 회화적 구성에서 다양한 사물들의 이미지는 사실적이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다. 마치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낸 다양한 일상의 오브제가 놓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풍경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확연하게 다가오는 이미지가 아니라 왠지 모르게 사라지는 이미지, 달리 말해 텅 비어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풍경을 이루었던 일상의 이미지가 하나 둘씩 사라지고 비어간다. 그렇듯 사라지고 빈 곳은 회화적으로 표상되는 일상과 사유의 공간이 된다. 마치 현존과 부재 사이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 듯 화면의 전체에는 고즈넉하고 적막한 애상미가 감지된다. 이러한 미적 분위기는 현실의 실재성과 그 사실적 진실성을 회화적으로 표상하고자 하는 작가의 섬세하고 미묘한 조형적 탐구의 과정에서 발현된 것이다.
관람예약
전시명: 2023 모란미술관 특별기획전 《 Lee Sukju 》
전시기간: 2023.9.21 –11.26
전시장소: 모란미술관
출품작가: 이석주
전시내용:
일상과 사유의 공간에 대한 회화적 표상
임성훈(미학, 예술비평)
I.
베리즘(verism)을 미술에 적용한다면, 사실적인 것을 넘어 진실성마저 느낄 수 있는 조형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낸시 H. 래미지와 앤드류 래미지는 『로마미술』에서 로마의 초상조각을 베리즘(verism)을 보여주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많은 로마 초상조각은 인물의 지위나 특성 또는 성격, 심지어 어떤 뉘앙스나 미묘한 느낌마저도 읽어낼 수 있는 극도의 사실성을 보여준다. 여기서 사실성은 단순히 외양을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하는 모방적 재현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의 진실성이 드러나는 재현을 의미한다. 이석주의 회화에서 보이는 극사실주의는 결코 하이퍼리얼리즘으로서의 극사실주의가 아니라 베리즘을 향해 있는 실존적 사실주의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업을 두고 단순히 초현실주의적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 관점에서 극사실주의 회화로 규정하는 것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극사실주의라는 규정은 순전히 형식적인 기법의 측면만을 도식적으로 고려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실존적) 사실주의는 베리즘, 그러니까 현실의 실재성에 대한 회화적 진실성을 반영한다. 이번 전시에서 감상자는 초기의 <벽> 연작에서 <일상> 연작을 거쳐 <사유적 공간> 연작에 이르는 모든 작품에서 환기되는 진실성을 만나게 될 것이다.
II.
이석주는 사실적으로 현실을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에서 근본적인 물음은 ‘이러한 실재성에서 어떤 회화적 표상이 상정될 수 있는가’이다. 이 물음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작가의 작업에서 현실은 거창한 것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소박한 일상적인 것이다. 예컨대, 초기 연작인 <벽>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중요한 것은 <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촉발되는 현실을 응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응시에는 단지 조형적 효과만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예술적 내러티브가 펼쳐진다. <일상>과 <사유적 공간> 연작에 나타난 초현실주의적 요소는 실상 의식의 흐름이나 자동기술법이 강조되는 초현실주의 미학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야기를 조형적으로 응축한 내러티브에 대한 회화적 표상에 관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화면에 나타난 효과적 측면에 주목해서 감상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나아가 그 화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감상자 나름대로 읽어내는 것이 감상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일상>과 <사유적 공간> 연작에서 사실적으로 재현된 사물들은 저마다의 내러티브를 갖는다. 말, 시계, 기차, 낙엽, 신발, 책 등은 그저 즉물적으로 화면에 제시된 것만이 아니라 감상자들에게 수없이 많은 이야기의 변주를 제공하는 오브제들이다.
III.
이석주의 <사유적 공간> 연작에 재현된 거장의 작품들은 그의 초현실주의적 사실주의의 진실성을 소박하게, 달리 말해 서정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뒤러, 신고전주의 작가 앵그르, 20세기 화가 에드워드 호퍼와 같은 예외도 있지만, 흥미롭게도 작품에 적용된 대부분의 거장은 카라바조, 베르메르, 렘브란트, 라 투르 등과 같은 바로크 시기의 작가들이다. 실상 그가 인용하고 있는 거장들의 작품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사실성이 아니라 그 현실을 아우르는 진실성을 통해 오늘날의 감상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거장 연작은 이러한 진실성을 회화적으로 재구성하여 또 다른 내러티브를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화면의 디테일한 사실이 마법처럼 현실의 내러티브로 변화되고, 은폐되었던 것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홀연히 드러나는 회화적 알레테이아(aletheia), 달리 말해 예술적 진리를 드러낸다.
IV.
이석주의 작업에서 “일상”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현실을 초월적이거나 관념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다양한 내러티브를 일상의 이미지로 담담하고도 순수하게 재현하기 때문이다. 사물의 재현에는 일상의 다의성이 한껏 응축되어 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 예술적 은유의 원천이 된다. 거장 연작 중 특히 베르메르의 작품이 인용된 화면에서는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일상이 미학적 진실성과 교차되고 있다. 이 아름다운 교차로에서 우리는 이석주 작가 특유의 회화적 서정성을 만난다. 이러한 서정성은 규범적인 미술 형식으로서의 사실에서는 결코 발현될 수 없다. 오로지 그토록 평범하지만 그럼에도 진리에 상응하는 감성으로 촉발되는 곳, 바로 진실한 실재성의 공간에서 비로소 현시된다. 여기에 작가의 고유한 회화적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회화에 나타난 서정성은 단순히 어떤 감성적 주제를 끌어들인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상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현실의 근저에 있는 진실을 지속적으로 사유한 결과에서 비롯된 회화적 서정성이기 때문이다.
V.
<사유적 공간> 연작에서 책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얼핏 책은 사유와 연관된 사물인 듯 보이지만, 작가가 이를 염두에 두고 그려낸 것은 아닐 터이다. 그의 연작에 나타난 책의 이미지는 기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듯 보인다. 책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드문데, 이는 책을 재현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리라. 책의 부분적이고 디테일한 형태를 통해 어떤 이유로 잊힌 일상의 기억들이 소환된다. 세네카(책등)에 있는 흔적과 부분적인 글자는 지극히 사실적인 형태로 제시되지만, 화면 전체에서 그 형태는 문화학적인 기억의 지표로 기능한다. 책은 공간에 빛처럼 놓여 있다. 책의 색감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배경과 상응하고, 강렬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러한 강렬함은 직접적이거나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서정적 감성을 수반한 고요한 감응 속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미적 분위기로 부단히 환원되는 책의 이미지는 일종의 예술적 기억의 저장소를 가리키는 듯 보인다. 책은 문화적으로 표상된 회화적 형태이다.
VI.
이석주 작가의 회화적 공간은 순수 직관의 공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형식적으로 깔끔하게 정제된 그런 식의 차원에서 연상되는 순수 직관은 결코 아니다.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현실, 그 실재성에 대한 사유의 형상들이 있는 공간이다. 그러기에 이 공간은 단순히 어떤 형식을 표현하기 위해 설정된 물리적 공간일 수가 없다. 그의 회화적 공간은 사유의 공간이다. 그림의 공간에 나타난 상징적 이미지들은 시간의 고리로 연결되고, 다양한 양상으로 끝없이 전개되고 펼쳐진다. 그러기에 감상자는 화면의 초현실적인 공간을 그저 수동적으로 바라만보는 직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매우 능동적으로 사유적 공간의 지평을 열어가는 직관에 이르게 된다. 달리 말해, 사물들은 화면에서 어떤 규정된 형태의 이미지로 재현된다기보다는 감상자의 마음에서 회화적으로 재구성되고 사유의 공간에서 실재성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사유적 공간이라는 이 아름다운 예술의 놀이터에서 예컨대 말은 영혼의 심장처럼 현전하고, 시계는 순간과 영원이 구분되지 않는 현실의 알레고리로 존재한다. 이렇듯 사유적 공간은 일상에 대한 다양한 마음이 회화적으로 촉발되는 예술적 놀이의 공간이다.
VII.
<일상> 연작과 <사유적 공간> 연작은 작가의 조형적 변주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변주에는 어떤 명료한 형식적 변화가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모호한 이중적 변용이 돋보인다. 실상 작가는 보이는 것의 현실성을 극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것의 초월성을 화면 가득 담아내는 작업에 천착하는 것도 아닌 듯 보인다. 일상에서 현실과 초월은 늘 교차된다. 그리고 교차되는 그곳에서 사유적 공간이 펼쳐진다. 사물의 현실은 작가의 응시를 통해 회화적으로 견인되고 미학적 실재성으로 변용된다. 현실은 일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일상은 삶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 일상은 그저 텅 비어 있음을 지시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일상, 그 자체가 현실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다. 백마, 포플러 잎, 시계, 하얀 천 등이 그려진 ‘일상’은 어떤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일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자 예찬을 보여주는 회화적 언어이다. 일상은 작가의 그림에서 지속적으로 변용되면서 회화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적 공간을 현시한다.
VIII.
이석주 작가의 <벽>, <일상>, <사유적 공간> 연작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어떤 쓸쓸함이다. 그의 회화적 구성에서 다양한 사물들의 이미지는 사실적이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다. 마치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낸 다양한 일상의 오브제가 놓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풍경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확연하게 다가오는 이미지가 아니라 왠지 모르게 사라지는 이미지, 달리 말해 텅 비어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풍경을 이루었던 일상의 이미지가 하나 둘씩 사라지고 비어간다. 그렇듯 사라지고 빈 곳은 회화적으로 표상되는 일상과 사유의 공간이 된다. 마치 현존과 부재 사이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 듯 화면의 전체에는 고즈넉하고 적막한 애상미가 감지된다. 이러한 미적 분위기는 현실의 실재성과 그 사실적 진실성을 회화적으로 표상하고자 하는 작가의 섬세하고 미묘한 조형적 탐구의 과정에서 발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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