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전 시 명 : 2017 모란미술관 기획 <조각의 미학적 변용>展
▌전시기간 : 2017.04.28~6.28
▌전시장소 : 모란미술관
▌참여작가 : 김정명, 신옥주, 이재효, 홍순모
▌후 원 : 경기도, 남양주시

 

조각, 그 변용의 아름다움

 

임성훈(미학/미술비평, Ph. D.)

 

 

세계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 속에서 변화하면서 존재한다. 그 언제인지 모르지만, 아득한 그때부터 인간은 현상의 무수한 변화를 감지하고, 그 변화에 상응하는 욕망을 예술로 표현해왔다.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지속적으로 변하는 시대의 사회와 문화에서 형성된 어떤 “예술의욕”이 반영된 결과물이 바로 예술이다. 자연사물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변화하듯이, 예술에서도 영원한 형식이란 가능하지 않다. 예술은 자신의 무한한 변용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가장 고유한 놀이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조각은 이러한 변용에 직관적으로 또한 개념적으로 반응하는 예술이다.

 

조각은 단순히 변화를 조형적으로 제시하는 예술이 아니다. 조각은 그 시대의 이념과 그에 따른 문화의 변용을 감성의 응축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조각을 돌아보자. 그리스 조각가들은 이집트의 석재기술을 배웠고, 아케익 시기에 쿠로스나 코레 조각상을 제작하지만, 초기 고전기로 접어들면서 이집트의 추상적, 상징적 형태의 조각에서 벗어나 자연적이고 사실적인 조각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는 <크리티오스 소년> 조각상으로 여실히 확인된다. 그런데 전성기 고전기에 이르러 사실적인 미에서 이상적인 미로의 변화가 추구된다.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의 조형적 원리는 이러한 이상미의 변용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리스 조각은 변용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후기 고전기의 프락시텔렉스의 조각에서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듯이, 우아하고 감성적인 조형성이 강조된다. 이렇듯 그리스 조각에서 사실적, 이상적, 감성적 조형성의 변용을 읽어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고전기 이후 헬레니즘 시기의 조각은 이러한 변용이 다층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과감한 조형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대략 600년에 걸친 이루어진 그리스 조각을 예로 들었지만, 조각은 비록 시대의 이념에 따라 그 기법이나 형식을 달리 하지만 조형적 변용을 끊임없이 미학적으로 반영해왔다.

 

조각의 역사에서 변용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특히 로댕 이후의 현대조각은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진적인 미학적 변용을 드러내 보여준다. 현대조각은 다양한 변용ㅡ예컨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 <샘>에서 제작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변용, 브랑쿠지의 추상조각에서 대상의 본질에 대한 변용, 자코메티의 인체조각에서 실존의 변용, 도널드 저드의 미니멀리즘 조각에서 단순과 반복의 변용, 요셉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에서 드러나는 변용 등ㅡ에 따른 미학적 스펙트럼 속에서 재현된다. 또한 현대조각의 변용은 현상과 본질,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형식과 내용, 구상과 비구상, 양식과 정신 등의 이분법으로 규정될 수 없는 예술의 지평을 열어간다. 달리 말해, 오늘날의 조각은 재현될 수 있는 것과 재현될 수 없는 것, 그 사이를 넘나들면서 이루어지는 조형적 긴장을 이 세계에 드러낸다.

 

이번 모란미술관의 <조각의 미학적 변용>展은 조형적 에피스테메episteme의 측면에서 현대조각의 변용을 생각해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김정명, 신옥주, 이재효, 홍순모)의 작업은 저마다의 고유성으로 인해 조형적 감성의 결을 달리하고, 기법이나 주제의 측면에서 볼 때도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미학적 변용이 작품의 근저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특히 조각과 함께 전시된 드로잉 작품은 이러한 변용의 공속성에 대한 지표의 역할을 한다. 관람자는 조각과 드로잉이 독립적이면서도 조형적으로 긴밀히 상응되고 있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드로잉에서 조각을, 조각에서 드로잉을 볼 수 있고, 또한 여기서 환기되는 예술의 변용적 계기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명은 “말 풍선(speech balloon)”을 주제로 다양한 조형적 변용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의 미덕은 무엇보다 소통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위트와 유머로 자유롭게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이란 이름으로 떠들어대지만, 그저 시끄럽고 말뿐인 소통이 아니던가! 소통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작품의 곳곳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관람자는 어깨에 내려앉거나 머리 위에 떠오르는, 텍스트가 제거된 “말 풍선” 하나가 건네는 말을 보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신옥주의 작업에서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감성적 지각의 변용이다. 자연의 응축물인 철은 선과 면을 표상하고, 공간에서 섬세한 조형적 결들을 분할하면서 변용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 설치된 조각들은 조형적 감성이 총체적으로 지각될 때 어떠한 사유가 촉발될 수 있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기에 관람자는 조각적 감응으로 구성된 이 사유의 공간을 거닐면서 삶과 자연에 상관적으로 얽혀있는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재효의 작업은 예술이 자연으로, 동시에 자연이 예술로 관계하는 상호적 변용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용으로 인해 현대조각에서 재료가 갖는 미학적 함의가 즉물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의 조각은 자연에 놓여 있는 원형적 언어를 드러낸다. 조각의 힘과 자연의 생명성이 자유롭게 결합된 조형적 매스는 특히 관람자의 원초적인 촉각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홍순모의 인체조각은 서구의 완결된 조형적 형식이 아니라 삶의 풍경을 향한 조형적 변용을 추구한다. 그의 드로잉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기법과 형식을 넘어선 ‘흔적의 미학’이다. 관람자는 전시장에서 이러한 흔적이 불러일으키는 조형적 울림을 자연스럽게 공감하면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네 명의 작가들은 견고한 조형미학의 바탕에서 현대조각의 존재방식이 무엇인지를 다양한 예술적 변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조각은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그리고 여기, 조각은 우리에게 물음으로 서 있다. 물음은 조각적 변용의 원천이다. 그러기에 조각의 변용은 단순히 기법이나 형식 또는 주제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자연 그리고 삶에 상응하는 미학적 물음이 조각으로 재현될 때 현전하는 변용이다. 이번 <조각의 미학적 변용>展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업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