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2)

모란미술관이 위치한 남양주시는 서울의 동북부에 위치한 배후도시로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 선생의 묘가 있어 실학의 고장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모란미술관은 46번국도 이른바 경춘국도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해마다 휴가철이면 나들이 나온 차량들이 꼬리를 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을 뿐만 아니라 미술관 뒤로 모란공원이 있어 모란미술관은 여러 잡지 등을 통해 둘러볼만한 나들이 코스로 빈번하게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모란미술관은 비단 하루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조각공원으로만 규정하기에 본격적인 미술관으로서 그 활동의 영역이 넓고 다양하다.

모란미술관이 개관한 것은 1990년으로써 그 해 4월 28일부터 6월 30일까지 개관을 기념하여 ‘21세기를 향한 조각의 표현전’을 개최함으로써 야외조각미술관으로 출범했다. 김윤, 김윤화, 김익태, 김진성, 김홍곤, 류인, 박상숙, 박희선, 신달호, 심정수, 이연수, 이원경, 장대일, 전항섭, 지경수, 최병민, 최승호, 최종걸 등의 출신학교를 달리하는 작가들이 출품한 이 전시의 도록에서 심광현은 “서울-경기-강원지역을 연결하는 지역미술의 활성화와 공원묘지라는 특성 속에서 움직이는 독특한 미술관 운영이라는 성격은 나름대로 우리 미술문화의 다면적 발전에 기여할 일정한 토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심광현, 개관기념 야외조각전에 부쳐 (21세기를 향한 조각의 새 표현전 도록, 1990.4)전망한 바 있다.

실제로 모란미술관은 짧은 시간 내 지역미술은 물론 한국조각의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미술관으로 성장하였으므로 그 전망은 빗나가지 않았다. 또한 모란미술관은 개관기념전에 출품된 대부분의 작품을 소장하여 조각공원으로서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조각공원을 조성하면서 최태만을 큐레이터로 채용하여 이듬해 개관 일주년 기념으로 ‘한국 형상조각의 모색과 전망’을 기획하였는데 이 전시에는 김병화, 김주호, 김창세, 김홍곤, 도학회, 류인, 박희선, 배형경, 백윤기, 심정수, 유향숙, 이연수, 이원경, 이종빈, 임영선, 장대일, 최병민, 허위영, 홍순모 등, 전시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카데믹한 인체조각이 아니라 주로 형상을 통해 인간의 존재나 사회적 주제를 표현한 작가들을 초대했다. 당시 전시를 기획했던 필자로서는 미술관 배후에 있는 모란공원의 성격을 감안하여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작품들을 소개함으로써 예술에 있어서 심미성 못지않게 사람들로 하여금 삶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기획취지와 상관없이 이런 경향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려던 의도가 대중적 소통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자칫 미술관을 무겁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에 출품된 류인의 〈지각의 주〉나 임영선의 〈사람들-오늘〉과 같은 작품은 구상조각이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이 아니라 충분히 신선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경기도에 새롭게 개관한 야외조각전시장으로 인식되던 미술관이 1992년에 개최한 모란국제조각심포지움을 통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알려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도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그해 7월 21일부터 8월 13일까지 모란미술관 야외조각전시장의 한쪽에 작업장을 만들고 한국의 김평식과 성동훈을 포함하여, 네덜란드의 마크 부뤼스(Mark Brusse), 헝가리의 미하일 가보(Mihaly Gabor), 슬로바키아의 두산 크라릭(Dusan Kralik), 이탈리아의 루치아노 마싸리(Luciano Massari), 이스라엘의 살로 사울(Salo Saul), 불가리아의 게오르기 차프카노프(Georgy Tchapkanov), 그리고 페루의 알베르토 쿠즈만(Alberto Guzman) 등이 참가하여 펼친 이 심포지움은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개최한 국제조각심포지움 이후 국내에서 최초로 열린 것으로서 특히 적은 예산으로 국제적 작가를 초청하여 실현시킨 것이었으므로 필자에게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조각심포지움을 위해 필자는 1997년에 타계한 박희선과 함께 유럽을 돌며 작가들을 만났고, 헝가리의 가보와 그 전에 일본에서 작품을 본 바 있는 차프카노프를 제외하면 나머지 작가들은 전부 공모를 통해 선정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국제적 지명도가 높은 마크 브뤼스와 알베르토 구즈만이 공모에 응모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미술관은 이 심포지움을 통해 외국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었고, 작가들에게는 한국미술에 대해 알리는 기회가 되었는데 이 사업이 일회로 그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모란국제조각심포지움 이후로 국내에도 지방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심포지움을 통해 조각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진 것도 밝혀둔다. 필자가 모란미술관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일이 미술관 등록이었으며, 1992년에 제정된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에 따라 등록을 신청하였으나 그해에는 반려되고 1993년에야 문화부에 사립미술관으로 등록함으로써 미술관으로서 위상을 확립할 수 있었다.

개관 이후 지금까지 모란미술관의 활동을 시기별로 고찰해 보면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미술관의 설립으로부터 문화부에 사립미술관으로 등록할 때까지를 모란미술관의 태동기라고 한다면, 그 후로부터 미술관 부설 모란갤러리를 중심으로 활발한 전시활동을 펼치기 직전까지를 모색기, 모란갤러리를 거점으로 서울과 경기도를 연결하며 입체적인 활동을 펼쳤던 시기를 성장기, 그리고 경기도의 모란미술관을 중심으로 전시 및 사업의 내실을 추진한 시기를 성숙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란미술관의 본격적인 위상은 모란갤러리를 개설하고 모란미술대상을 제정했던 1996년을 전후하여 정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1996년 이후 모란미술관이 매년 기획하였던 ‘오늘의 한국조각’은 현대 한국조각사를 섬세하게 훑어보는 중요한 전시이자 조각미술관으로서 모란미술관의 성격을 보여주는 전시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최태만/미술평론가․국민대학교 교수